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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통합민주당 차영 대변인 “고향 완도 그립다”

후배들에게 "꿈을 향해 열심히 뛰자" 당부하기도

  • 명지훈 기자 mjh-wando@hanmail.net
  • 입력 2008.08.13 11:02
  • 수정 2015.12.04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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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9일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께 빚을 지고 간다.”는 말과 함께 통합민주당 대변인직을 물러난 차영 대변인.

부드럽고 침착한 목소리로 브리핑을 하던 그녀의 고향이 완도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가 않다.

차영씨는 광주 MBC아나운서, 김대중 대통령 후보 미디어 컨설턴트(1992), 조순 서울시장 후보 TV 팀장(1996), 세종문화회관 홍보실장, 청와대 문화관광비서관 등을 역임한 화려한 이력의 커리어우먼이다.

서울 현지에서 만난 차영씨는 대변인직을 물러난 후 한결 여유로운 모습으로 "요즘은 할 일이 너무 없다. 몸무게가 3kg쪘다."며 말문을 열었다.

완도초등학교(63회)를 다니면서 아버지가 당시 교장(차양로씨)으로 어머니가 교사(황옥희씨)로 근무해 교육자 집안의 막내 딸이었던 차 씨는 “저는 어릴 적 말괄량이였어요. 만화책을 즐겨 읽었고 극장에서 ‘엄마 찾아 3만리’라는 영화를 보며 눈물도 흘리곤 했다.”며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차 씨는 “아버지는 저에게 뭐든 잘한다고 격려해주며 자신감을 심어 주셨고,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어머니는 방과 후 지진아들을 위해 무료과외를 할 만큼 인정이 많던 분이었다.”며 부모님을 평가했다.

완도초등학교 교가를 작곡한 차평로씨가 큰아버지라고 소개한 차영씨는 “당시 완도에는 유일하게 지프차가 1대 있었는데 한번 타보는 것이 소원이었어요. 마침내 그차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달리면 미끄럼 타는 기분이 들며 정말 행복했다.”며 밝게 웃었다.

지금도 친척들이 완도읍 대야리에 살고 있지만 몇 년 동안 완도를 찾지 못했다는 차영씨는 “여자는 결혼해서 친정에 가는 것이 쉽지가 않다.” 고 말하며 고향 완도를 그리워했다.

구원투수로 깜짝 등장해 3개월간 통합민주당의 입으로 활약했던 차영씨는 “ 한번 잡으면 물고 늘어지는 것이 저의 성격인지라 당을 대표해 최전선의 일을 맡다보니 3개월간 살이 5kg나 빠졌다. 하지만 민주당의 입지를 만드는데 작은 힘이나마 도움이 됐다.”고 자평했다.

음식을 많이 먹는 편은 아니지만 완도사람이라 그런지 김과 미역을 많이 먹고 규칙적인 생활과 자기관리를 한다는 차영씨는 “보궐선거나 지방선거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지만 지금은 기업경영에만 매달리고 있다.”며 근황을 밝혔다.

차영씨는 “완도의 청소년들이 훗날 아나운서나 대변인이 되고자 한다면 그 꿈을 향해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이루어지리라 생각한다.” 며 고향의 후배들을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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