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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구렁이 한 마리가 천만 원이요, 천만 원”

강제윤 시인 - 진도 독거도 기행(하)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1.10.20 10:18
  • 수정 2015.11.11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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뭍의 농토처럼 독거도 주민들에게는 모두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미역밭이 있다. 하지만 섬에 채취선은 5척뿐. 자기 배가 없는 사람들은 남의 배를 얻어 타고 미역을 베어온다. 미역밭은 섬을 둘러서 있고 그래서 물이 적게 빠지는 물때에는 사람들이 반쯤 물에 잠겨 벼를 베듯이 낫으로 미역을 벤다.

섬에는 방파제가 없어서 배를 숨길 곳도 마땅치 않다. 어느 해 태풍 때는 배 다섯 척이 다 깨진 적도 있다. 더러 뭍으로 올려놓아 보기도 했지만 그 또한 태풍이 몰고 온 큰 파도가 싹 쓸어가 버렸다. 그 후부터는 태풍이 온다는 소식이 들리면 진도로 나가 배를 피신시킨다.

독거도 사람들은 굴포리로 들어가고 슬도 사람들은 주로 서망항으로 간다. 어떤 때는 파도가 너무 세서 죽음을 무릅써야 할 때도 있다. 섬의 뒤 안의 방파제를 부셔버린 것도 태풍이다. 포구 가까이에 바람과 파도로부터 섬을 보호해줄 보호막이 없으니 섬은 오래도록 고독했던 것일까.

섬에는 두 개의 우물이 있었다. 오래도록 섬 사람들의 식수원이 되어 준 고마운 우물. 지금은 사람이 몇 살지 않아 모터를 달아서 뽑아 올려 써도 크게 부족함이 없지만 예전에 사람들이 많이 살 때는 늘 물이 부족 했다. 그래서 아침이면 종을 처서 물 길러갈 시간을 알렸다. 그때는 물을 길어 올려 모두 똑같이 양동이에 나누어 주었다. 두레박 달가닥 거리는 소리에 잠을 못잘 정도였다. 두 개의 우물 중 바위샘 우물 하나는 아이가 빠져 죽은 뒤 매워 버렸고 지금은 마을에 우물이 하나만 남았다. 정자 옆 우물가 고목에는 아직도 그때 울리던 종이 매달려 있다.

밤 10시가 넘도록 독거도는 환하다. 팔순의 노인까지도 쉬지 못하고 미역 건조장 일을 한다. 직사각의 틀에 미역가닥을 올리는 노인의 손길이 힘겹다. 제 한 몸도 가누기 힘든 노인마저 야간작업을 하게 만드는 돈의 위력이 놀랍다. 독거도 미역은 바위에서 자라는 자연산 돌미역이지만 양식장 못지않게 많은 손길을 필요로 한다.

 

 

미역 포자가 하나라도 더 많이 바위에 붙도록 하기 위해 겨울이면 '갯닦기' 작업을 해야 한다. 갯바위를 깨끗이 청소하는 일이 '갯닦기'다. 겨울 칼바람 맞으면 바닷물에 들어가서 하는 갯닦기는 미역 건조만큼이나 고역이다. 갯바위에 포자가 붙어야 미역이 튼튼하게 자랄 수 있다. 포자는 미역귀라 부르는 머리 부분에서 나와 바위에 붙는다.

독거도의 '갯닦기'는 조선 시대부터 있어왔던 오래된 전통 노동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포자가 갯바위에 부착되어 자라기 시작하는 음력 4월경부터는 매일 물을 끼얹어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작은 미역 순이 햇빛에 말라 죽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 자란 미역은 7월 중순 경부터 8월 15일 사이에 낫을 들고 가 베어온다. 그때가 가장 '약이 찰 때'다. 빳빳하니 품질이 좋다는 뜻이다.

그 물미역을 종일 틀에 넣어 말린다. 자연산 미역이라고 그저 바위에 붙은 미역을 뜯어다 말리면 끝이 아닌 것이다. 들이는 공력에 비하면 미역 값이 비싸다고 할 수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지금이야 묵정밭이 많아져서 밭에다 미역 건조장을 만들었지만 예전에는 바닷가 바윗돌에다 말려야 했으니 품이 더 들었다. 그 다음에는 김처럼 대나무로 만든 발장을 써서 말렸는데 곰팡이가 많이 펴서 매번 세척 하느라 고생이 심했다. 지금은 그물로 만든 발장을 미역 건조대로 쓰니 많이 편해 진 셈이다.

돌미역은 그 생긴 모양에 따라 부르는 이름도 각각이고 가격 차이도 크다. 잎이 넓적한 떡곽, 줄기가 거의 없이 잎만 댓잎처럼 늘어진 댓잎 미역, 잎은 적고 거의 줄기로만 이루어진 쫄쫄이. 오돌오돌하고 쫄깃쫄깃한 쫄쫄이를 최상품 미역으로 친다. 떡곽은 나오는 양이 많아 값이 싼 편이다. 독거도 미역은 2가닥을 한 구찌로 셈하는데 10구찌가 한 뭇이다.

최상품은 20가닥 한 뭇에 100만원을 호가한다. 일반 미역의 다섯 배다. 그래서 거의 산모들에게 선물용으로만 팔린다. 한참 잘 나갈 때는 미역 한 뭇 팔아서 송아지 한 마리를 샀던 적도 있다. 그러나 독거도 미역도 점차 산출양이 줄어드는 추세다. 예전에는 보통 한집에서 100~150뭇씩을 했지만 지금은 잘해야 50뭇이다. 미역은 자연 상태에서 말린 것이 최고다. 선선한 바람과 강렬한 햇빛을 받아 말린 미역은 파란 색이 나온다. 하지만 건조기에 말린 미역은 색이 까맣다.

미역 건조일이 끝난 밤, 10시. 이장님 집 툇마루에 동네 청년 몇이 모여 소주잔을 기울인다. 새벽부터 시작된 고된 노동 끝에도 뒷풀이가 빠질 수 없다. 도시에 살다가 여름 미역 일을 도우러온 이들. 다들 어린 시절부터 미역 일에는 이력이 났다. 고생담과 무용담이 난무한다.

옛날에는 미역을 베다 헤엄쳐 가는 구렁이도 자주 잡았다. 큰 놈은 2m가 넘었다. 그런 구렁이 한 마리면 100만원도 더 받았다. 지금은 구렁이는 고사하고 독사나 살모사도 구경하기 힘들다. 그래서 요새는 구렁이 값이 금값이다. “지금은 구렁이 한 마리 잡으면 1000만원이요.” 아무리 귀해도 그렇지 구렁이가 산삼도 아니고 웬 1000만원? 다들 멀뚱거리는데, 이장님 막내아드님 한 말씀. “벌금이 1000만원이요, 1000만원.” 그렇게 독거도의 밤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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