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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신선들이 떠나간 섬은 적막하다

강제윤 시인 - 선유도, 무녀도 기행(상)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1.11.17 09:50
  • 수정 2015.11.11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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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들이 사라지고 있다. 지나간 100년 동안 군산 연안에서만 모두 12개의 섬이 사라졌다. 1880년대 71개였던 군산 연안의 섬이 현재는 59개에 불과하다. 섬을 없애버린 것은 사람들의 욕망이다. 1890년대 초반 선혜청 당상관 이완용에 의해 만경강 인근 바다에서 간척이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군산 앞바다에서만 5차례의 대규모 간척이 있었다. 간척의 시작이 외세를 등에 업은 매국노의 손에서 시작 됐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오식도, 내초도, 입이도, 무의인도, 가내도, 조도, 비응도, 장산도 등 앞선 네 번의 간척으로 사라진 섬들은 대부분 섬의 존재를 증거 할 사진 한 장 남지 않았다. 최근의 새만금 간척으로 사라진 섬은 야미도와 신시도, 북가력도와 남가력도 등이다.

이 시대는 두 세대가 공존한다. 고향을 가진 세대와 고향을 상실한 세대. 국토의 급격한 도시화로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잃었다. 태어난 땅은 있어도 더 이상 고향은 없는 시대. 도시화 시대, 실향민들에게 섬은 잃어버린 고향의 원형이다. 사람들이 향수를 지니고 섬으로 가는 것은 그것이 존재의 시원을 찾아가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섬들의 시대도 저물어 간다. 마침내 섬들이 아주 사라지고 나면 사람들은 어디에서도 고향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12년만의 선유도행. 그 사이 장미동 군산 여객선 터미널이 폐쇄되었다. 금강 하구언 둑을 막으면서 토사가 쌓여 수심이 얕아졌다. 장미동의 구 여객선 터미널 일대 바다는 썰물 때면 갯벌이 드러나 더 이상 배가 다닐 수 없게 된 것이다. 소룡동에 새 여객선 터미널이 들어섰다. 허허벌판의 항구, 터미널 건물만 달랑 외롭다. 터미널 인근에는 인가나 식당 건물 하나 없고 온통 공장들뿐이다. 이토록 황망한 항구는 세상에 다시없을 것이다.

 12년 전 하루 두 번 뿐이던 여객선이 이제는 수시로 다닌다. 두 시간 넘던 항해 시간도 쾌속선이 출항하면서 절반으로 단축 됐다. 고군산 군도를 운항하는 유람선도 수시로 뜬다. 선유도는 유명 관광지로 변신했다. 승객들 대부분이 중 노년의 단체 관광객들이다.

선유도 선착장도 전형적인 단체 관광지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배에서 내리자 사발이(사륜 오토바이)가 손님을 기다리고 골프카와 민박집 봉고차들이 그 뒤를 이어 대기 중이다. 횟집들도 줄지어 늘어섰다. 선유 1번지 마트 횟집, 선유 횟집, 터미널 횟집, 선유 팔경 횟집, 평사낙안 횟집.....횟집들은 수족관 외에도 큰 고무 대야에 물고기와 해산물들을 가득 담아놓고 호객에 열심이다. 낙지, 문어, 소라, 해삼, 도다리, 광어, 우럭, 놀래미, 숭어, 굴, 전복, 홍합, 멍게 등이 손님을 기다린다.

대야에 전시된 물고기들은 새만금 공사 이후 빈약해진 서해바다 어족의 모습을 날 것으로 보여준다. 어종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전에 비해 많이 잡히는 것은 문어뿐이다. 선유도라고 다르지 않다. 횟집마다 산 문어가 가득하고 널어 말리는 문어는 더 많다. 문어가 많이 잡히는 것이 어민들에게는 결코 달가운 일만은 아니다. 포식자 문어의 대량 출현으로 전복, 소라, 해삼 등 고급 해산물의 수확이 급감 했다. 문어가 특히 좋아하는 돌게는 거의 잡히지 않는다.

물고기와 해산물의 씨가 말라가도 선유도 횟집들은 한창 호황을 누린다. 몰려드는 관광객들 덕택에 작은 횟집 하나가 주말이면 하루 수백 만 원의 매출을 쉽게 올린다. 마른 멸치와 멸치 액젓, 까나리 액젓, 조개 젓 등이 특산물로 육지 손님들에게 팔려 나간다. 이곳도 한동안 바가지요금이 극성이었나 보다. 마을 공지판에는 마을 주민들이 정한 선유도 <해수욕장 협정 가격 안내> 플랑카드가 큼직하게 붙어 있다. 숙박비 2인1실 3만5천원~6만원, 백반 5천원, 생선탕류 1인분 1만원, 회 1kg에 4만~6만원. 맥주 한 병, 과자 한 봉지까지 협정 가격이 정해져 있다.

선유도의 행정 중심은 선유 2구다. 선유 2구에는 전에 없던 해안도로가 생겼고 새로 갯벌을 매립한 땅에는 파출소와 보건소, 우체국 등이 들어섰다. 갯벌을 가로질러 해안도로가 직선으로 생기면서 선유 2구 해안의 풍광도 바뀌었다. 포크레인과 덤프트럭이 오가며 새 도로 사이에 생긴 갯벌을 매립하느라 소음이 심하다. 전에는 중앙민박이나 선유초등학교 대문 앞까지 바다 물이 들어 왔었다. 이제 호수같이 평온한 풍경은 다시 볼 수 없게 됐다. 바로 건너 새만금 바다에서는 간척 공사로 4만ha나 되는 광대한 갯벌이 사라져 버린 마당에 저 작은 갯벌 쯤 사라지는 것이 무슨 이야기 거리나 되겠는가. 그래도 옛 선유 포구의 비경을 기억하는 나그네는 그저 아쉽고 안타깝다.

그래서 일까. 나그네는 평사낙안을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맸다. 새로 생긴 관공서 건물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어렵게 다시 찾은 평사낙안도 더 이상 예전의 평사낙안은 아니다. 망주봉 아래 바다에 형성된 모래톱이 망주봉에서 보면 모래사장으로 날아드는 한 마리 기러기 모습과 같다 해서 평사낙안이라 했었다. 해안 도로를 만들며 섬을 둘러친 시멘트 옹벽 덕분에 평사낙안은 이제 그저 평범한 모래톱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선유 8경중 또 한 경치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조기떼가 떠나가면서 옆 섬 장자도 밤바다를 밝히던 ‘장자어화’가 사라져 버렸으니 먹을 것 없는 바다에서 기러기가 떠나는 것도 당연한 일인가. 어째서 이 나라는 ‘자연 유산’을 망치는 데 한 치의 주저함도 없는 것일까. 어째서 조형미 넘치는 자연의 정원이 사람 손으로 만든 인공 정원이나 건축물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것일까. 만인의 것은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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