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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마녀사냥>

  • 박재범 기자 park9545@hanmail.net
  • 입력 2010.03.17 21:17
  • 수정 2015.11.17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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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세기 초부터 산발적으로 시작돼 16세기 말부터 17세기가 전성기였던 이른바 ‘마녀사냥’은 하나의 정치적 신조를 절대화해 이단자를 유죄로 만드는 현상을 말한다.

당시 그리스도교가 절대적인 권력을 누렸던 유럽사회는 마적 마법의 존재, 곧 마법의 집회와 밀교가 존재한다고 믿고 종교재판이란 명목을 앞세워 이교도를 박해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였다.

하지만 시간이 점차 흐르고 박해수단이었던 마녀사냥은 지배수단으로 바뀌었다. 1582년 바이에른 어느 백작의 한 작은 영지에서 한 명의 마녀가 체포됐다. 이 마녀의 체포에 연속으로 48명이 마녀로 낙인찍혀 화형 당한 것을 시작으로 1587년 도릴 지방의 약 200여 촌락에서 1587년부터 이후 7년간 368명의 마녀가 적발돼 화형당했다.

이후 천명이 넘는 무고한 사람들이 각 지역에서 마녀로 변해 화형 또는 참수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람들은 ‘그리스도교에 적대적인 행동을 보이면 마녀로 지목돼 처형된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어 지배자들이 원하는 효과로 나타났다.

얼마전 군외지역 부녀회 모임에 도지사 부인과 군수 부인이 함께 참석한 것이 완도선관위에 신고가 접수돼 조사가 시작되면서 이 지역 어민과 주민들이 함께 공동체를 이룬 ㅇㅇ회센타에서 마녀사냥과 현상이 벌어졌다.

 민감한 선거철에 지역 주민 모임에 참석해 불법선거운동으로 오인받을 수 있는 행동을 탓하기 보다 "누가 신고를 했느냐"에 초점을 맞추고 대상자를 가상 설정해 뭇매를 퍼붓고 있는 것이다.

이 곳 한 상인의 남편이 평소 다른 노선을 보였다는 이유가 전부였다. 선거때문에 5년 동안 힘을 모아 함께 해 온 주민공동체가 정확한 근거 없이 한 개인을 마녀로 지목한 것이다. 서로를 믿지 못한, 그래서 함부로 말을 할 수 없는 분위기로 변했다. 시간이 지나도 그 기세가 수그러 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인근 섬까지 신고자라는 소문에 휩싸인 당사자는 매일 속앓이를 하며 어떻게 하면 본인의 누명을 벗을 수 있을까 고민에 빠져 있다고 했다. 정신적인 고통까지 호소했다.

 예전부터 마녀사냥은 집단적인 농촌사회 공동체를 분열하고 개인간의 관계를 파국에 이르게 했다. 지금 ㅇㅇ회센터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이현상은 분명 마녀사냥이다. 정치적 노선이 다르다고 해서 근거도 없이 마녀로 만드는 15세기 유럽의 사건과 크게 틀리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의 소중한 주권을 행사하는 6.2지방선거가 2개월 남짓 남았다.  정말로 선관위에 신고했다면 투명하고 정당한 선거풍토를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를 찾아 포상을 못할 망정 부정한 마녀로 모는 것은 올바른 공동체를 부정하는 자세다. 선거가 끝나고 난 후를 고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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