오른다. 나의 풍경을 노래하기 위해 오늘도 오른다. 순간 오르는 길에서 미덥지 않더라도 계속 오른다. 평탄에 대로로 차갑게 가는 것보다 뜨겁게 운명처럼 오르는 일이 오늘 풍경이 내 안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푸르던 지난날 생각이 너무 찬 직사광선은 돌아오지 않았다.그러나 이젠 내 앞에 선 풍경은 거울이 되어 마음을 다시 가다듬게 된다. 아무리 단단한 사물도 마음을 주면 통한다. 산에 산돌 역시 올망졸망 정이 간다. 산돌 위에 빨간 담쟁이 잎도 정이 많나 보다. 산을 오르다 보면 산감나무가 보인다. 산길을 오르면 산감을 보고 산을 보고
가을엔 작은 꽃. 점점 가늘어진 풀벌레 소리. 가을의 소리가 구슬프게 울려야 피는 작은 꽃. 언젠가 임의 눈동자에서 핀 작은 꽃. 이젠 노을빛 끝에 피는 하나의 그리움. 가을 저녁 풀벌레 신호음만큼 점점이 피는 작은 꽃. 차가운 가을 앞에선 모두가 꽃이 된 여자.쌀쌀한 계절 앞에서도 연한 호박은 여전히 부드러운 선율을 켜고 있는 어머니 같은 마음. 역시나 가을은 다 아름다워라. 수수 알 그리운 가을 하늘을 이고 누가 부르지 않아도 밭 언덕에서 가을 햇빛을 모이고 있다.벼들이 익어가는 들판에는 어느 농부도 자기가 씨를 뿌려 풍성한 가
투명한 가을날에는 아무 말이 없어도 즐겁다. 맑은 가을꽃과 말이 없어도 행복하다. 꽃과 열매가 하나가 되는 날에는 보는 것으로만 풍요롭다. 사랑하는 일도 보이지 않는 곳에 있나니 그냥 말이 없어도 충만하다. 마른 꽃처럼 흔드는 억새꽃이 가냘픈 바람으로 흔들어 놓아도 그들은 모두 하나 되어 춤을 춘다.스산한 가을바람이 쓸쓸하다. 억새꽃이 석양 햇살을 모조리 모아 둔 곳. 쓸쓸히 저물어가는 가을날의 아쉬움만 더해간다. 이맘때 피는 가을꽃 중에서 키가 작은 꽃은 자주쓴풀은 주로 나무가 없는 산등성에서 부드럽게 지나가는 바람에도 가장 맑은
눈을 감고 있어도 산기슭에 싸리꽃이 한참이나 핀다. 누런 논두렁에 느닷없이 싸리꽃 같은 맥문동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작년 가을에도 이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매년 나이를 먹어가지만 가을을 맞이하는 마음은 새롭다. 길 위에 마지막 햇빛 끝에선 눈부신 그리움이 반짝인다. 가을의 무늬를 그려낼 대지는 뜨거운 눈물을 가졌기에 꽃은 만발한다. 꽃이 피는 놀라움과 꽃이 지는 설움을 안으로 보듬는 대지는 따뜻하다.대지 위에 우연한 만남도 가슴 깊이 쓰다듬고 있다. 초록의 마음이 온통 섞여져 눈부신 맥문동 꽃잎에 잠시 머물다 가고 싶어진다
먼지 한 톨들이 모여 새싹을 돋게 하니 감사한다. 시내와 강물은 물을 실어 날려 다시 비가 되니 감사한다. 우리가 가꾼 식물로 하여금 몸을 지탱하니 감사한다. 지상에서의 풀들은 질병에 필요한 약을 주어서 감사한다. 태양은 아름다운 계절을 주어서 감사한다.대지는 적당한 물을 품어 자유롭게 땅을 밟게 하니 감사한다. 가장 고단한 삶이 완성되는 날에 구름이 와서 햇빛이 와서 생의 눈물을 가장 찬란하게 글썽이게 하니 감사한다. 까마중 잎사귀는 부드럽게 밤이슬을 받치고 있다.이따금 풀벌레 소리는 밤새도록 별을 반짝이게 한다. 잎사귀 마디 사
꽃의 형체를 자세하게 그려 넣을 수 없는 꽃이 녹두꽃이다. 아무리 보아도 돌아서면 녹두꽃 얼굴을 기억할 수 없다. 다만 검게 늘어선 녹두만 생각난다. 팥꽃은 녹두꽃보다 조금 크며 길게 늘어선 초록의 콩깍지가 금세 가을 알리며 빨간 팥이 들어 있음이 신기할 따름이다.녹두꽃과 비슷하게 피는 꽃은 팥꽃과 새팥이 있다. 새팥은 스스로 자라는 야생 콩인데 줄기로 뻗어 나아갈 것처럼 올망졸망 늘어서 있다.녹두 꽃과 팥꽃은 노랗다. 그러나 열매의 색깔은 확연하게 다르니 신기할 따름이다. 녹두를 거둔 어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시원했을까. 콩깍지가
누가 오라고 하지 않아도 다가서는 풀꽃아. 어느 길목에서 혼자 기다렸다가 말없이 멀어져가는 바람아.어느 후미진 공터를 제 식구를 감싸듯이 가슴에 묻고 있는 누이야. 가다가 지치면 여울목에서 동무들과 함께 노래 부르다 다시 먼 길 떠나자고 하는 친구야. 소나기를 피해 잠시 머물던 눈빛은 쓸쓸한 들길이 되었다. 혼자 가야 하는 세월이 너무 많아 이제 들꽃이 되었다. 노란 꽃과 파란 꽃이 모여 이제 초록꽃이 되었다.꽃이 되기까지 그 이유를 알고 싶건만, 이름 없는 꽃 속을 들려다보면서 그냥 지금 너와 함께 한 시간만을 알고 싶어진다. 개
풀빛이 되고 싶다. 영원히 잠들지 않는 풀빛으로 내 하나의 사랑을 지키고 싶다. 물빛이 되고 싶다. 너울거리는 내 얼굴에 진실 하나만으로 흔들림 없이 너와 하나가 되고 싶다. 수많은 별이 되고 싶다. 그 먼 거리에서도 둘만의 관계에서는 서로 비춰주는 그리운 별이 되고 싶다. 찬란한 눈빛이 되고 싶다. 가장 차가운 머리와 가장 뜨거운 마음이 만나는 날에 가장 깨끗한 눈물이 되고 싶다.촘촘하게 엮어놓은 고마리 풀꽃들은 땅에서도 수많은 별빛을 만들어놓는다. 하얀 뿌리는 물을 어루만질 만큼 부드럽다. 흔히 돼지풀이라고 하는 고마리는 여름날
아직 당도하지 못한 별빛은 그리운 눈망울이 되었다.이미 사랑의 씨앗은 땅에 떨어져 어제의 삶이 되고 오늘의 한순간의 만남에는 우주 끝에서 다가온 몇 백 광년의 기쁨이 되었다. 고요하게 별처럼 달아 놓은 짚신나물 꽃들에 잠시 눈길 한번 받고도 오늘 하루가 일용한 양식이 된다. 수수 알맹이처럼 하늘 가득하게 달아둔 그리움처럼 여름 내내 그리움의 마지막 한순간이라도 잡고 싶은 마음이다. 발등 위에 이슬로 쌓아 둔 짚신나물 꽃은 천천히 걸어서 하늘의 음악까지 듣고 싶어진다.가느다란 풀빛은 마지막 별빛 하나라도 붙들고 싶어서 밤마다 풀벌레
봄을 맞이하고 여름을 맞이하고 가을을 맞이하고 하얀 첫눈을 맞이한다. 한 톨의 씨앗에서 맞이하는 새싹은 푸른 하늘이 맞이한다. 모든 생명과 사물들은 자유로운 선택이 주어졌다.운신의 폭은 어쩔 수 없이 제안되어 있겠지만 마음과 정신은 자유로운 영역에 놓여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어느 규범이 있다. 물이 낮은 데로 흐르듯이 말이다. 아이를 맞이하는 엄마의 첫 마음은 지극히 선한 것이다. 봄부터 맞이하는 일들은 수없이 많다. 그중 진정 맞이할 사람이 몇 명이 있었다. 그런데 봄이 가고 말았다. 맞이한다는 것이 온전한 실상일 순 없다.그렇다
내 안에 바람도 있고 하늘도 있다. 느닷없이 소나기에 젖은 꽃잎도 있다. 변화무쌍한 사계절은 나를 먼발치에 두지 않게 한다. 가장 가깝게 두면서 마치 두 사람과 대화하는 것처럼 계절마다 매듭을 짓게 한다.내 안에 있는 것들로 처음과 중간 그리고 끝맺음이 있다. 하루에도 몇 개씩 만들어 낸다. 살아있다는 게 이렇게 내 안에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루에도 산빛은 여러 색이다. 시시각각 변해가는 산빛을 보며 마음의 조율도 거기에 걸맞게 맞춰본다. 하늘과 맞닿은 산의 곡선은 가장 부드럽기 짝이 없다. 그 속에 산길을 걷는
하늘 높이 하눌타리가 하얗게 머리를 풀고 있고 울타리 높은 곳에선 사위질빵 꽃향기가 흰 구름 사이 푸른 하늘 가운데 짙어가고 있다. 울 밑에 봉선화 꽃물은 아직도 잊지 못한 첫사랑의 꿈들이 타오르고 있다. 산 아래 이름 없는 연못가에 빨갛게 푸른 하늘을 가장 깨끗하게 바라고 있는 부처꽃. 무념의 연못 한가운데에 물빛도 가장 고요한 마음이 보인다.부처꽃이라면 넓죽한 모양의 미소로 다가올 것 같았는데 가늘게 하늘로 피어올라 느닷없는 소낙비에 젖는다. 울다가 웃다가 살며시 웃음 짓는 그 얼굴은 열렬한 태양 빛에 투명해진다. 부처꽃은 사랑
하얀 분꽃 같은 어머니가 빨간 분꽃 옆에서 눈물짓다가 이제 마당 한가운데 초록의 얼굴이 되었다. 오래된 빈집 대문 앞에서도 그 많은 세월을 잊은 채 노란 분꽃이 하염없이 피었다. 어머니는 분꽃 치마를 입고 마을 어귀에서 기다리고 있다.사립문 앞에서, 장독대 옆에서 그저 어머니 마음 가는 데로 분꽃이 되어 있다. 고향을 찾은 그리운 마음은 어머님이 잠시 앉았다 간 그 자리에 분꽃이 활짝 피었다. 마루에 앉아 빨간 분꽃을 보며 어머니가 차려준 노란 된장에 초록의 마음이 두둑한 고추를 먹으면서 그때 7월의 하늘을 보고 싶어진다.고향 하늘
수국이 피면 아직 남아 있는 슬픈 세상은 남촌에서 피어날 것이니 네가 붉게 피어나면 나는 슬픈 운명이 되어 어느 빈집에 들어가 희미한 불빛이 되나니 너무 슬퍼 말아라. 눈물 많은 사람도 다 꽃이 되느니라. 땅과 바람과 물이 한 몸을 이루고 있는데 그 뒤 배경은 무엇으로 채워졌을까. 그것은 마음의 공간이 아닐까 싶다. 눈물의 골짜기에서도 꽃은 핀다.누구나 겪는 삶의 여정이다. 사랑 때문에 꽃을 보고 운명 때문에 무명천에 보랏빛 꽃이 된 사람들은 말없이 꽃 속에 마음을 묻고 있다. 6월의 집 마당에 수국은 찬란하게 아쉬운 계절의 눈물을
풀에 꽃을 달고 가는 나그네여. 맨발로 와서 꽃씨 하나 없이 여기까지 길을 만들었느냐.삶을 생각하다 길은 떠나고 눈물을 뜨겁게 데우는 날 사랑은 푸른 강물 위에 나그네가 되었구나. 오늘도 삶을 생각하다 산속 깊은 계곡에서 나그네가 되었다. 싸리 꽃이 피는 언덕을 지나 가물었던 지난 삶도 비에 젖은 나그네가 되었다. 솔바람 이른 아침 이제는 홀로 노래하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호박꽃, 나팔꽃에 맺힌 이슬을 헤치며 운명인 듯 세상 속에서 나그네가 되었다. 6월이면 장미꽃이 만발하여 인생이 따뜻해질 것 같아 장미꽃 덩굴 아래에 섰지만 쓸쓸한
작약은 이른 봄에 붉은 새싹으로 언 땅을 뚫고 나온다. 이제는 장독대 옆에서 화려하게 피어있다. 이른 봄에 피는 나무들도 이제 영롱하게 열매를 달고 있다. 매실, 살구, 앵두, 자두이다. 새싹과 꽃 그리고 꽃과 열매의 간격이 참으로 짧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막상 새싹이 돋고 꽃이 필 땐 저것이 언제 열매가 될까 했는데 뒤돌아보니 꽃과 열매가 되었다. 봄이 오기 전에 봄을 간절히 기다렸다. 꽃이 필 땐 열매를 기다렸다. 한동안 바쁘게 살고 있었던 것일까. 꽃과 열매의 간격이 그렇게 짧다고 느꼈을 때는 이미 지나버렸다. 그러나
산속에 풀꽃들은 세상으로 내려오지 않는다. 자기가 태어난 곳이라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도 아니다. 무심히 해가 지고 달이 뜨는 곳에서 깊은 생각이 잠겨있다. 그것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맨몸으로 기도하는 모습은 가장 깨끗한 세상이다. 산 속에서의 만남은 언제나 새롭다. 전에 만났던 사람도 산에서는 새 얼굴로 비쳐온다. 그래서 산속에 풀꽃들은 내려오지 않는다. 계절의 즐거움은 아무 것도 가지지 않는 자들의 몫이다.계절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선 작은 풀꽃 앞에 무릎을 꿇어앉아야 한다. 고개를 숙이고 아주 낮은 마음이 필요하
하얗게 핀 5월의 들녘에선 가느다란 바람에도 크게 움직이는 몸짓. 그대들의 몸짓은 바람이 보이는 언덕이다. 본디 본성은 착하고 순하다. 가장 순수한 얼굴에서 너의 부드러운 숨결을 듣는다.한 번의 눈길에도 너의 마음을 훔쳐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세상이냐. 불순한 세력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것은 함께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야합에서 부딪치지 않는다. 그것은 함께 손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과 마음이 부드럽게 잡고 춤추는 세상이 이렇다. 그래서 삐비꽃은 뒤돌아보지 않는다. 얼마나 더 갔을까. 순간 꽃이 핀다는 걸. 머나먼
가다가 나그네 같은 강물을 만나면 난 그대 곁에서 너울거리는 저녁 햇빛을 보며 느릿하게 떠나겠네. 다시 가다가 나그네 같은 들풀을 만나면 그대로 주저앉자 밤하늘에 별을 보고 떠나겠네. 새벽 아침 찔레꽃 보고 가다가 온 종일 찔레꽃 향기에 눈물마저 스며들면 그 자리에서 흙담 주섬주섬 올리고 소담스런 여인처럼 살겠네.5월의 꽃바람의 대명사는 찔레꽃이다. 찔레꽃 향기가 온 산하를 움직이게 한다. 찔레꽃 숲 속에서 자그마한 새들이 파릇파릇하게 노래하면 살랑살랑 녹색 바람에 흔들리는 하얀 찔레꽃 향기가 맘까지 스며든다. 어릴 적 학교 갔다
"라일락꽃 피는 봄이면 둘이 손을 잡고 걸었네. 꽃 한 송이 입에 물면은 우린 서로 행복했었네. 라일락꽃 지면 싫어요. 우린 믿을 수가 없어요. 향기로운 그대 입술은 아직 내 마음에 남았네"이라는 라일락꽃의 노랫말이 70년대 말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올 때 라일락 꽃이 무슨 꽃인지 몰랐다.기억에도 어렴풋이 라일락 껌이 있었는데 그때 라일락 꽃은 몰라도 향기가 이런 것이구나 생각했었다. 시와 노랫말 그리고 문학에서 라일락으로 많이 쓰여 지고 있다. 라일락은 아랍어에서 기원한 리라라고 하는데 유럽에서 인기가 높은 꽃이다. 그 유명한 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