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팔트 국도위로 동백꽃 하나 외롭다. 중앙선에서 오가는 차들을 간신히 피하고 있다. 사실 저 동백꽃은 대형 중장비에 뽑혀 차에 실려 가다 바람에 떨어진 거다. 삼두리 청소년수련관 아래 광활한 동백 숲이 요즘 숲 가꾸기 사업에 시끄러웠다.그런데 오늘 보니 간벌만 한 것이 아니고 뽑기도 했던 모양이다. 몇 백 살은 족히 넘었을 굵은 동백을 두 대의 대형 크레인으로 실어 날랐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사업의 주체인 산림조합은 그럴 것이다. "밀식되어 있던 것을 뽑아 나무은행에 보관하기 위함"이라고.... 그런데 저렇게 큰 동백을 뽑고
지난 2005년의 일이다. 강진의 한 신문이 재미있는 글이 실렸다. 밤늦게 일하는 군청 공무원들 때문에 가뜩이나 어려운 지역경제가 더욱 피폐해지니, 빨리 퇴근하고 지역 상가에서 먹고 마셔 경제를 활성화시키라 권했다. 이에 신임군수는 간부회의에서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지역 경제 살려보겠다고 책상에서 궁리하지 말고 시장에 나가 돈 쓰라는 코미디 같은 얘기다.공무원을 그만두고 고향에 내려와 살아보겠다는 한 후배가 고민 끝에 이런 말을 했다. 완도에서 공무원이 안 팔아주면 십중팔구는 망한다는 것이다. 그 말이 옳다면 반대로 공무원과 유착
달도는 작고 예쁜 섬이다. 막내딸처럼 완도를 찾는 사람들을 맨 앞에서 마중한다. 사위섬(사후도), 딸섬(달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달도 마을 회관 오른쪽으로 넓은 폐허가 있다. 달도초등학교 폐교지다. 담은 허물어지고 골대는 녹슬었다. 화단은 잡풀에 덮여 도깨비 나올 것 같다. 나이 든 플라타너스는 허리가 깊게 패여 아프다. 아마 올 여름에 그늘을 만들지 못할 것 같다. 문짝은 죄다 뜯어가고 유리창은 깨져 외벽 덩굴이 교실 안으로 손을 뻗었다. 검은 염소 똥으로 교실 바닥이 더럽다. 나무판자로 된 복도와 교실바닥은 군데군데 뚫려있다
완도읍 장좌리는 청해진 본영이 있었던 장섬(장도)이 있는 아름다운 마을입니다. 장좌리 당제는 해마다 정월대보름 날 장섬에서 지냅니다. 당제는 네분의 신위를 모시는데 장보고 장군과 송징 장군, 정년 장군, 혜일 대사입니다.해뜨기 전 걸어서 장섬에 들어갔다가 당제를 올리고(당산굿) 배를 타고 나옵니다(질굿 또는 뱃굿). 장섬에서 나와 마을 우물과 당목(사장나무)에서 제를 올립니다(샘굿, 사장굿). 이장(당주) 댁에서 한판 논 뒤 집을 지었거나 이사한 집에서 액을 몰아내고 복을 빌어줍니다(지신밟기). 최근 개관한 장보고기념관에서 굿친 후
급식은 학교나 공장에서 아이들이나 종업원에게 음식을 주는 일(또는 음식)이다. 즉, 특정 다수에게 정기적 으로 계속 공급하는 식사다. 그런데 대학에 급식소는 없다. 공장이나 회사에서도 급식 아닌 점심을 먹는다. 대신 군대는 배식을 한다. 유독 학교에서만 음식을 베푼다(給食). 그래서 학생들은 점심 아닌 급식을 먹는다. 이렇듯 학교급식은 식사를 즐기는 학생이 아니라 식사를 공급하는 학교 측의 명명일 뿐이다. 이러니 급식의 대상인 학생들은 주는 밥을 군말 없이 먹으면 된다. 이런 식사가 과연 즐겁고 맛있을까? 급식 대신에 점심, 급식실
자신을 불살라 시대의 어둠에 항거했던 청년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최근 책을 펴냈다. “자신의 죽음을 헛되이 말라”던 아들의 바람을 여든 해 동안 굳건히 지켜냈던 그녀는 지금, 전태일의 어머니가 아닌, 모든 노동자의 어머니가 되었다. 고 문익환 목사와 김대중 전 대통령도 그녀를 어머니라 불렀다. 이번에 나온 책에서, 전태일을 기억하고 시대의 어둠을 밝히는데 함께 했던 모든 이들에게 지겹도록 고맙다 인사한다. 마침내 그 어둠이 걷히고 밝은 낮이라 여겼는데 그게 끝이 아니다. 서울 용산에서
장보고축제에서 무엇이 떠오르는가 중학생들에게 물었다. "불꽃놀이, 야시장, 각설이" 등 제각각이다. 심지어 "야바위꾼"이란 답도 나온다. 주로 장보고축제 때 무엇을 하는지 물었더니, "구경한다, 음식 사먹는다"고 했다. 올해 장보고축제 예산이 2억 늘어 자그마치 7억이다. 7억 짜리 축제에서 우리 아이들이 겨우 닭꼬치나 사먹으며 불꽃놀이, 각설이 구경하며 언제까지 야바위짓을 즐겨야 할까?함평나비축제에는 나비가, 강진청자축제엔 청자가 있다. 나비축제는 함평을 넘어 세계엑스포로 발돋음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대표적인 사례다
완도군의회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 9명 중 6명 의원의 인사말이 같다 . 사무국에서 그렇게 한 모양이다. 참여광장(자유게시판)을 보면 선거일정과 선거법 자료뿐이다 . 이 또한 선관위 또는 사무국 직원이 한 것 같다. 비싼 예산들여 만든 의회 홈페이지를 이용하는 군의원이 없다. 순수한 일반인이 하루에 10명이나 군의회 홈피를 방문할까? 조회수가 궁금하다.완도군의회 상반기 의원 발의 조례안 총 8건 중에서 의회 관련 사안이 6건이다. 그 중 주민생활 관련 조례안이 2건인데 하나는 일부 개정안이고, 다른 하나는 참전유공자 지원 조례안으로
어떤 이가 완도신문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제법 진지하게 여러 글을 올렸다. 완도 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나열했는데 “철도와 고속도로, 해저터널 건설, 농업 또는 산업단지 조성, 조선소 유치, 농림수산 가공공장 건설” 등이다. 최근에는 원자력 발전소를 유치해야 한다고 적었는데 그 이유가 재밌다. 완도의 감소하는 인구 때문이란다. 고민의 방향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 방법은 결코 동의할 수 없다.완도 인구는 5만6천 명이다(07년 12월). 1974년 14만7천 명에서 많이도 줄었다. 매년 감소 추세다. 완도 인구가 줄어드는 이유
견우의 2년완도읍에서 태어나고 자란 견우(가명)는 중학교 2학년이다. 그의 하루는 아침 7시 10분에 시작된다. 대충 세수하고 가방을 싼다. 아침은 대부분 거른다. 졸고 있는 견우를 아빠 차는 교문 앞에 내리고 떠난다. 딱 5분 걸린다. 0교시는 자주 엎드려 있지만 가끔 숙제도 한다. 점심은 보통 5분이면 해치운다. 그리고 오후 4시 반에 수업 끝나면 영어마을에서 두어 시간 수업을 받는다. 차로 다시 보습학원에 간다. 10시 쯤 학원수업이 모두 끝난다. 집에 가서 저녁을 먹는다.그에게 보길도, 청산도를 얘기하면 늘 모른단다. 명사십
신지 송곡항에 들어서면 선착장 바로 옆에 오래된 비석 하나 외롭게 서 있다. 비문이 떨어져나가 내용을 거의 알아볼 수 없다. 다만 기록에 따르면, 이 비석은 송곡리 萬戶 박희화 청덕비로 同治 12년 癸酉에 건립되었다. 서기 1873년이다. 마을 안쪽에 있던 것이 옮겨졌다고 한다. 훼손의 정도가 심각한 상태다.군외면 신학리 대로변에 또 하나의 비석이 있다. 앞면에는 죽오서공유허비(竹塢徐公遺墟啤)라 적혀있고, 옆면에 소화(昭和) 8년 계유(癸酉 서기1933년)라 적혀있다. 송곡리 비석보다 60년 뒤의 것이다. 그런데 비각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