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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래’ 라고 마음을 다 받아주는 소리

보길도 예송리 갯짝지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1.05.12 18:02
  • 수정 2015.11.14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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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 거세고 파도 높은 바다. 고기잡이가 쉽지 않았다. 배가 많지 않았다. 가파른 산 아래 자리한 마을. 땅이 없었다. 마을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는 밭뙈기에 고구마 농사를 지었다. 고구마가 식량이었다. ‘쌀 서 말 먹고 시집가기 어렵다’는 말이 예사였다.

어선 몇 척은 도미 삼치 장어 우럭을 잡기도 했지만 그뿐이었다. 돈으로 바꿀 수 없었다. 육지는 멀었다. 마을에 조기잡이를 하는 어부가 하나 있었다. 몇몇 주민은 조기를 사 굴비로 만들었다. 경남 삼천포, 마산까지 가서 팔았다. 마을 공동작업으로 김 명포 진포 미역 앵초 은행초 천초 파래 톳 등 해조류를 채취해 돈으로 바꾸기도 했지만 큰돈은 아니었다.

아름다운 갯돌밭을 가진 바닷가 마을은 가난했다. 완도 보길도 예송리. 1970년대 들어 톳양식과 미역양식을 시작하며 그때서야 쌀 걱정을 덜 수 있었다. 김성남(76) 할아버지는 “땅은 없고, 바다는 널찍하지만 돈 되는 것은 없었어. 곤란하게 살다가 톳, 미역양식 함시롱 밥을 묵고 살았제”라고 말한다.

짝지는 훌륭한 건조장이었다. 마을 사람 전체가 톳과 미역을 널 수 있었다. 곱게 말라 상품성을 얻을 수 있었다. 촤르륵 촤르륵, 데그륵 데그륵 갯돌 구르는 소리에 짜그륵 짜그륵 사람들 발소리가 어여쁘게 어울릴 때였다.

짝지는 늘 거기에 있었다. 변함없이, 하염없이 바다 소리를 굴렸다. 마음을 쓸어내리는 소리였고, ‘그래 그래’라고 마음을 다 받아주는 소리였다.

유년의 동무들이 모두 그 짝지에 있다. 별빛 초롱한 여름밤, 마을 사람들의 한적함이 짝지에 있다. 김장철, 바닷물에 배추를 절이는 아낙네들의 수다가 다르륵 다르륵거린다. 뭍으로 유학나간 자식들은 방학 때면 짝지로 친구들을 데리고 왔다.

짝지는 마을에 돈을 쥐어줬다. 여행자들은 짝지에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었다. 마을사람들은 사람들의 추억을 위해 톳농사를 빨리 끝마쳐야 했다. 짝지를 비워줘야 했다. 사람들은 갯돌처럼 둥그렇게 앉아 바다를 봤다. 둥그렇게 둘러앉아 짝지에서 놀았다.

둥글고 둥근 고운 갯돌. 손 안에 살포시 쥐어지는 작은 돌. 그 돌을 온통 뿌려놓은 자연. 예송리 갯돌은 수수많은 세월을 거치며 바다가 빚어 안겨준 빛나는 선물이다.

<보길도 해변의 갖가지 갯돌들은 바다를 연주하는 신비스런 악기들과 같습니다. 보길도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한 해에 30만명, 한사람이 한 개의 갯돌만 들고 나간다 해도 매년 30만개의 갯돌들이 사라집니다.

우리는 이 놀랍고 경이로운 갯돌들이 본래 있는 자리에서 더욱 아름답게 빛난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무심히 있는 것만으로도 자연과 사람의 참다운 관계를 일깨워준 보길도 해변의 갯돌들에게 우리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2회 풀꽃상을 드립니다-1999년 5월22일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 갯돌은 풀꽃상을 받기도 했다. 자연의 큰 선물에 감사하는 인간의 작은 선물이었다. 글.사진 제공 <전라도 닷컴,  김창헌 자유기고가>  

▲짝지는 톳과 미역을 널어 말리는 훌륭한 건조장이기도 하다.
▲갯돌밭 위에 피어난 아이들의 웃음. 짝지에서 만난 또하나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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