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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오래 살겄도 아닌디 이리 오래 붙잡고 있소”

강제윤 시인- 영광 안마도 기행(상)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1.07.27 18:01
  • 수정 2015.11.11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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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선에서 만난 아이 영광 계마항을 출항한 여객선이 칠산도 부근을 지난다. 여객선 갑판, 한 아이가 먼 바다를 보며 상념에 잠겨 있다. 아이는 많이 외로워 보인다. 아이는 아버지의 근무지인 안마도에서 초등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다. 방학이라 집이 있는 함평에 가 있다 개학에 맞춰서 안마도로 돌아가는 중이다.

아이는 7살 때부터 안마도와 함평을 오가며 살았다. 아이가 다니는 안마 분교는 전교생이 4명. 아이는 개를 무척이나 좋아해 개를 키운다. 아이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랑 야구도 하고, 낚시도 하고, 그림도 그리면서 논다. 소꿉놀이도 하지만 숫자가 적어 한 아이가 여러 역할을 돌아가며 한다.

4명이 한 가족을 이룰 때 아이는 아빠와 형 역할뿐만 아니라 개 역할도 한다. 3학년 아이는 아들이 되기도 하고 동생이 되기도 한다. 아이는 소꿉놀이가 너무도 재미있다. 하지만 아이가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것은 야구다. 아이는 낚시도 잘한다. 한 번은 학꽁치를 36마리나 잡은 적도 있다. 여태껏 장어는 한 마리도 못 잡아 봤지만 숭어는 세 마리나 잡았다. 문어는 두 마리를 잡을 뻔 했다가 놓쳤다.

엄마가 안 계시지만 아이는 아빠와 살 수 있어 행복하다. 그래도 엄마가 없어서 아이는 가끔 외롭다. 아이가 나그네에게 수첩의 종이를 나눠달라고 부탁한다. 아이는 두 장의 그림을 그려서 건네준다. 배에서 만난 기념 선물이다. 한 장은 우리가 탄 여객선 신해 7호와 바다를 그렸다. 또 한 장은 안마도 지도다. 아이는 산에서 내려다보면 안마도가 낙타모양이라 생각한다. 낙타모양의 섬 안마도 지도는 안마도 여행길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88세 할머니의 농사
영광군 낙월면 안마도. 산으로 둘러싸인 U자형 포구는 호수처럼 잔잔하고 아늑하다. 옛날 바람이 불면 어선들이 몰려와 피항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지형 때문이다. 안마도 포구는 나빡, 나루빡 혹은 나박바우 등 정겨운 이름을 지니고 있으나 간척으로 갯벌이 매립되고 항만 시설이 들어서면서 옛스런 정취는 사라진지 오래다. 전부 7~8호쯤 되는 나루빡 마을에 몇 개의 슈퍼와 민박 등 상업 시설이 몰려 있다. 옛날 칠산어장에 조기가 잡힐 때는 안마도에도 파시가 섰었다.

지금은 파시도 사라지고 외지 어선들도 찾아오지 않는다. 안마도 배들만 조업을 나갔다 귀항한다. 안마도는 요즘 한창 꽃게 철이다. 올해는 꽃게가 풍년이다. 뭍의 상인들이 차를 몰고 안마도까지 와서 꽃게를 사간다. 나루빡 마을 민박집에 여장을 풀고 섬의 안길로 걸어 들어간다. 옛날에는 산 너머에도 몇 개의 마을이 더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폐촌 되고 산 안쪽에만 마을이 있다. 해안도로의 끝, 솔숲 너머 월촌 마을이 섬의 중심이다. 면 출장소와 수협출장소, 무선 중계소, 발전소, 파출소가 모두 이곳에 모여 있다.

월촌 마을, 할머니 한분이 당산나무 그늘에 앉아 계신다. 나그네가 인사를 건네자 대뜸 수염 기른 것을 나무라신다. "수염을 일찍 질르면 늙게 보여. 뭐 할라고 얼른 늙을라고 해." 마을의 당제를 모시는 당나무. 본래 당 할아버지, 당 할머니 두 그루가 있었지만 할아버지 나무는 죽고 이제는 할머니 나무만 살아서 제사상을 받는다.

올해 88세, 할머니는 작년까지만 해도 혼자 벼농사를 지으셨다. 너무 힘들어서 올해부터는 다른 사람에게 "해 먹으라고 그냥 줬다." 당신은 밭농사만 짓는다. 나락이 익어가는 들녘을 보니 할머니는 마음이 짠하다. "쌀농사 안 지으니까 논을 봐도 마음이 안 기뻐. 나락이 나와서 고개 세우고 있는 것 돌아보면 기분이 좋은디." 할머니는 올해 깨 농사도 잘 안 되서 마음이 아프다. "깨를 심었는디 아주 잘 컸었어. 근디 하나님 아부지가 비를 너무 많이 줘 갔고 다 망쳐버렸어. 갈아엎고 마늘이라도 심어야제." 구십을 바라보는 할머니가 지금도 놀면 마음이 편지 않다. 평생 살아온 습관 때문이리라. "너머나 오래 살겄도 아닌디 하나님 아부지가 이리 오래 붙잡고 있소.

막내딸은 광주 살고 큰 딸은 법성포 산다. "자주 오던 못해도 나한테 잘 한다우." 할아버지는 십년 전쯤 세상을 뜨셨다. "영감이 젊어서는 배 쪼깐 탔더라우. 늙어가면서 작은 집 얻어 갔고 강원도 가 살다가 거그서 돌아가셨소. 작은 각시 얻어 갔고 나 하고는 떠난 지가 오래 됐어." 할머니는 아들을 여럿 낳았지만 모두 어려서 잃었다. 사산도 하고 키우다 보내기도 했다. "첫 머스마는 여섯 살 때 죽어 빌고. 큰 아들 하나만 살았으면 누구 부러워 한다우. 잘 생긴 새끼. 고놈 잃어버리고 이렇게 고생 한다우." 첫 아들은 갑자기 병이 났지만 손 한번 못써보고 죽었다. 그때는 보건소도 없었고 여객선이 매일 다니던 때가 아니라 병원에 데려 갈 수도 없었다. "새끼들 병나면 보고 죽을 밖에 없어. 시방 보건소 있는 것만도 고맙소."

할아버지는 더 이상 아들을 못 낳는 할머니를 버리고 떠나 새살림을 차렸고 거기서 아들을 얻었다. 할머니는 어려서 아들 여럿을 잃어버린 것이 원통하고 한스럽다. 묵정밭이 되었지만 옛날에는 안마도의 산들도 중턱까지 모두가 밭이었다. 섬은 오랫동안 어로보다 농사가 주업이었다. 작은 섬에 많은 인구가 먹고 살기위해 산들을 개간했다. 하지만 지금은 노인들만 남아 농사지을 힘이 없다보니 밭은 다시 우거진 숲이 되었다. "산 밑이 빽빽빽 밭이거든. 다들 묵여 버리고." 할머니는 아쉬운 듯 산밭을 바라본다. 할머니는 건너 신기 마을에서 태어나 월촌 마을로 시집 온 뒤 한 번도 섬을 떠나지 않고 살았다. 섬의 노인들이 대부분 그렇다. 오늘은 모처럼 쉬지만 할머니는 내일 아침이면 다시 밭을 매러 갈 생각이다. 움직일 수만 있다면 죽는 날까지 그러할 것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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