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08. 27
Q. 김씨는 조합원 자격이 없는 책임급 연구원으로 근무중이다. 김씨가 근무하는 연구소의 정년규정상 책임급 연구원의 정년은 65세이고, 선임급 연구원 이하는 60세로 되어 있다. 그런데 연구소 측은 책임급 연구원을 제외한 나머지 연구원이 모두 조합원인 노조와 협상을 통하여 책임급 연구원의 정년을 65세에서 60세 이하로 단축하는 내용으로 위 규정을 변경하였다. 그리고 60세를 맞은 김씨에게 정년퇴직을 통지하였다. 그 과정에서 김씨나 김씨와 같은 책임급 연구원의 동의도 전혀 받지 아니하였다. 위 정년 통지를 한 것이 유효한 것인가.A.
▲주석마람 - 볏집(갈대)을 역어 만든 초가지붕으로 쓰는 재료篷봉窓창 - 배 지붕뎡소냐 - 일절 할 소냐 시켜라 - 배에 맡겨두어라北븍浦포 南남江강 - 북쪽 포구 남쪽 강▲뜻풀이바닷바람은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있을지 모르나 항해하는 데는 없어서는 안 된다, 바람나니 돛 올리고, 바람에다 배 맡기고, 북포 남강이 어디든 다 좋은 곳이니 바람 부는 대로 따라가자.동풍이 건듣부니 물결이 고이인다./ 동호를 바라보면 서호로 가자스랴바람!춘3절 하3절 추3절 은 바람이 주 소제이다.이날은 낚시 포인트
2010. 08. 20
최근 이명박 대통령은 한 미소금융지점을 찾아 캐피털의 고금리가 사채수준이라고 질타했다. 캐피털사는 일주일 후 신용대출 금리를 내렸다. 캐피털사가 금리를 내린 시기에 은행들은 가게 신용대출과 중소기업 대출 금리를 잇따라 올렸다.이를 곁눈질하던 대부업체들은 표정관리에 들어갔다. 캐피탈사는 그동안 저신용 고객층을 수용했는데 대출이자를 낮추면 연체율 리스크관리를 위해 대출을 까다롭게 할 것이고, 막다른 길의 서민은 대부업체로 발길을 돌릴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본의 아니게 대통령의 말은 서민들에게 병 주고 약주는 꼴이 되어 버렸다.최근 언
지난 17일 김대중 전 대통령 추모 1주기 추모 문화제가 열린 시청광장으로 갔다. 광우병 촛불,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 등으로 떠들썩했던 시청광장에는 시민과 각계 대표 1천여 명이 모인 가운데 오정해 문성근 씨 사회로 추모제가 차분하게 진행됐다.DJ가 주례를 맡았던 오정해씨는 시종 울먹이는 목소리로 사회를 봤다. 김대중 대통령 영결식 추모문화제에서 만가(상여소리)를 울부짖으며 불렀던 그녀는 이날도 “너무 보고 싶습니다, 너무 그립습니다”라며 사회를 보던 도중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판소리를 불렀다.추모제는 김덕수 사물놀이패 공연으로
‘너 어디 갈 거니?’ 주변 사람들이 어렸을 때부터 나에게 자주 던지던 질문이다. 그럴 때마다 ‘고3 수험생도 아닌 어린애한테 물어봐서 뭐해요’라며 경찰관이나 교사가 꿈이다고 말하곤 했다. 꿈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 ‘내 인생’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았다.그만큼 진로를 선택하는 것에 큰 어려움이 있었다. 진로를 위해 어떻게 실천에 옮길 것인지 생각했지만 정확히 목표를 정할 수는 없었다. 고등학생들의 소질과 적성을 개발하고 진로 결정을 위해 서울대학이 주관하는 ‘미래 인재학교’에 참가할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4박 5일 캠프로
2010. 08. 13
자연 (自然) -스스로 그러함화자는 자연을 탐닉했기 때문에 보길도 에서 생활 했고,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자연에 동화되면서 그것을 버리지 못해 마지막 가는 길마저 고집스럽게 보길도 에서 생을 마감하시기를 서슴지 않았던 분이다.“연잎에 밥 싸두고 반찬이랑 장만마라”연잎은 가공하지 않은 도구이며 그 시절 도시락은 보편적으로 작은 대바구니(박구리)를 사용하였다. 화자는 자연 그대로를 생활화하기 위해 노력하였던 흔적이 시에 남아 있으며 반찬마저도 거부한 것은 낚시에 걸려올 반찬거리가 있을 것이라는 예상도 해 보지만 자연의 의미를 더
Q. 김씨는 보험회사와의 사이에 동의없이 자신의 처의 이름으로 자신의 처가 사망하는 경우를 보험사고로 하는 생명보험계약을 체결하였다. 위 보험계약 체결 직후 김씨의 처는 건강진단서를 작성하여 보험회사에 제출하였고, 위 보험계약의 보험료는 매달 김씨의 처 은행계좌에서 보험회사의 계좌로 이체되었다. 그 후 3년이 지난 후에 김씨의 처가 사망한 경우, 김씨는 보험금을 지급받을 수 있을까.A. 보험사고가 누구의 생명에 관한 사고인지에 따라 ‘자기의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보험계약’인지 ‘타인의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보험계약’인지가 결정된
Q. 이씨는 남편과 신혼때부터 가정불화가 심했다. 그러던 중 이씨는 남편의 도박과 외박과 폭행으로 인하여 1990년경에 집을 나오게 되었고, 그 이후 별거하다 1999.경에 이혼하기에 이르렀다. 그 후 이씨는 남편이 잘 하겠다고 해서 남편과 다시 2004. 2.경 혼인신고를 마치게 되었는데, 이전과 마찬가지로 별거상태로 지내오게 되었다. 최근 이씨는 남편에게 재판이혼을 청구하면서 그 이혼사유로는 다시 혼인신고를 한 2004. 2.경 이전의 결혼생활 중에 있었던 도박과 외박 및 폭행을 들었다. 이씨의 이혼사유는 타당한가.A. 2004
화자는 이 풍경을 시조에 담으면서 그림으로 남기고 싶은 아쉬움이 있었던 모양이다.여름 비 갠 후의 섬 지방(보길도)은 시계가 확 트여 멀리 펼쳐지는 수평선 사이사이 나지막한 섬에는 실안개 층층이 섬을 가로지르고 한발 건너 이 섬에서 저 섬으로 발만 내밀면 건너뛸 수 있을 것 같은 착각, 이 절경을 사진으로 남기고 그림으로 남기고 한 편의 시로 남기어 이 풍광을 보지 못한 여러분에 알리고 싶을 때가 있지만…….화자는 그 풍경을 시조에 담아 남기었다. 장마였던 것 같다.보길도는 산세가 수려하고 수목이 울창하여
살다 보면 누구나 "저 사람 참 괜찮다"라고 생각이 드는 사람을 한 번쯤 만난 경험이 있을 겁니다. 제 주위에도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학교 일 년 후배이지만 그 친구를 보면서 자신을 더 많이 돌아보는 계기가 됐습니다.주위에 항상 사람들이 모이고 한번 만나 대화하면 절대 잊지 못할 항상 자신감 넘치는 멋있는 사람입니다.굳이 따지자면 외모는 아닙니다. 비쩍 말라 뼈만 앙상한 몸에 머리는 벌거숭이되어 가고 옷은 항상 운동복이나 반바지에 티셔츠 차림에 누가 봐도 초라합니다. "헐~" 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는데도 항상 "자기는 정
본지 박재범기자가 ‘작은학교 살리기 프로젝트’ 기획취재차 일본 아키타현을 방문하기 위해 출국한다.이번 취재는 8월 16일부터 20일까지 4박5일간의 일정으로 43년 만에 부활한 전국학력평가시험에서 도쿄를 비롯한 수도권 초등학교를 제치고 3년 연속 전국 1위라는 기적을 만들어 낸 작은 시골 학교에 대해 집중 취재 보도할 계획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었다. 특히 피아노를 좋아했다. 피아노소리만 들리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래서인지 한때는 피아니스트를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뛰어나게 피아노 연주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집안형편과 부모님의 반대가 심해 꿈을 접어야만 했다.완도는 깨끗하고 아름다운 섬이지만 이런 수준 높은 공연을 접하기엔 많은 어려움이 있다. ‘해설이 있는 자선 음악회’공연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공연이 시작되고 군민회관에는 아름다운 선율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웅성거리던 관객들도 아름다운 선
장마도 끝나고 본격적으로 휴가철이 시작됩니다. 이에 따라 무더위도 더더욱 기승을 부리는군요. 한낮 기온이 30도를 넘어가니 집에 있어도 땀이 납니다. 그런데 밖에서 이 더위와 묵묵히 싸우시는 분들도 계시니 그분들을 생각하면 존경심이 절로 듭니다.이번 주부터 도서관에 공부하러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준비하는 시험이 한 달 앞으로 다가 온 것도 있고, 집에 있기도 더워 시원한 도서관이 제격입니다. 도서관 문을 열면 그늘도 없는 길을 삼십 분씩 열심히 걸어 땀흘려 걸어 온 보람을 새삼 느낍니다.도서관이 시원하기도 하지만 날마다 나가는 데는
춘사 1장에서 10장까지는 보길도의 자연 풍광과 순수한 낚시만을 소제로 하여 해옹 윤선도의 낚시 일과가 수록되어 있는 일기장이다.춘사 1장에서 “압개예 안개 것고 뒫뫼희 해 비췬다, 江강村촌 온갓 고지 먼 빗치 더옥 됴타” 혹한의 겨울을 뒤로 하고 화사한 봄날의 출어 현장에서 물위에 뛰어 노는 고기떼를 보고 탁주 병 까지 챙기는 춘사2장의 낚시 현장과 춘사 3장에 동호와 서호를 넘나드는 낚시의 일과 춘사6장은 “夕셕陽양이 빗겨시니 그만하야 도라가쟈”와 같이 어두워지면서 귀가한다. “三삼公공을 불리소냐 萬만事사를 생각하랴
Q. 甲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혼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출생하였고, 甲의 부모님은 그 후로도 혼인을 하지 않았다. 출생 직후 甲은 자신의 부모님의 동의하에 미혼인 고모 乙에게 甲의 양육이 맡겨졌다. 이후 乙은 丙과 결혼을 하면서 甲을 乙과 丙의 친생자로 신고하였다.그런데 乙은 丙과 이혼하면서 甲에 대한 친권자 및 양육권자가 되었다. 乙은 丙과 이혼을 한 지 2년이 지난 이후 다시 A와 재혼을 하였는데, 甲을 자신과 A의 친양자로 삼을 생각이다. 丙은 乙에게 甲을 乙과 A의 친양자로 삼는데에 동의를 해 주는 조건으로 재산분할을 요구하고
나는 완도 토박이다. 내 나이 20살 때 서울에서 잠깐 직장에 다녔다. 그때 당시 서울사람들은 개도 천원 물고 다닌다던 완도에서 뭐하러 서울까지 돈을 벌러 왔느냐고 묻곤 했다.그 당시만 해도 전국의 70%의 김과 미역을 생산해 일본으로 수출을 하면서 정말 잘 나가는 완도였다. 그런 완도가 수출이 끊기면서 공장들이 하나 둘씩 문닫더니 지금은 몇 개 남지 않았고 다들 힘겹게 운영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수출국인 일본은 우리보다 값이 싼 중국 제품을 선호하고 수입하는 바람에 완도경제가 어려워지는 주원인으로 자리잡았다.재래시장에 왁지지껄 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