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길이 없다. 오늘 아무 목적 없이 길을 떠난 사람들과 함께 가는 바람은 나의 친구다. 매일 길을 떠난 사람들과 정직한 자연은 질서 속에 자유로움으로 오늘 새로운 옷을 입게 한다. 날카로운 가시나무도 8월에 언덕에선 아주 부드러운 풀잎이다. 바람이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초록의 눈망울이 일렁인다. 여름에 꽃들은 강인하다. 그래서 빗물에 흠뻑 젖어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매일 길을 떠나 것도 또 다른 눈물을 흘리기 위해서다. 지성과 이성은 늘 한계에 부딪친다. 부딪쳐 깨어지고 다시 자연의 한 장 위에 글을 쓴다. 덧칠한 무수한
꽃집에서 채송화 몇 그루 사 왔다. 가까운 시선으로 나를 끌어들인다. 압도적인 풍경이 감동을 주지만 대문 옆에 채송화 몇 나무만 있으면 된다. 꽃밭을 화려하게 만들면 시선이 집중이 안 된다. 지날 때마다 슬쩍 보고 지나가도 여운이 남는다. 꽃나무가 크면 꽃을 볼 것인가 잎을 볼 것인가 구별이 안 간다. 채송화는 지난 세월에서 많이 보아 온 꽃이 특히 장독대 옆에서 본 기억이 난다. 산에 들에 야생화같이 생명력은 없다. 그러나 집 화단에 듬성듬성 심어 놓으면 자연스레 공간이 나온다. 잎을 따다가 물 빠짐이 좋은 곳에 꽂아 놓으면 된다
빈집에서도 저녁때가 되면 붉은 하늘이 내려온다. 낮 동안 아무리 햇빛이 채워진다 해도 쓸쓸하기만 하다. 지나간 자리에 초롱초롱한 풀꽃들이 빛을 내고 있다. 아침이면 이슬이 불을 밝힌다. 붉게 달구었던 양철지붕은 소낙비 같은 열정이 있었으리. 지붕은 한참 퇴색되어 가고 먼 산을 바라보는 마을도 고요하기만 하다. 서까래에 대못은 지나온 세월이 있었는지 잘 뽑히지도 않는다. 지난날에 보리밥 바구니가 걸려있었을 것이고 보리밥 쉰내가 나도 당장 먹을 것이 있다는 생각만으로 마음을 다독이었다. 텃밭에 쑥갓 냄새와 하얀 쌀밥을 상상만으로도 지난
숲에서 나를 찾기에는 시간이 나를 버리고 간 곳이다. 또 다른 시간이 내 앞에 앉아 꽃으로 피었다. 대지를 뚫고 바람이 부는 곳으로 꽃향기는 흐르고 흰 구름으로 다시 꽃이 되었다. 숲에서도 규범이 있고 규칙이 보인다. 그래서 작은 꽃들이 살아남는다. 사람들이 먼 기억으로 사라지는 날에 숲에서는 다정한 이름이 있다. 가난한 농부가 이름을 불러주었기에 지금까지 그의 이름이 이어지고 있다. 농부들이 가장 선한 언어를 사용해 지은 이름들이라 이웃집 아줌마의 이름 같다. 숲속에서 모든 언어들을 함축하고 있다. 닭의난초, 며느리밥풀, 사위질빵
석류꽃 뚝뚝 떨어지고 그 자리에 하얀 치자 꽃이 피었다. 봄이 한참 지났는데 사랑초는 대지의 향기를 풍긴다. 한참 있다가 없어지면 생각나는 꽃들이 많다. 어린 날에 보이지 않다고 나이가 지긋할 때 보이는 꽃들이 많다. 어린 날에 이런 꽃들이 있었을까 하는 야생화도 많다. 봄에는 얼레지 꽃, 여름에는 자귀나무 꽃, 가을에는 쥐손이풀 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지난날에 나에게 관심이 많았던 친구가 지금 새롭게 생각난다. 그땐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정이 많았던 친구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 이런 친구는 지금 어디에서 살아도 주
살아가는 자리에 접시꽃 피었다. 늙은 어머니는 저만치 가 있는데 접시꽃은 고장 난 시계처럼 서 있다. 봄빛들은 어느새 가버렸다. 살구꽃, 자두꽃 피자마자 그 열매도 금방 떨어지고 마네. 이렇게 가버린 시간 속에 내 나이 쉬어본들 어찌하겠는가. 6월의 빈집은 더욱 선명해진다. 살아서 열망하는 것들이 늙지 않는 꽃으로 피었기 때문이다. 밥 짓는 냄새가 하늘로 치솟았고 가마솥에 물 끊는 소리가 요란했다. 그때에는 익숙한 것들이 지금은 얼마나 특별한지 모른다. 수박밭에 퇴비 냄새가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지금 텃밭에 퇴비 냄새가 나면 그
잠들지 않는 여름날의 꽃들은 얼마나 그리움 많으면 꽃잎 날카롭게 피어서 하늘로 송이송이 달렸을까? 뜨거운 청춘도 잠들 땐 꿈속으로 눈물을 감추는데 별안간 파란 하늘도 무너져가는 밤에도 갈대숲 흔들리는 그리움 촉각처럼 온 몸에 붉은 열망으로 꽃처럼 피어있는 참나리. 티 없이 맑은 하늘에 주홍빛 맑은 햇살에 고운 얼굴도 사랑이 없으면 꽃이 아니다. 비바람에 땅에 엎드리어 있어도 사랑이 있으면 상처 속에서도 꽃은 아름다워진다. 참나리는 나리과 중에서 키가 제일 크다. 어디에서든 잘 자란 야생화이다. 산과 들의 풀밭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
천천히 좁은 논둑길을 걸으면서 나직이 불어오는 바람에 뺨을 대어 보고 싶다. 폭신폭신 토끼풀에 마음을 내려놓는다. 계절이 바뀌는 냄새도 또한 새롭다. 새까맣게 탄 논두렁에 새싹들은 땅의 기운을 받는다. 미나리아제비는 물기가 있고 햇볕의 양이 많은 낮은 논두렁 도랑에서 자라는 풀꽃이다. 이 꽃은 5월~6월에 피는데 이때 같은 시기에 피는 꽃은 노란색으로 보리뱅이꽃과 씀바귀꽃이 질 무렵에 핀다. 바람에 쓰려질 듯 다시 흔들리는 노랑 미나리아제비꽃에서는 햇빛은 잘게 부서지고 도랑의 물소리만큼 수많은 꽃이 방울방울 핀다. 미나리아제비는 독
6월의 담장에는 빨간 장미꽃 향기롭다. 돌담 위에 초록빛 물들었다. 마삭줄이다. 작은 팔랑개비 모양을 달고 6월의 향기를 대변한다. 꽃냄새도 진한 향수처럼 코를 찌른다. 모든 생물은 탄생과 동시에 진화가 시작된다. 진화는 유전, 변이, 선택을 하면서 자동으로 일어나는 과정으로 진화를 거듭해왔다. 식물은 자체적으로 물과 이산화탄소와 빛을 이용해 에너지를 얻는다. 동물처럼 다른 음식을 이용해 에너지를 만들지만 식물은 그 자리에서 앉아서 에너지를 만든다. 무기화학과 유기화학을 넘나들면서 자연 생태계의 균형을 이룬다. 한발 더 나아가 식물
6월의 언덕에서 꽃 지는 일이 흔한 일이다. 지고 피는 양귀비꽃. 사랑한다는 것은 즐거움만이 아니다. 행복은 아주 자그마한 씨앗 속에 있다는 것을 양귀비꽃을 보면 안다. 박주가리 씨처럼 멀지 가지 않기. 내 걸음만큼 사랑하기. 그리움 한 주먹 안고 있어도 펴보면 그 아래 꽃 씨 떨어지는 순간만 보다가 그게 싹이 돋고 꽃이 피는 붉은 마음이 6월의 언덕으로 천천히 다가온다. 들판에 보리 잎 마른 냄새가 나면 논에 물이 들어온다. 담장 넘어 장미꽃 붉어지고 사랑도 붉다 못해 석류꽃 입술에 두껍게 핀다. 꽃잎이 바람에 너울거리는 양귀비꽃
잡풀도 생명 나무다. 무기물에서 유기물로 전환하는 중간단계의 역할을 한다. 또한 유기물에서 산소를 배출하는 역할도 한다. 중간의 화학적 담당을 한다. 나무만이 산소를 배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름 없는 잡풀도 이 역할을 한다. 지금은 찔레꽃 향기가 바다를 이루고 있다. 이 향기는 보라색 갈퀴 꽃에 머물다 간다. 오월의 향기는 한없이 넓고 깊다. 뼛속까지 사무친 그리운 사람이 금방 다가올 것 같다. 갈퀴나물은 서로 얹혀 있는 것 같지만 서로 질서를 유지하며 살아간다. 만물이 생동하는 계절은 서로 질
내가 아는 사람 집에 하얀 수국 한 그루가 있다. 너무도 수수해서 그 집을 자주 간다. 그 꽃이 먼저 주인 보다 나를 반긴다. 마음의 빛깔은 보이지 않지만 이렇게 꽃으로 보이나 봐. 꽃을 보고 자연을 보고 우리는 그 마음 따라 살아가나 봐. 자연에서 야생화도 좋지만 집에서 길러보려고 세 그루 수국을 샀다. 한 그루만 집에다 심고 나머지는 수국을 보러 간 집과 수국을 좋아하는 집에 주었다. 잔잔하게 웃음 석인 목소리가 수국 옆에서 수다를 한참 떨어도 곧 떠나버릴 같은 오월이 아름답다. 논에 물이 들어오면 찔레꽃 향기 가득하고 들판에
봄은 피다가 지는 일 없이 간다. 복사꽃 갑자기 나타났다가 지는 일 없이 가고 만다. 앵두 꽃은 그렇고 자두 꽃도 그렇고 수 만리 피었다가 지는 없이 가버렸다. 온도와 햇볕의 양의 따라 꽃이 되었다가 어느 날 지는 일 없이 하나의 태자리만 남겨 두고 떠났다. 아기 때는 그 자체가 꽃인 줄도 모르기에 꽃이 보이지 않는다. 세월이 한참 지난 후에야 꽃이 보인다. 유독 어머니가 강렬한 빨간 꽃을 좋아했다. 지난 세월 속에서 안으로만 삭였던 어머니는 나이가 들면서 마음의 뜰 속에 빨간 꽃이 자리를 잡는다. 5월의 감잎처럼 가장 연한 잎으로
민들레는 우선 그 이름부터 정답고 친근한 민중의 풀이다. 백성의 꽃, 민중의 꽃이라는 뜻이다. 민들레는 풀밭이나 논둑이거나 길옆이거나 마당 귀퉁이거나 가리지 않고 심지어는 콘크리트 바닥 틈새에까지 뿌리를 내린다. 참으로 모질고 질긴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들꽃이다. 도심 가운데서도 사람들의 발길에 밟히며 먼지와 오물을 뒤집어쓰면서도 노란 꽃을 방긋이 피워내는 민들레는 서럽고도 모질게 살아온 우리 민초들의 삶을 그대로 닮았다. 민들레는 겨울에 잎이 말라 죽어도 뿌리는 살아 있는 여러해살이풀로 그 뿌리가 땅속 아주 깊게 내려간다. 줄기는
우리가 안다는 것은 기껏 해봐야 내 옆에 동무 몇 사람이다. 늙어가면서 지혜를 얻는다고 해도 길가에 곧 날아 올라갈 민들레 씨앗보다 못하다. 내 몸속에 보랏빛 씨앗 하나를 아직도 이름을 못 짓고 있다. 새로운 세계를 알기 위해 어학을 공부하지만 이 세상은 알 수 없게 변해가고 있다. 깨달음은 저 산 넘어 희미하게 밀려오는 산 능선을 바라보지만 눈을 지그시 감을 수밖에 없다. 길 위에 풀숲 이슬은 반짝이는 날에 거의 오전 한나절이 가버린다. 아침에 쉼 없이 지져대는 새 소리도 세참을 먹고 있는지 조용하다. 한 무더기의 이름은 가졌지만
고추 모종이 하얗게 덮어질 때 산벚꽃이 핀다. 봄산에 꽃들이 마을로 내려오면 진달래, 개나리, 살구꽃이 빨갛게 핀다. 멀리서 달려오는 오느라고 아직 당도하지 않는 아카시아 꽃도 조금 있으면 볼 수 있겠지. 밭에서 거름냄새가 나면 새들도 소리가 높아진다. 한해 농사가 시작되는 모양이다. 산벚꽃이 필 때가 생명이 진행하는 소리를 들린다. 연록의 잎사귀에 하얀 꽃이 잘 어울리어 또 다른 꽃이 된다. 벚꽃이 한참 피어있는 마을로 들어간다. 한편의 풍경화가 그려질 것 같은데 그 속에 사람들이 없다. 그래도 그리운 사람 하나 풍경 속에 넣고
세월은 시간에서 이어지고 그 간격의 차가 나이테라고 한다. 얼마나 흐르면 나이테가 모여 하나의 큰 나무가 된다. 무엇 하나 이루어 봐요. 이룰 수 있는 데에는 그리 멀지 있지 않아요. 가장 가까운 곳은 내 안이고 그리고 내 방이다. 나와 이 공간이 왔다 갔다 하며 하나의 생각을 만든다. 뜰에 피는 매화꽃도 먼 데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나와 내 뜰에서 대면하는 순간 꽃이 피게 된다. 음악에서 미와 솔은 그리 멀지 있다. 한 줄만 뛰어넘으면 아름다운 선율이 된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이 가장 가까운 곳에서 조화의 미를 만든다. 봄꽃들이
봄 산은 꽃이 피었는데 아무도 마중 나오지 않는다. 내 앞에 봄 빗방울이 아직 여물지 않았지만 봄꽃이 한참 피었네. 그리움 한 방울 가지고 봄 산에 들어와 있는데 급히 나와 반가움을 전하는 이 하나도 없네. 자주색 제비꽃이 여기저기 나와 인사를 청하지만 그리움이 없는 곳에 그게 꽃으로 보이겠는가. 노란 민들레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를 믿어보지만 사람들이 없는 곳에 무슨 약속이 있겠는가. 봄 산에 누워 파란 하늘을 본다. 벌써 찔레꽃 향기가 무더기로 오는 것 같다. 사람들은 말한다. 찔레꽃 향기가 너무 슬프다고. 그래 지난 과거에는 봄
봄은 아직 산중이다. 연초록 햇살에 붉어진 철쭉이 머무는 산빛도 아직 산중이다. 개울물 쉼 없이 흘러 마을로 가는 첫사랑도 아직 산중에 있다. 간밤에 비 내리고 바람 불어 독한 뜻을 지니게 되는 천남성도 아직 산중에서 슬픈 사람들의 체온을 데우는 초록 꽃 슬픈 별이 있다. 자연과 인간, 생과 사 그 간극의 사이에다 쓰디쓴 인생사를 펼쳐 놓고 연초록 가지 사이에 맑은 바람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순간 꽃은 지고 연한 초록이 돋아나는 경계에서 슬픔이 문을 열고 있다. 슬픔의 응어리가 터져야 눈물이 되고 독을 풀어내는 유일한 경계가 마음속에
봄 땅 위에 있는 모든 이들을 사랑하리. 죽은 나뭇가지에서도 봄기운이 쏟아나고 있다. 가슴 깊이 사무치게 그리워도 눈길 하나 주지 않는 저 바위 돌도 때가 되니 가슴을 내 져친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서 불현 듯 다가오는 진달래 꽃. 오히려 내 마음이 놀라 힐긋 바라보니 수집은 듯이 얼굴을 붉힌다. 스무 살 촌스러운 여자는 그대로의 봄이다. 아무리 치장을 하여도 그 속에 촌스러운 티가 보인다. 이런 모습으로 오는 봄이 언제까지 올까요. 이 땅 위에 있는 자들이 우주를 본 듯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우리는 지금 이 지상에서 꿈틀거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