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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말로 못하고 생살에 새긴 ‘추억’

강제윤 시인 - 진도 독거도 기행(상)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1.10.13 09:19
  • 수정 2015.11.11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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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척에 있는 섬들 간의 거리가 때로는 머나 먼 육지보다 멀다. 독거열도의 작은 섬들 또한 그러하다. 섬들 간의 교통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후 세시, 조도에서 여객선을 탄다. 섬 사랑 9호는 하루 한차례 진도 서망항에서 조도 어류포항 사이를 왕복한다. 독거도, 탄항도, 슬도, 혈도, 죽항도, 섬등도 등의 작은 섬들이 이 항로에 있다. 내릴 사람이 없을 때는 탈 사람이 있다는 연락을 받아야만 섬에 들른다. 기름 값을 아끼기 위한 고육책이지만 몇 가구 살지 않는 작은 섬은 그래서 더욱 외롭다.

선장실, 선장 대신 잠시 운전대를 잡은 늙은 선원의 팔뚝에 '추억'이라는 문신이 선명하다. 생살을 파내서라도 간직하고 싶은 추억이란 어떤 추억일까. 달아나버릴까 두려워 입으로는 말하지 못하고 생살에 새긴 추억. 독거도로 가는 뱃길, 선원의 눈빛이 고독하고 쓸쓸하다. 독거도(獨巨島)는 본디 독고도(獨孤島)였다. 섬의 본질을 그대로 담고 있는 이름. 얼마나 지독하게 외로운 섬이었으면 이름마저 홀로 외로운 섬이었을까.

바로 옆의 작은 섬 탄항도와는 썰물 때면 잠깐 하나로 연결되지만 들 물이면 이내 섬은 다시 혼자가 된다. 구도, 납태기도, 초도, 화단도, 제주도, 소제주도 등의 섬들이 곁에 있으나 사람 하나 살지 않는 이들 무인도들 또한 제각기 외롭다. 뜬금없이 제주도라니! 이름은 같아도 한라산이 있는 그 제주도가 아니다. 제주도, 소제주도 등은 제주도로 가는 방향을 알려주는 지표로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섬의 산이나 무인도, 여 등은 종종 방향을 가르키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사량도의 지리산이나 굴업도의 연평도산 등이 그 같은 경우다.

독거도, 아침에 들어왔던 화물차 한 대가 미역을 가득 싣고 배에 오른다. 나그네는 섬에 들고 여객선은 진도를 향해 뱃머리를 돌린다. 독거도 발전소 앞 묵정밭은 돌미역을 말리는 건조장이다. 건조장에서는 섬 주민들과 뭍에서 들어온 일꾼들이 함께 작업 중이다. 독거도에 는 15가구 19명의 주민이 산다. 주민들은 각자의 미역밭에서 자란 미역을 베어다 말린다. 여름 한철 미역 농사로 일 년을 먹고 산다. 어느 건조장이나 독거도 미역이 대한민국에서 최고라는 자랑이 대단하다. 가격도 배 이상 비싸다.
"다른 데 미역은 그냥 줘도 안 먹어. 국 끓여놓으면 다 풀어져 갖고."
 

 

 

독거곽. 돌곽, 산모곽. 독거도 미역을 부르는 다양한 이름들이다. 독거도 미역은 자연산 돌미역이지만 거저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미역을 얻기까지의 과정은 양식만큼이나 품과 노력이 많이 든다. 오래 끓이면 퍼져 버리는 양식 미역들과는 달리 오래 끓일수록 뽀얀 국물이 우러나면서도 퍼지지 않는다. 오래전부터 독거도 미역은 산후 조리에 좋다 해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독거도의 여성 이장인 여성자 이장님은 독거도 미역의 유명세 때문에 곤경을 치렀던 경험이 있다. 이십 수년 전 전두환 정권 때다.

"전두환이 며느리가 애를 낳았는데 며느리 멕일라고 독거도 미역을 찾았답디다. 도지사한테 독거도 미역을 구해 보내라고 명령을 내렸다 하요. 도지사는 진도 군수한테 명령하고. 군수는 나한테다 미역을 보내라 하고. 그때 여기는 미역을 다 팔고 없었지라. 하는 수 없이 애들 아부지가 광주까지 올라가서 다시 독거도 미역을 사왔서라. 그 미역을 다시 청와대로 올려보냈소."

지금도 독거도 미역은 양이 많지 않아 서울까지 못 올라가고 대부분 광주 전남지역에서 소비된다. "오늘은 미역이 더러갔고." 사각의 틀에다 미역 가닥을 올리던 일꾼 한사람이 혀를 찬다. 보기에는 매끈하고 깨끗한데 무엇이 더럽다는 것일까. 센 파도 때문에 미역 잎사귀가 부서지고 떨어져 나가 상태가 좋지 않다는 뜻이다. 평지가 거의 없는 산악 지형인 섬에는 논이 전혀 없고 작은 텃밭만 조금 있다. 대부분의 곡식은 미역을 팔아 뭍에서 사다 먹는다.

독거도는 이즈음 섬 전체가 미역 건조장이다.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바쁜 철에 섬을 찾아온 것은 나그네의 실수일까. 하지만 이때가 아니면 어찌 독거 섬 사람들의 치열한 생존의 모습을 엿볼 수 있겠는가. 섬에는 민박을 하는 집이 전혀 없다. 예전에는 노인 회관을 개방해서 외지인을 더러 재워주기도 했지만 주민들 간에 합의 되지 않는 문제가 있어서 지금은 개방하지 않는다.

밥이야 굶을 수 있지만 잠자리가 문제다. 마을 정자에서 노숙을 할 수도 있지만 독한 바다 모기떼에 물어뜯길 생각을 하니 엄두가 안 난다. 휴대용 모기장이라도 가지고 다녀야 할까보다. 마을을 다 돌고도 달리 방도를 찾지 못해 결국 이장님 건조장을 다시 찾았다.

"빈방은 없고 우리 아들이랑 같이 자시오."
이장님은 흔쾌히 허락 하신다. 고맙고 또 고마운 일이다. 마을에는 문을 잠가둔 채 주인이 뭍으로 나가고 없는 빈집도 여럿이다. 그런 집 마당에도 식기도구와 빨래 등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미역 건조장에 품팔이를 온 일꾼들이 잠시 마당과 마루만 빌려 쓰는 것이다.

미역철인 지금은 그래도 섬에 활기가 돈다.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방학이라 뭍에서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집으로 돌아와 일을 거든다. 하지만 미역 철이 끝나면 섬은 다시 적막강산. 노인들만 남아 기나긴 날들을 보내게 될 것이다. 해 다 진 저녁. 미역 건조장 품팔이를 마치고 언덕을 넘어 오는 할머니 한분. 걷기도 힘에 겨워 느릿느릿 힘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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