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한 점에도 여백을 만드는 것들은 한결같이 꽃이 된다. 서늘한 날씨가 배춧잎을 넓적하게 키워내고 있다. 9월이 가기 전, 시월의 그리움을 무수히 피운 마음을 메밀꽃은 알 것이다. 그리움은 멀리 있지 않다. 가까이서 배추 잎을 보고 하루가 다르게 사랑을 키워낼 수 있듯이. 구월의 여울은 한시름 내려놓고 다시 떠나가라고 반짝이는 물살, 한순간 만큼은 행복한 눈웃음으로 핀다. 길 따라 바람 따라 한꺼번에 피워도 모자라 다시 핀 미소. 지긋이 눈을 감고 고개를 들면 구월은 아름답게 흘러간다. 간밤에 들리던 구월의 마지막 빗소리. 그 빗
초가을의 풍경은 계절 중에 가장 섬세한 얼굴이다. 중후한 첼로 음률 하나만으로 여러 마음으로 갈라놓는다. 그것은 내 마음 속에도 이미 가을이 들어섰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가을의 얼굴은 겸손이다. 여름에 독을 품고 원수를 만들었던 얼굴은 이제 겸허한 길로 들어선다. 미움도 지나고 나면 그것이 나의 인생에서 필요한 것이라는 걸 가을의 얼굴을 보면서 알게 된다. 사랑이란 얼굴도 멀리서 바라볼 때만 아름답게 보일 수 있겠지만 매일 살을 비비고 산다면 어려움이 한두 가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 계절은 또다시 오지는 않을 것인데, 너무 즉흥
초가을에는 꽃이 귀하다. 아직 가을의 서정을 주기엔 너무 아까운 모양이다. 그래도 관심을 두고 주위를 보면 우리 야생화들이 많이 있다. 담벼락에서, 나무위에서 의지하며 덩굴성 사위질빵은 향기가 깨끗하면서 멀리 풍긴다. 꽃은 작지만 수많은 꽃송이가 내품는 향기는 때 아닌 가을장마에도 마음의 곳곳마다 뽀송뽀송하게 만들어준다. 자기만의 뜰을 만들어 놓고 꽃을 기르는 마음이야말로 그보다 좋은 보약을 없을성싶다. 그리고 그리워하는 마음도 더욱 깊고 높게 만들 수 있다. 내 앞에 돌 한 덩이도 그리운 마음만 있으면 아름다운 글귀가 나오듯이 말
솔밭에 솔잎이 쌓인다. 늦가을에 솔잎 낙엽을 보면 얼마나 포근한지 모른다. 가느다란 산길로 가는 행인의 뒷모습도 솔 냄새가 그윽한 곳에선 더욱 운치가 있다. 소나무 낙엽이 쌓인 산길을 걸으면 마음이 그지 없이 평온하다. 직감으로 사물에 관한 관찰력은 그 사람의 마음의 영역일 것이다. 여기에서 에너지를 서로 주고받아 자기만의 삶의 방식을 찾는다. 솔밭 길을 걸으며 자연이 주는 느낌을 받는다. 물욕을 버리고 자족하는 상태는 극히 자연스럽고 본래의 성품이다. 우리 어머니들이 텃밭을 경영하는 방법은 자연의 법칙에 따랐다. 가족과 이웃을 위
코스모스는 누구를 기다리지 않는다. 오는 대로 품어두었다가 가는 대로 그냥 내어준다. 봄여름 지나는 동안 누구를 그리워하지 않는다. 가을에 비로소 그를 품을 수밖에 없는 데에는 너를 두고 다시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봄에 제비꽃 피기를 얼마나 기다렸을까.삶의 연속은 기다림의 연속일 것이다. 그리움은 이렇게 차곡차곡 채워 달리고 있다. 어느덧 그리움은 내 등 뒤에서 하나둘씩 내려놓아야 한다. 그것이 숙명인 줄도 모르면서 가을이란 꽃잎 앞에 섰다. 코스모스는 나를 절대 기다리지 않았다.그냥 왔으니 말없이 지나가라고 한다. 그리움이란 순
인생은 모호하지만 자기 갈 길은 구체적이다. 산길에서 점점 물길을 만들고, 물길은 강물로 흘러 인생은 어느덧 공유와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서로서로 몸을 비비며 안녕이라는 말도 없이 또 떠나야만 한다. 물 위에 검은물잠자리는 날개를 접을 틈도 없어 파란 하늘 위에서 물길을 만든다. 날개를 접고 연꽃 위에 앉을 땐 9월을 향한 마음뿐이다. 시냇가에 잎이 긴 풀잎들은 가을을 노래하고 싶어 살랑이는 바람에도 몸을 부딪치며 자기만 음계로 목을 튼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지나온 자기 삶도 남과 구별할 수 있는 음계가 있다. 그 음계에 따라 자
느리게 걷기. 분주하지 말기. 복잡한 것은 단순화. 오늘 오감이 작동하는 데에 감사할 것. 이 모든 것들은 직접적인 가치는 없을지라도 이것을 통해 즐거움을 얻게 된다.반드시 꽃을 봐야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꽃을 봄으로써 마음을 새롭게 다질 수 있다. 느린 걸음으로 걸어야 꽃이 보인다. 더 정확하게 보려면 멈춰야 한다.한 걸음 더 나아가 눈을 감고 명상에 젖는 것도 태곳적 없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것으로 채워질 터이니 말이다. 내가 머물고 있는 집도 영원한 집이 아니다. 오늘도 집을 나서고 길 위에서
산에는 꽃이 피네. 들에도 꽃이 피네. 파란 하늘 한 가운데 흰 구름도 꽃이 피네. 우리네 꽃들은 어디에든지 피어 사랑받고 있다네.이름도 익살스러우면서 윗집 아저씨, 아줌마 이름처럼 친근한 녀석. 이른 봄에 별의 모양처럼 새겨서 별꽃. 꽃잎이 한결같다 해서 민들레.입맛이 쓰다고 하여 씀바귀. 접시만큼 꽃이 넓다 하다고 접시꽃. 줄기가 길고 여러 줄기를 합치면 튼튼한 끈이 되고 이걸로 메빵을 달아 짐을 옮길 수 있다고 사위질빵.7월의 어느 숲속에서 느닷없이 나타나는 야생화가 있다. 바로 며느리밥풀이다. 옛사람들은 친근한 소재로 이름을
7월의 햇살 가득한 가운데 하얀 빨래가 파란 하늘을 더욱 더 새롭게 한다. 장독대 옆에 몇 개의 채송화가 어머니의 마음을 닮았다.나이가 들수록 빨간 꽃을 좋아하는 어머니. 젊었을 때 가슴앓이가 붉은 열정으로 변해가는 세월.이제는 붉은 장미보다 더 붉은 채송화 꽃으로. 접시꽃보다 더 큰 사랑으로 변하고 싶다고. 세월이 가면 마음도 변하다고 하던데 세상의 짐을 다 지고 가려면 붉은 꽃을 마음속에 지녀야 한다고 한다.마당이 아무리 넓어도 채송화가 피어 있으면 좁아진다. 키가 작고 작은 꽃이라도 마음에 피는 꽃은 그렇게 크게 핀다. 이제
산속 깊은 데에서 음악이 흐르고 있다. 자연의 계곡물 소리도 어느 정도 규칙성을 갖고 있다. 서양이든 동양이든 이미 자연에서 있는 음을 잡아 작곡하는 것으로 안다.최상의 조화는 자연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겠는가. 사람도 자연의 일부이거늘 상대의 마음을 들을 수 있다면 그보다 아름다운 음악이 있겠는가.사랑이 이렇게 음악에서 시작됨을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아도 알 수 있다고. 산길을 따라가는 데에서 높낮이 있어 음악이 되고 계절에 따라 음의 색이 달라지는 새소리. 봄은 아기자기한 소리. 여름에는 높은음자리. 가을에는 테너의 목소리. 겨
햇빛이 내린 자리에 무성한 풀잎이 또다시 뿌리에 내리고 그 열매는 한 순간이 아니었다. 살아있는 생물은 하나같이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그 시간 속에 숱한 고뇌와 인내, 그리고 외부로부터 닥쳐오는 어려움을 차근차근 이겨내야 하나의 결과물을 얻어낼 수 있듯이 여기서 느끼는 것이 있다. 햇빛을 받아 푸른 열매가 빨갛게 익어가는 동안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땅에서 물을 퍼 올려 대사 작용하여 식물이 건실하게 자랄 수 있도록 밤과 낮이 부지런히 움직인다.요즘 서양의 꽃들이 많이 들어와 우리 야생화가 한적한 산과 바닷가로 밀리는 경향이 있다
산에 사는 이들은 좀 부족해서 아름다운 것들이 많다. 산수국도 그렇고 산도라지도 그렇다. 어쩌다가 피어 있는 자리는 한산하다. 그래서 조용하다 못해 그윽하다.얼굴 하나만 들어냈는데도 그 주위의 풍경이 드러나는 것처럼 평온하다. 잔대 꽃이 하늘로 줄줄이 올리면서도 그 여백은 한없이 넓다. 산에는 홀로 서있는 이들이 많다. 홀로 사는 즐거움을 그들만이 알고 있는 것일까. 마을로 내려왔던 집 도라지는 그렇게 많은 꽃들로 바다를 만들었다. 그러나 외롭기는 매한가지다.그 옛날 산도라지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산도라지를 지켜보면서 친구를 삼았던
하얀 옷소매에 그냥 멍추지 못했어. 슬쩍 흘러버린 세월도 지나고 나면 가장 크게 남는 흔적이 있어.당장 번뜩이는 생각보다 지나고 나서 가장 빛나는 세월이 있어. 아! 인생은 한참 동안 흘러간 강물에서 그렇게 먼 세월을 이해하듯이. 시는 구체적으로 삶을 담아야 해. 그것이 눈물이고 사랑일 수 있어. 내 오장육부가 아름다운 언어가 되기 위에선 얼마만큼 세월이 가야 할까요.시는 사실이 아닐 수도 있어. 그러나 내 삶속에 세세하게 그리고 음악처럼 적용할 수 있어. 어느 길 위에서 서서 노래한들 내가 경험하지 못한 느낌이 절대 오지 않는다.
산에선 늘 비우는 일만 한다. 주홍빛 하늘말나리 꽃은 아침 일찍 산등성에서 개울로 내려와 머리를 감고 빗으로 곱게 단장하고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이 꽃이 있는 풍경은 넓은 숲속이다. 가슴은 늘 뜨겁게 그러면서 늘 마음을 비우는 일은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지만 그 공간은 수 천 송이가 피어있는 듯하다. 반면 오리방풀 꽃은 아주 작다.푸른 별빛이 덤불 위에 내려앉아 푸른 별빛으로 다시 핀다. 산에 꽃들은 늘 하늘을 보는 데에는 내 안에 있는 그 무엇인가 보기 위함이다.한 점의 꽃으로 피었지만 그 안에서도 사랑이 있고 믿음이 있어. 멀
지금까지 지나온 길에서 참다운 길동무가 필요했다. 어린 날 돌뿌리에 자주 엎어지는 일이 많았다.그땐 얼마나 요놈이 얄미웠던지 내가 잘못한 지도 모르면서 그러나 이런 것들이 모여 나의 길이 되었다는 사실. 좋은 것 나쁜 것 모두 모여 나의 길이 되었다는 것. 친구여 이제 나쁜 것이 더욱 빛날 때가 있더라.아직 미완성 존재라 그런가. 오직 살펴 가라는 신호인가. 오늘도 심기가 불편한 상황이 오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이 한줄기 빛이라 여기라. 마음의 불을 켜고 살아가라고. 석류꽃 붉다 못해 석류알 더 붉게 터진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
살아있는 것들이 오늘같이 행복하다. 신선함이 나는 놀라 너를 다시 한번 본다. 살아 숨 쉬는 생소한 날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오늘 어디에서 발길이 머물지 몰라도 내가 살아있음으로 너의 싱싱함과 가장 온유함으로 순간 설레는 마음이다. 네는 내 앞에 있지만 이미 내 안에 들어와 숨을 쉬고 있는 꽃. 겹친 듯 겹치지 않고 여러 장의 꽃잎이 기대고 있지만 스스로 꽃잎은 한없이 하늘이 너그럽게 그리고 고맙게 내 마음도 그렇게 피라고 한다. 순간의 눈빛은 스쳐 가지만 언제나 그 자리 잡고 있는 너. 고요한 가슴과 가슴이 맞닿아 있는 꽃잎.
쑥갓꽃 옆에 있는 당신은 언제나 마늘 냄새가 난다.쑥갓꽃 옆에 가만히 앉아 있는 당신은 노란 쑥갓 꽃 보다 더 아름다운 얼굴로 피어난다. 치맛자락에 묻는 흙으로 그려진 노란 쑥갓꽃이 다시 피어났나니 온 땅이 당신의 마음.언제나 텃밭에 앉아서 우리들을 기다리는 당신. 이제 우리가 그 자리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머리에 하얀 수건을 두르고 그 선한 모습이 어느 날 하얀 꽃이 되었다.당신이 없는 자리에 아직도 노란 쑥갓꽃이 피어 오월의 하늘을 아름답게 채우고 있다. 어머니의 젊은 날에 넓적한 상치에 쑥갓 잎 얹어 한아름 입에 넣으셨던
가지 말라고 하면 난 기필코 그 길을 가야겠다. 만나지 말라고 하면 난 오히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사람이 얼마나 그리우면 이렇게 스스로 길을 만들어놓았을까. 아니, 사랑이 그리웠겠지. 아주 먼 나라에서 풀씨 따라 온 금계국. 오고 싶지 않았지만, 가지 말았어야 그 길에서 언제나 누구를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지. 서로의 얼굴을 비비며 쓸쓸한 인생길을 위로하며 오월의 눈물을 가득 품는다.그 많은 대지를 놔두고 길 위에서 쓸쓸하게 피웠을까. 그 많은 꽃이 한 몸이 되어 열렬히 마음을 열어 놓았지만 그리운 사랑은 오지 않아 그래서 너무
산에 꽃들 중에 온몸으로 냄새를 품어 대는 친구들이 있다. 그 중에 도리지, 딱지, 더덕은 뿌리부터 잎사귀까지 자기만의 고유한 향기를 지닌다. 특히 산에서 내려오지 못한 친구.언제나 그들만의 향유를 간직하고 싶어 고요한 산을 지키고 있다. 바로 딱지 꽃이다. 이 친구가 있는 봄 산은 향기가 그윽하다. 산으로 들어가는 길목부터 고유한 냄새를 풍기는 게 봄 산이다. 그런데 딱지가 서식하는 곳을 지나면 유난히 냄새가 짙다. 사람 사는 일도 이와 마찬가지다.같이 어울려서 사는 사회성도 있어야겠지만 자기만의 개성이 있어야 서로 보고 느끼고
완도, 완도의 오월. 그 오월은 부드러움이다. 찔레꽃 끝에서는 오는 오월의 하늘. 얼마나 부드러우면 내 가슴까지 찔레 순이 펼쳐온다.그 가시마저 아주 연한 손으로 가시가 되지 않는다. 사람 사는 게 독을 지녀야 한다. 그 강한 가시로 하여금 세상을 이겨야 한다.독을 품지 않고선 어떻게 자식을 낳고 기르겠는가. 한편 독을 푸는 것도 오월의 찔레꽃이다. 아무리 강한 가시를 지녔다 해도 가장 사랑하는 것들을 위해 찔레꽃 향기는 깨끗하고 온유하다.오월의 맑은 물살 곁에서 버드나무가 되고 싶다. 언제나 눈물을 기르는 버드나무 그 곁에서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