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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경분자로 몰려 억울하게 죽임당한 아버지 명예 회복돼 기쁘다.

김탁제씨의 끈질긴 노력에 '과거사 진상위' 10월 23일, 반세기 넘도록 끌어온 아버지의 죽음. 경찰 불법행위로 규명. 나주부대에 의해 총살당한 아버지 명예회복 시켜

  • 김정호 kjh2580@wandonews.com
  • 입력 2007.12.19 08:18
  • 수정 2015.11.19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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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세기 만에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밝힌 김탁제씨. 한국일보 미주판은 11월 27일자에 김씨의 사연을 실었다.

한국전쟁 당시 좌경분자로 몰려 억울한 죽음을 당한 아버지의 명예를 위해 50년이 넘도록 평생 한 맺힌 삶을 살아 온 아들이 늦게나마 그 한을 풀게 됐다.

 현재 미국에서 거주하고 있으며, 노화가 고향인 김탁제(75)씨가 그 사연의 주인공.

 

대통령직속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지난 10월 23일 진상규명 없이 반세기 넘도록 시간을 끌어오던 아버지의 죽음이 “경찰의 불법행위로 인한 양민학살로 최종적 책임은 국가에 귀속된다.”라는 판결을 내렸다

 

김 씨는 지난 11월 27일 한국일보 미주판(Los Angeles) 인터뷰에서 “좌경분자로 몰려 억울한 죽임을 당한 아버지의 명예가 뒤늦게나마 회복돼 감개무량하다.”고 자신의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 3.8선을 넘어 파죽지세로 치고 내려온 인민군에 쫓겨 완도에 상륙한 나주부대의 잔혹한 만행으로 목숨을 잃은 전 국회의원 후보 김상규(당시 54세)씨가  김 씨의 아버지다.

 

한국전쟁 당시인 1950년 7월 29일. 김 씨의 아버지는 이날 인민군으로 위장한 나주부대에 의해 이포리 선착장에서 여러 주민들과 함께 포박돼 배남재 쪽으로 끌려가 총살당하게 된다.

 

김 씨는 자신의 아버지와 죽임당한 주민은 완도군 80명, 해남군 28명 등 총 108명. 이들은 모두 ‘좌익세력척결’을 이유로 무자비하게 총칼을 휘두른 자국의 경찰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7월 26일 완도읍, 27일 청산면, 29일 노화읍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했는데 나주부대가 인민군환영대회와 관련, 지역주민들을 살해한 후 완도경찰과 함께 완도군관내 도서지방의 좌익척결을 위한 대대적인 작전을 펼쳤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김 씨는 “죽임당한 당사자들도 억울하지만 오랫동안 가족들까지 좌익으로 낙인찍혀 대한민국여권도 발급받지 못하는 등 많은 불이익을 당하면서 살아왔다”며 “희생자가족들의 처절하고 끈질긴 진실규명이 없었더라면 양민학살 사건은 영원히 역사 속에 파묻혔을지 모른다.”고 지난 날을 회고했다.

 

김 씨의 아버지인 김상규씨는 고향 완도에서 당시 야당인 한국당 후보로 출마, 집권 자유당후보에게 아깝게 져 낙선했었다.

 

김 씨는 “정부로부터 공식사과를 받은 것에 그치지 않고 무고한 인명을 해친 것에 대한 실질적이 보상을 받아낼 수 있도록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라며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진리를 고향 땅에 같은 처지로 아픔을 겪고 살아온 많은 희생자 가족들에게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김 씨는 현재 미국 글렌데일에서 살고 있으며 미주 시인협회 회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내년 초 고국방문을 예정하고 입국을 눈앞에 두고 있는 김 씨는 두  차례씩이나 머나 먼 미국 땅에서 본지에 많은 완도 사람들이 자신의 아버지와 비슷한 죽임을 당했다. 이제 명예회복에 나설 때인 만큼 완도신문에서 그 역할을 해달라는 주문을 해 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