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딸기, 산딸기는 보리가 익어갈 무렵 달린다. 계절이 바뀔 때 풀의 종류도 바뀐다. 이제 개망초꽃이 피고 왕고들빼기가 가을에 꽃을 피우기 위해 기초를 쌓아 올린다. 가을에 씀바귀라고 부르는 왕고들빼기는 나락이 노랗게 익을 때 노랗게 핀다. 하얀 땅 가시 꽃이 길가로 나오면 장미꽃이 절정을 이룬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 이제 만남이 이루어지면 성격이 극과 극이라고 해도 서로 닮아간다. 같은 계절의 꽃들도 서로 만나 살면 같은 성격으로 변한다. 오랜 세월을 같이 지내면 얼굴도 서로 닮아간다고 한다. 닮아가는 시점은 오로지 현재진행
나리꽃잎은 정갈하다. 화폭에 넣으려면 섬세한 붓끝이 가야 한다. 습기가 많은 숲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꽃잎이 두툼해야 건실하게 살아갈 것이다. 자기 생존 방식은 본능적으로 진화해 온 것이다. 숲속에 나리꽃도 타인과의 교감도 필요하겠지만 만나고 싶지 않은 친구도 있을 것이다. 사람도 서로 살아가기 위해 최소한의 윤리와 도덕적 사회를 이뤘다. 향기 나는 사람은 향기만 풍기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인내와 고뇌가 필요하다. 그 속에서 피는 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늘나리꽃은 군락으로 피지 않는다. 숲속에서 외롭게 핀다. 그도 환경이 좋지
5월 어느 고운 날에 왔다가 기억이 새로울 때 떠난 꽃. 홀연히 꽃씨 하나만 남겨놓고 그 연한 꽃잎 따라가고 없다. 시간의 한계를 뛰어 넘는 너는 여전히 내 앞에서 입 맞춘다. 그 연한 꽃잎이 눈시울 되어 치맛자락에 적히는 순간이 언제나 꽃이 피고 있다. 아직도 꽃피는 순간만큼은 잊을 수 없어 되뇌어 보는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파랗다. 5월의 눈망울은 네가 아직 피어있구나. 어린아이처럼 놀란 가슴에 피어선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어구나. 물가에 앉아 있는 새는 물길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노란 붓꽃은 물을 건너다 멈추고 재잘거리면서
키가 작다 하여 바람에 묻히지 않는다고 말하지 마라. 물이 닿지 않는 곳에 있다 하여 다시 떠날 수 길이 없다고 말하지 마라. 우리는 마지막 눈물이 있는 곳에 다시 떠날 수 있는 길이 있다.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번뇌는 아직 열망이 있다는 증거다. 물길 따라 머무는 곳에 내가 있네. 그리고 너는 꽃으로 나의 갈 길을 만들었네. 깊은 침묵은 잠에서 깨어나 나를 조용히 손을 잡고 있네. 바람은 투명하게 흔들고 있다. 맑은 빗물은 조용한 속삭임을 그리워하고 있다. 나는 오늘도 여행 중이다. 오늘 발길을 머무는 곳이 마지막 지나침이
5월 언덕에 앉았다. 계절이 왔다 간 자리에 하얗게 꽃이 피었다. 조팝나무, 찔레꽃, 아카시아 꽃이 아쉬운 봄을 달랜다. 향기가 없으면 5월의 밤하늘도 쓸쓸하다. 향기는 마음과 마음이 맞대는 곳에서 피어나리. 벼농사를 짓기 위해 논에 물을 댄다. 5월의 산야는 눈물투성이다. 찔레꽃도 새순에 물을 올려야 꽃이 핀다. 물을 잔득 머금어야 꽃이 된 이들은 하나같이 정이 많다. 온전하게 퍼 올려야 가슴에도 꽃이 핀다. 아카시아 꽃들도 가득하게 물을 머금었다. 부지런히 물을 올려야 그 많은 꽃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 어머니 무덤가에 밤새 소
내 특징을 다른 사람이 불러준 이름이 별명이다. 예전에는 그 특징을 외향에서 찾는다. 본인이 듣기에는 기분이 썩 좋은 편은 아니다. 지금은 오라인 상에서 자기의 닉네임을 스스로 정한다. 자기의 마음의 상태를 파악하여 스스로 이름을 짓는다. 자기의 주관적인 마음의 상태를 스스로 결정한다. 별님, 하늘님, 초록님, 바람하늘님 등 자연의 아름다움을 자기의 마음에 맞게 이름 짓는다. 야생화도 스스로 자기 이름을 지었다는 느낌도 있다. 자연과 어울림도 있다. 가장 쉽고 편안한 이름이다. 이웃집 이모처럼 다정스런 이름이다. 옆집 아저씨 이름처
소리쟁이. 강인한 생명력으로 논밭에서 산다. 마을 빈터에서 잘 산다. 풍채는 멋이 없다. 그러나 약초 효험 부분에서 어느 야생화보다 탁월하다. 전 세계적으로 펼쳐있어 민간약으로써 먹는 약과 바르는 약으로 쓰인다. 여뀟과에 속한 여러해살이풀이며 뿌리는 굵은 황색이며 원줄기는 속이 비어 있고 높이가 1미터에 달한다. 물가나 흙탕물에서도 자란다. 4월부터 녹색의 잎사귀로 눈에 잘 뜨인다. 뿌리를 캐서 생체로 갈아 초를 섞어 갠 것으로 바르면 모든 피부에 효과가 있다고 유명하단다. 버짐, 옴, 백선 무좀, 가려움증, 지물 등에 두루두루 활
먼 산빛은 내 마음의 거울이다. 봄산은 부드럽게, 천천히, 노래를 부르며 들어오라고 한다. 청라언덕에서 네가 내게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내가 나에게 부른다. 봄 산의 꽃들은 빨간 철쭉과 더불어 녹색으로 핀 꽃들이 많다. 상수리나무, 도토리나무가 연녹색의 꽃을 피운다. 봄산에서 나온 나물은 그 부드러움의 절정을 이룬다. 고사리, 취나물, 엄나무가 지금 한창 자라고 있다. 나무뿌리는 중력 방향으로 뻗어가고 줄기는 반대 방향으로 자란다. 지구 무게의 발판 삼아 하늘로 가지를 뻗는다. 우리가 하늘을 보는 데에는 발끝에서 에너지를 충분하게
봄은 생성의 계절이다. 4월의 중간쯤은 봄의 2탄이 시작된다. 어디선가 봄은 스프링처럼 불쑥 올라온다. 연한 새싹이 탄력적으로 우리의 마음을 만져준다. 무인 탐사선 보이저1호가 목성에서 보내온 지구 사진을 보면 창백한 파란 점이다. 그 점 속에서 80억 인구가 살고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푸른 점에서 얽히고설킨 일이 있겠는가. 모두가 아름답고 선한 일만 있을 것 같다. 집을 떠나봐야 내 집이 소중함을 안다. 빛의 속도로 몇 십 광년 떠나 봐야 푸른 지구를 그리워하듯이 말이다. 봄은 작은 먼지부터 시작된다.
봄비가 안부를 물어온다. 우리는 대지를 적히고 있지만 너의 가슴을 먼저 만지고 있다고 한다. 꽃들에서 먼저 만지고 있지만 너의 이마를 만지고 있다. 물길은 저 먼바다로 가고 없지만 새싹은 자라 너의 발길 이르는 곳에 아주 부드러운 길을 만들어 준다. 봄의 향기를 만들어 온 세상을 향기롭게 한다. 하얀 건반에 봄노래를 만들어주고 봄의 창공에 별을 바라보게 한다. 유채꽃에 하얀 나비는 리듬을 치며 노래를 부른다. 생동하는 봄은 눈으로 보지 마라. 있는 감각을 모두 동원하여 감동하라. 눈으로 책을 읽지 마라. 소리 내어 시를 노래하라.
이 지상에서 따뜻한 온기를 느낄 때가 봄이다. 봄은 굳어져가는 몸도 재생의 에너지로 싹을 돋게 한다. 생각을 다시 새롭게 하여 너를 보게 한다. 봄은 최초의 몸이다. 이것이 달라질 때 또 봄을 맞는다. 내 육신과 마음이 힘이 들 때 봄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때가 나를 힘들게 할 때도 있지만 때가 되면 새롭게 나를 찾아온다. 송곳니가 올 봄에 빠졌다. 입 안에서 한 움큼 없어진 듯하다. 때가 되니 내 육신에 떠난 이가 생기고 만다. 떠난 만큼 그 자리에 채워 넣으라는 뜻도 있다. 자식을 위해서 남을 위해서 그런 뜻도 있겠지만 자신이
연둣빛을 기다리는 꽃잎들이 많다. 연둣빛을 먼저 싹을 틔워 놓고 연주 꽃처럼 싹이 불쑥 오른다. 가을에 상사화는 너무 보고픈 사람이 있어서 먼저 꽃대만 올리지만 3월의 연두 빛 꽃은 대지의 오르막길에서 기다림으로 핀다. 3월은 낯선 얼굴처럼 시작한다. 하지만 3월의 중간 즈음에는 가장 온화한 얼굴이다. 3월의 날씨 변화는 심하다. 아마 낯선 길을 떠나는 이들이 많기 때문에 길들이기 위함이다. 밤하늘을 고요하게 바라보는 것도 꽃의 눈빛이 흔들림 없이 피기 위함이다. 연두 잎을 먼저 내 올린 것도 3월의 쌀쌀함이다. 연두 꽃이 피었을
가슴 깊은 곳에서 끊임없이 퍼 날리는 계절이 3월이다. 마른 낙엽 속에서 속삭이는 작은 꽃잎은 사랑이라고 말하리. 사랑한다는 함은 아주 작은 꽃에서 마음을 퍼 울린다. 작은 언덕길 오르다가 너와 눈 마주침이 언듯 너의 손을 잡는다. 마을로 들어간 길목에 가장 가난하게 피어있는 제비꽃은 장차 가장 깨끗한 손이 되고 만다. 기쁨이 넘쳐 많이 피어난 제비꽃은 봄 산으로 들어가 산길이 된다. 햇살은 너를 웃게 하고 저 너머 떠가는 구름은 너를 사랑한다. 작은 연못 가에서 피어나는 단아한 모습도 향기로 묻어나온다. 돌담 밑에서 수줍은 듯 살
가장 아름다운 시절에 꽃이 아니면 너는 그때 어디에 있었느냐. 아무도 모르는 골짜기에 내가 스스로 꽃을 피우는 시절. 가장 연약하게 연민으로 피어나는 너. 스스로 꽃을 피우기 위해 이름 없는 너를 보았고. 어느 길에서 머뭇거리다가 네가 이미 지나쳐버린 얼굴을 기억하는 건 시간의 길이만큼 어른거렸다. 지난해 뿌려놓았던 뿌리들이 이제 꽃으로 핀다 해도 그때가 더 좋았으리라. 온전히 너의 얼굴을 본다는 것은 많은 세월이 흘러서야 알았어. 마치 지구가 얼굴을 드러내기 위해서 수천 만년 시간이 흘렀듯이 너와 나는 암흑의 세계에서 몸부림치며
새싹에 보면 눈이 맑아진다. 새싹과 한 몸이 된 마음은 바로 명상에 잠긴다. 하얀 햇살에 올라오는 새싹은 지구 끝까지 온기를 전한다. 새싹은 소리 없는 음악이다. 새싹이 내 마음에 전해 온 것들은 절제된 언어이다. 이 언어는 내 인생의 얼굴일 것이고 성품이 될 것이다. 몸이 가는 대로 갈급한 것은 내게 필요한 영양분이다. 이것을 의식적으로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따르는 데에는 가장 편한 옷이 되고 만다. 따뜻한 대지가 품어 지상으로 내보내는 새싹들이 내 마음 안에서 움직임이다. 어제 새싹을 보고 느끼는 것들은 오늘 또 다른
계절은 계절을 안는다. 계절 안에서 서로 보듬는다. 무슨 일이든지 내 앞에 맞닥트리면 그것들을 진실로 사랑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삶을 다시 한번 그리고 무수히 반복되는 삶을 사랑한다. 매 순간 일어나는 일들은 어찌 보면 창조된 삶이다. 이것을 거창하게 삶의 목표로 삶을 수는 없는 일이다. 현재의 순간이 더욱더 구체적으로 부여 될 때 그 가치가 배가 된다. 있는 그대로 진실로 대할 때 마음이 착해진다. 삶 자체가 의미가 있고 모든 순간이 창조된 삶이라면 그 반응이 연쇄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봄 산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가 상상력의
봄 산 숲길에서 지금까지 지나온 삶을 잊어도 좋으리. 봄 산에 앉아 저 강물을 바라보다가 약간 슬픔에 잠겨도 좋으리. 풀잎 뿌리 닿는 개울가에서 잠깐 머물다 떠나가도 좋으리. 이유 없이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봄 산의 일이진대 그것이 기쁘거나 슬프지 않네. 무덤가에 엉겅퀴 꽃도 수 천년 바위처럼 피었네. 봄 산에 아주 여리게 피는 꽃도 약간의 봄비만 있으면 족하다. 서로 잊지 말자고 다짐하여도 봄 산은 통하지 않는다. 제 혼자만이 살다가 상처가 있다면 그것은 나의 원죄에서 일어나는 일이거니 슬퍼하거나 화내지 않는다. 봄 산에 나무와
고향 언덕에 복사꽃이 피었다. 산언덕에 진달래가 피었다. 마른 잎 사이로 노루귀 꽃 귀엽게 피었다. 산 넘어 깊은 곳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바로 얼레지다. 봄꽃 중에 제일 아름다운 꽃이다. 어릴 적에 높은 산을 오르내리고 했어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세월 지나 고향에 내려와 보니 얼레지가 보인다. 생이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다. 너는 참 깊은 산속에서 기다렸다. 갓 태어난 아기처럼 순수하게 웃음 짓는다. 그러나 그 웃음을 보기에는 많은 세월이 흘러야 했다. 지금도 산 속에 얼레지는 보기 힘들다. 그래도 기다린다.
낮에도 별이 뜬다. 하늘에만 하늘 악보가 있는 게 아니다. 지상에서도 하늘 악보가 있다. 봄을 기다리는 삶은 꿈속에서도 은하수가 흘러간다. 지상에서 쓴 언어들은 추상적으로 쓰인다. 그러나 자연과 우주는 똑같은 게 하나도 없다. 각자의 모습들은 순간이 지나가면 또다시 오지 않는다. 가장 정직한 모습이 오늘을 창조해 간다. 작년에 봄까치꽃 속에 빨간 광대나물꽃이 피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분명한 것은 전체 모습은 다르리라는 생각이 든다. 매일 변해가는 모습들이 순간이 모인 것이다. 들길을 가다가 우연히 마주 친 야생화들도 운명처럼
늘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이가 들수록 더 붉게 물들고 싶다. 네가 바라고 보고 있는 곳에서 시들지 않는 꽃이 되고 싶다. 세월이 갈수록 가슴에 깊은 영혼의 강물에서 반짝이는 그리움의 대상이 되고 싶다. 한 여인의 꿈은 나의 곁에서 속삭이는 이야기가 되고 싶다. 나뭇잎 떨어지기 전에 이미 철새 떠나가고 겨울나무 위에 첫눈이 되고 싶다. 꽃은 늘 너의 곁에서 붉은 눈물이 되고 싶은 걸까. 가까이 있으면서도 손 내밀지 못한 그리움은 오직 눈빛으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오직 순결한 마음만이 너를 만질 수 있을 것 같아 하얀 빛을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