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땅을 향해 피는 꽃. 고향에 사월의 하늘이 내려앉는다. 보랏빛 얼굴. 언제나 그리운 얼굴. 얼마나 그리우면 층층이 감아 돌린 등꽃. 살아간다는 것 사람의 일.그것이 사랑이라 말하리. 오늘 살아갈 수 있는 힘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겠지. 가장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비밀. 그 비밀이 너에게로 간다. 등꽃나무 줄기로 사랑의 비밀을 올린다.보랏빛 얼굴로 그대 가슴이 환이 비치도록 사랑 하나로 목숨 걸고 등꽃나무 꽃이 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으로 든든한 등꽃나무 길을 만든다. 내 비밀을 주고 싶어 등꽃나무 아래서 한없이 그냥 그대로
꽃밭에서 꽃이 피는 건 그냥 피는 건 아니다. 주인의 마음에서 꽃이 이미 꽃이 피어있었지.금낭화 화단에 한 그루 있다.주인은 매일 그와 마주칠 것이다. 매일 사랑할 것들이 많다.그것은 하루를 살아갈 식량인 줄도 모른다. 매일 노래를 듣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노래를 불러 주고 아름다운 문자를 준다. 내가 좋아하는 금낭화가 어느 화단에 보이면 반갑게 나만의 미소를 짓는다.오늘의 나만의 즐거움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오늘의 기다림이 문득 마주칠 때 내 마음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른다.금낭화 꽃이 나를 찾지 않아도 우연히 발견할 때
해질 녘 붉은 마음이 떨어진다 해도 내 옆에 한사람이 있다. 누구나 한번쯤은 가슴이 뜨거웠던 시절이 있었겠지.그 사람이 한 번쯤은 나를 생각한 적이 있었겠지. 어느 날 갑자기 붉은 꽃이 내게로 오고 그 사람이 내안에 문득 들어와 있었지.뒤 모습이 쓸쓸한 사람. 옆이 더 따뜻한 사람. 그러므로 앞에서는 눈물 훔친 그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사람. 영산홍 꽃잎이 짙다 해도 그 속은 얼마나 깊이가 있는가. 내 옆에서 아주 투명한 꽃이 되어 조용한 친구가 되어준 사람. 인생은 늘 지나가지만 늘 쌓이는 그 무엇이 있었지.가장 가깝게 있어도 기
사월의 봄처럼 소리 없이 한꺼번에 피우다가 말하지 못한 이야기. 시간의 끝을 모여 있다가 다시 떠나는 사람. 언제나 옆에 두어도 그리움은 나그네처럼 또 떠나고 사월의 봄은 가슴을 붉게 펴 하얀 꽃으로 떠나는 사람. 열정 하나로 꽃을 보고 눈시울 한 방울로 한 사람의 운명을 보았다. 그 쓸쓸함이여 그 외로움이여 그 눈빛 속에 영원히 빛나는 순간을 보았다. 사월의 봄빛은 한 마음으로 부서지는 그 아래서 노래를 부르게 하고 글을 쓰기도 하고 강가에 앉아 먼 산을 바라보며 우수에 젖는다. 돌단풍이 피는 날 피아노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은 노
연분홍 사랑이 산 넘어오면 진달래 보고 산 벚꽃 피면 꽃그늘 앉아 먼 산 바라보고 산벚꽃 지고 나면 연한 연잎에 설운 눈물보고 씀바귀꽃 피면 강둑에 앉아 내 마음 일렁이는 은빛 초록 보고 노란 솜방망이꽃 피면 하늘가에 종종 병아리 눈물 한 방울 보고 작년에 떠난 님 보고 서러워 말고 고개 넘어 올 봄소식 반갑게 맞이하자. 지난 일 때문에 애태우지 말고 언제나 현재를 가장 가깝게 보자. 세월은 오늘도 가고 내일도 가도 연륜들이 귀하신 분들이다. 그래서 삶은 쓰면서 달다. 빛바랜 사랑도 올 봄에는 가만히 쓰다듬는다. 봄 길은 가난한 마
무색의 가슴에다 긴 밤을 서렸다가 날이 밝으면 봄볕을 가득 채워 넣었지. 꽃망울 툭툭 터지는 소리에 그윽한 향기는 눈을 감게 되었지. 봄볕이 우뚝 솟아 오른 곳에서 한참이나 머물다 가는 그리움이 붉은 새순을 만지고 있었지. 봄밤의 비밀이 깨어나 형형색색 새순을 밝힌 봄볕. 그 비밀스러운 봄을 만천하에 알린다 해도 그 비밀은 남는 것. 이것이 촛불이고 기도였지. 봄볕은 연한 새싹을 만지고 있지만 그 생명은 모질고 길다. 봄볕이 새싹과 만나는 날에 자유가 있었지. 소망하는 모든 것들은 봄볕에 변한다. 진정한 자유는 이렇게 변하지. 오늘
그대의 기쁨 속에서 평화와 풍요로운 생명을 가슴 가득히 채워 준다. 그대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있다 하여도 나의 행복은 그대 속에서만 충만하다.그대 괴로움이 지나고 미완성으로 남은 삶은 구만리장천이다. 지독한 그리움이 독이 될지언정 그 연한 눈물로 마음을 다독이며 그냥 가자. 씨줄과 날줄로 엮어갈 사랑도 그 부드러운 숨소리가 없으면 무슨 향기가 있으랴. 운명은 소리 없이 다가오지만 그 향기는 구만리에서도 낱낱이 듣나니 임의 목소리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 걸. 사랑은 내 앞에서 안부를 묻는다.들꽃은 잔잔 물가로, 꽃향기는 언덕에 앉아 봄
네가 세상을 보기 시작했을 때 너의 즐거움은 나의 행복이었지. 너의 봄길을 보기 위해 나는 풀씨 하나 움켜잡았지. 그 풀씨 하나 지구를 떠나지 않고 맴도는 일은 뜨거운 사랑으로 하여금 너를 지키는 힘이 되었지. 더욱 더 커져가는 사랑은 너를 껴안을 가슴만큼 눈물이었지. 한때 고향을 떠나는 게 진리였지. 그러나 고향의 작은 풀꽃을 바라보는 일이 그 속에 크나큰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이제 알았지. 논둑길, 밭둑길 따라 피는 작은 풀꽃들이 아가들의 눈빛처럼 아름다웠지. 작은 풀씨 하나 맴도는 세상. 길가에 작은 풀꽃 하나 피어날 적에 내가
한겨울에 냉이를 캐는 사람을 사랑한다. 이른 봄에 아주 작은 깨알 같은 냉이꽃을 보는 사람을 사랑한다. 저녁나절에 냉이를 캐다가 저녁에 냉잇 국을 끓인 사람을 사랑한다. 그 냄새가 저녁 내내 사라지지 않는 방에서 평생을 같이하고 싶다. 가장 가난한 사랑이 가장 뜨거운 사랑을 낳게 했으니 이것이 가장 위대한 삶이라. 새싹은 자라고 잎은 커지고 꽃은 또 피고 사람들은 길 위에서 다시 떠난다 해도 따뜻한 눈망울은 변함이 없다. 이런 마음이 산을 만나면 산이 되고 싶고 강물을 만나면 강물이 되고 싶고 바다에 이르면 바다가 되고 싶다. 슬픔
12월의 엽서와 편지는 거의 사라졌다. 그래도 일 년 내내 숨겨 두었던 풀꽃들의 사연들은 아스라이 보인다. 이런 사연을 직접 대면하지 않고선 볼 수 없는 광경이다. 마음을 다해 전하는 일이 편지와 엽서였는데 그 시대는 가고 말았다. 그래도 겨울의 계절은 다를 바가 없다. 배풍등 풀꽃에서 아스라이 달려 놓은 그 마음이 아직은 사라지지 않고 있으니 눈물을 감쳐둔 셈이다. 아기 동백나무 꽃잎이 아주 연하게 달아 놓았다. 동백나무 두꺼운 입술이지만 눈물은 연하다. 이렇게 겨울 꽃들은 강하면서도 연하게 핀다. 쓸쓸한 마음을 꽃에게 위안을 삼
우리들 곁에 우리들의 물, 우리 집 하늘 아래 우리 풀꽃들에게 마음에 닿으면 우리 동네 꽃내음이 맑게 흐르더라. 이제 멀지 않아 등을 펴고 우리 땅에서 가난한 풀꽃들이 잠들지 않은 소쩍새에서 서럽게 피어나니 우리 언제 싸웠냐 하며 고운 빰에 봄비 내리는 날에 진달래 보고 철쭉꽃도 보자구나.화사한 햇살 아래 봄바람 푸른 들녘에서 아직도 납작하게 들어 누어 평등한 햇빛과 달빛만 드리우는 이름 없는 들꽃을 보자. 여전히 푸르게 마음 낮추고 길 한가운데 잠들지 않은 풀꽃을 쓰다듬는 초록별의 눈물을 보자. 죽어도 사랑하라. 사랑하다 죽어라.
12월은 기다림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새로운 해를 기다리는 사람. 첫눈 같은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 지난 이야기이지만 첫사랑을 기다리는 사람은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일이지만 아련한 추억이 되돌아올 것 같은 계절이 12월이다. 쇠하는 댓잎 소리는 싸늘하다. 그러나 함박눈이 댓잎에 얹어있으면 모든 세상이 포근해진다. 약간 시들어진 국화꽃 위에 진눈깨비가 하염없는 눈물이 될 줄이야 아직 떠나고 싶지 않는 모양이다. 억새꽃은 바람에 긁히어 간신이 등뼈만 남아 아무리 흔들어 봐야 소리 한 점도 없다. 허허로운 잿빛 하늘 아래에서도 금방
그 많은 기쁨과 미움이 낱낱이 흩어지면 아무 일이 없더라. 그것이 영글어질 때 사랑이 되고 원수가 되더라. 모든 경우의 수를 피하려고 산으로 가든, 들로 가든 지나간 바람 자국마다 상처투성이더라. 열렬히 사랑할 때 독한 가시가 있는 줄 모른다. 연한 입술이 꽃이 되고 향기가 된다는 것을. 파라칸타의 꽃잎이 저렇게 많은 열매가 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세월이 흐르다 보니 알게 되는 것이 참 많기도 하다. 꽃의 자리는 영광의 자리만은 아닐 것이다. 바람이 지날 땐 향기가 흐르고 세찬 바람이 불어 닥칠 땐 꽃잎의 떨어짐이다. 정도에 따라
속으로 오는 가을 치자물감처럼 초라하지 않으면서 기품이 있는 겉보다는 속이 아름다운 사람. 가을엔 깊은 색으로 출렁이는 노을빛 향기를 가슴에 품어 보련다. 여름에 치자 꽃향기는 하얀 속치마까지 물들어 오는데 가을엔 치자 열매는 지평선 끝에서 밀려오는 노을빛처럼 가슴속까지 밀어온다. 치자가 있으면 유자가 있는데 꽃도 비슷하게 피어서 지금쯤 열매로 다시 만난다. 시골 돌담길에 유자나무는 색다른 남도의 마을 풍경이다. 향토길 언덕에서 잠시 쉬어가는 가을 햇빛이 황색으로 물들인 치자열매에 평화스러운 가을 길을 만든다. 어쩌면 남도에서만 볼
인생은 반쯤 넘으면 속 뜰에 피는 담쟁이 얼굴을 보게 된다. 삶의 뜨락에서 다시 핀 상춧잎 같은 사랑도 노란 쑥갓꽃 옆에서 수줍다 한다. 지나가는 누이의 첫사랑을 기억하는 담쟁이잎에서 첫눈을 기다리는 설레임이 있다. 나도 몰래 담쟁이덩굴에 마음의 손을 뻗고 있다. 담장 넘어 미련 없이 떠난 노랑나비들은 아직은 배추밭에서 앉아 있다. 지난 여름날에 연한 부리로 말하는 초록 담쟁이 잎들은 지금은 제 마음을 알리려는 눈빛들은 때 묻은 지난 삶을 주홍빛 가슴으로 서려놓고 있다. 오늘도 병들고 슬픔 사연을 담장을 치고 친한 이웃들과 허물을
연한 봄산을 지나 연한 초록 꽃 같은 꽃이 진짜 초록색으로 꽃을 피운다. 상수리과인 꽃들은 다 초록색으로 꽃을 피우며 떡갈나무도 마찬가지로 연한 초록색으로 꽃을 피운다. 가을의 남도 산은 초록꽃 나무들이 붉은 단풍잎으로 변했다. 언제나 삶이 초록으로만 살 것 같았는데 이제 스스로 붉은 얼굴을 드러내는 까닭은 무엇일까. 마지막 계절의 가슴에 온도를 지피어 무거웠던 지난날을 가벼운 낙엽으로 되고 싶은 까닭일까. 분홍빛 그리운 봄비만 있는 줄 알았던 나이에는 초록색으로 핀 초록꽃을 그냥 스쳐 지나갔다. 봄이 활짝 피고 연초록 봄산에 초록
봄부터 꽃피는 물결 따라 여름 지나 가을에 피는 꽃들을 보면 슬퍼진다. 나는 아직 지는 꽃을 보지 못했다. 지는 꽃이 내 앞에 있어도 아직은 지지 않은 꽃이 남아 있다. 그러나 이제는 지는 꽃을 보려고 한다. 꽃 지는 날에 나 홀로 앉아 가난한 꽃씨 하나 간직하려고. 그래야 내년, 내후년에도 꽃을 또 볼 수 있을 테니.들깨는 고요한 모닥불 같은 마음을 지녔다. 사람 사는 곳으로 따뜻한 눈물이 있고 그 눈물이 어둠을 밝히고 가난한 사랑의 불씨가 되었다. 그런 곳에 산들깨꽃은 반드시 있다. 어제 산들깨꽃은 그 자리에서 오늘만큼을 그대를
삶은 전체에서 온다. 온몸을 흔드는 억새도 그가 살아온 만큼 모든 것을 가을 햇빛으로 토해낸다. 삶은 부분에서 오지 않는다. 밤새 물 자락을 흔드는 기러기도 하늘로 날아갈 때는 자기 몸도 부족하다. 진실로 살아간다는 것은 억새처럼 온몸을 흔드는 것이다. 마른 꽃 같은 오이풀과 가을 하늘 옷자락을 만지고 있는 각시취 꽃은 봄에 피는 꽃처럼 앙증스럽게 가을 숲을 노래하고 있다. 오이꽃은 마른 가을 서정을 흔들게 하지만 각시취 꽃은 여름에서 오는 꽃처럼 화려하게 피어 있다. 이 두 꽃이 가을 들판에서 다른 풀과 기대지 않고 홀로 꽃대를
옛날 어머니들은 머리에 무거운 짐을 이었다. 그 관경은 버스정류장에서, 기차역에서 보였다. 이제는 사라진 풍경이지만 그 모습들이 아련하게 그려진다. 어느 작은 짐이라도 이렇게 기다리지 않고선 옮길 수 없었다. 이마에 땀방울은 서늘한 바람을 기다린다. 억새꽃은 바람이 지나가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것처럼. 우리는 매일 물질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꽃을 피우고 열매는 맺는다. 타인과 매일 만나는 일에도 우리가 모르는 에너지가 필요로 할 것이다. 그 에너지를 상대적으로 배분할 줄 모르는 인간은 나약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사랑을 하는 일에도 겸
벌개미취 사이를 흔드는 푸른 하늘은 가을에 대한 그리움을 만들고 있다. 서로 마음의 손을 내밀며 비어있는 공간마다 풀벌레 노래로 가득 채우고 새벽 기차로 떠나는 나그네 마음을 아는 듯이 눈물겹게 아쉬워하고 있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며 노래하는 숲으로 만든다. 어느 집안 어느 학교 출신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서로 다른 꽃들 속에 네가 꽃이 되면 내가 향기가 되어 맑은 하늘 아래 서로가 이 세상 주인공이 된다. 벌개미취도 낮은 자리에서 마음을 다지고 뜻을 길러 청청한 하늘과 맞닿을 맑은 그리움의 표상으로 피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