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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 역사문화유적 복원 관광 자원화 해야 한다.

완도는 역사 문화의 고장이고 자연환경 유산의 보물창고다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07.04.24 15:08
  • 수정 2015.11.07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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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의 역사는 한민족이 중앙아시아에서 동진을 계속하다가 압록강을 건너 한반도 남쪽으로 내려와 그 일부가 완도의 크고 작은 섬에 정착해 살면서부터 시작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북쪽으로부터 내려온 북방계와 달리 동남아시아와 중국 남부로부터 바다물길을 따라 이곳 완도에 정착해 살아온 남방계에 대한 문화인류학적 근거도 발견되고 있다.

 

완도에는 이들이 살아오면서 남긴 고고학적 기록이 많다. 완도읍 죽청리, 완도읍 화흥리, 완도읍 중도리, 신지면 대곡리 땅골마을, 신지면 대평리, 신지면 대곡리 독계령, 고금면 교성마을, 고금면 청룡리, 고금면 일 덕암리, 약산면 여동마을, 노화읍 대당리, 보길면 청별 마을, 청산면 읍리에 고인돌 유적이 있다.

 

 한곳에 적게는 4기부터 많게는 40여 기까지의 고인돌 군이 형성되어 오래전부터 완도에 사람이 살았음을 입증하고 있다.

 

사람이 살면서 문화, 문명생활을 추구한 흔적인 석기, 빗살무늬 토기, 기타 생활용품 등 유물 발굴지도 많다. 완도읍 죽청리 패총. 신지면 임촌리 마제 돌도끼, 보길면 예송리 돌 화살촉, 금일읍 신평리 돌도끼와 돌 촉, 청산면 여서도 패총, 낚시도구, 고금면 봉명리에서는 삼국시대 유물로 추정하는 토기파편을 발굴하였다.

 

이외에 고분도 있다. 이러한 역사적 증거로 보아 완도에는 신석기 시대로부터 사람이 거주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완도에는 오래된 성터의 흔적과 봉수대 유적도 많다. 가리포진 성터, 청산진 성터, 신지도진 성터가 있으며 고금면 교성리의 서남산성 터, 청산면 읍 리의 대성산성터가 있고 완도읍 동망산, 남망산, 서망산에 봉수대가 남아 있다.

 

 청산도, 신지도, 고금도, 약산도 등 15개의 봉수대 유적이 있다. 고금면 교성리에는 장보고 시대로 추정하는 청자 도요지도 있다. 문화유적 말고도 완도에는 천연기념물도 많고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자연환경유산 또한 많다.

 

이처럼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완도의 역사문화 유적, 천연기념물, 자연환경과 고유의 문화유산을 잘 보호하고 계승해 왔는지 되돌아 볼 때다.

 

고금도에 있는 고금진 터와 충무사의 성역화도 서둘러야 한다. 경남과 통영, 충무시와 전남도, 여수시 등이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거북선을 두고 심각한 갈등을 빚으면서까지 서로 자기 지역의 이미지로 만들고자 애쓰고 있다.

 

고금진은 임진왜란을 승리로 마무리한 이순신 함대의 노량해전 출전 지이며, 7년 전쟁의 마지막 대 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전사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유체가 처음 육지에 이르러 임시 매장 한 곳이다.

 

또한, 명나라 진린 장군 휘하 명 수군과 연합함대를 구성한 곳이기도 하다.이순신 장군의 외가인 충남 아산의 현충사 성역화에는 미치지 못할지라도 고금~마량 간 다리개통과 함께 고금진과 충무사 성역화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이 외에도 완도는 유배지이기에 유배문화예술과 관련한 역사유적이 많다.

 

조선의 서예예술을 중흥케 한 원교 이광사, 시조 문학의 별 이세보, 마마를 물리친 지석영, 완도군을 세운 이도재, 자산어보를 쓴 정약전 등 역사적으로 민족사에 이름을 남기고 큰 성취를 이룬 이들의 귀양지와 귀양살이에 관한 이야기들도 많다.

 

그러나 이들의 귀양지를 찾아보고자 하면 완도 사람이라도 쉽지가 않다. 신석기 시대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문화유적지와 완도로 유배온 사람들이 머물렀던 집터 등에 이정표나 표시판, 안내판이 거의 없다.

 

이와 같은 이유로 완도사람도 찾아가기가 어려운데 타 지역 사람은 숨은 보물찾기를 하는 기분이 들 것이다.완도군은 군외면 당인리에 창의사 허사겸의 사우를 세울 계획으로 600여 평의 토지를 사들이고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고금도에 있는 이도재 공의 유배지에 기념관을 세울 계획이라고 한다. 원교 이광사가 귀양살이를 하며 원교체를 완성한 신지면 금곡마을에는 한국 서예협회에서 기념관을 세울 계획을 추진 중이다.

 

이처럼 완도군이나 한국 서예협회에서 나서서 기념관이나 사우 등을 건립하고자 하는 일은 매우 바람직하고 가치 있는 일이다. 다만, 그 이전에라도 군민과 관광객에게 널리 알려야 할 필요가 있고 누구나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이정표. 안내판 등을 세울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고인돌 군이나 패총, 성곽, 봉수대 등 유적도 널리 알려야 이들 유적이 완도의 현재와 미래 발전을 위해 말없이 소임을 다 할 것이다. 이제라도 이들 유적과 장소를 널리 알리고 유적을 복원하고 주변 정비에 나서야 한다.

 

미국은 아메리카 드림이라는 희망을 팔아 세계 사람을 불러들인다. 그러나 프랑스나 이탈리아. 이집트는 문화를 팔아 세계의 관광객을 불러들인다.

 

완도는 미국식보다는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과거의 역사와 유적, 현재의 문화적 경쟁력, 진취성을 결합하는 방식을 모델로 삼아 완도의 역사문화 유산과 자연환경을 결합,배타적 우월성을 갖는 새로운 브랜드를 창출할 필요가 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완도의 역사문화 유적과 무형의 문화적 자산을 찾아내고 완도를 상징하는 보물로 가꾸어가는 일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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