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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새만금 막으면서 고기 씨가 말랐어요”

강제윤 시인 - 선유도, 무녀도 기행(하)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1.12.01 15:00
  • 수정 2015.11.11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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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도와 무녀도는 사람과 이륜차만 다닐 수 있는 철교로 연도 되어 있다. 무녀 2구 해변 가에서 아주머니 한분이 그물 손질중이다. 서해안 다른 지역에는 올해 꽃게가 풍년이라는데 이곳에서는 꽃게도 잘 들지 않는다. 날마다 문어만 잡힌다.
“저기 막으면서 암 것도 안 잽혀요. 기나 잡아요. 딴 고기는 하나도 없어요. 고기가 씨가 말랐어. 그 전에는 광어 같은 것도 들었는데. 사람이 살 수가 있어야지. 바다가 육지가 되는데.”

새만금 방조제를 막으면서 고기가 씨가 말랐다는 것은 빈말이 아니다. 어류의 산란장이던 갯벌이 사라지고 육지에서 내려오던 영양분이 사라지니 물고기들도 모두 떠나간 것이다. 아주머니는 육지와 다리가 생기는 것도 반갑지 않다.

“다리 놔지면 섬사람들 인자 못 살아요. 지금이사 대문도 없이 사는데. 여그는 내 것 아니면 안 가져가요. 이 앞에 쌀을 내 놔도 안 가져가요. 인제 외지 사람들 차 들어오고 그러면 다 가져 갈 거 아녀요. 맨당 머 잃어 묵으까 걱정하느라 일도 지대로 못하겄지. 다리 놔지면 존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겄지만 사람 피곤하기만 할 것이요. 골치 아퍼 죽겄어요. 동네 사람들끼리 살어야 쓴디.”

육지에서 오는 관광객들도 일부 횟집이나 민박집에만 도움이 될 뿐 대부분의 어민들에게는 보탬이 안 된다. “관광객 온다 해도 소용없어요. 즈그들 먹을 거 다 싣고 와요.”

그물을 손질하는 아주머니 옆에서 옆집 식구들은 김 양식 준비에 바쁘다. 어린 김을 이식할 밧줄을 손질하고 있다. 간단해 보이지만 김 양식은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간다. 먼저 조개나 굴 껍질 등에 김 포자 액을 뿌린 뒤 김 양식장의 그물에 매달아 놓는다. 보름 정도 지나면 거기서 나온 김 싹이 그물에 붙는다. 다시 열흘이 흐르면 그물 전체로 김들이 퍼져 나간다. 그렇게 어느 정도 자란 어린 김을 떼어내서 밧줄에 하나 씩 옮겨 붙인 뒤 바닷물 속에서 키운다. 벼를 파종하여 모내기 하는 것과 같다.

모내기 뒤 보름에서 이십일이 지나면 첫 수확이 가능하다. 첫 번째 수확된 김은 너무 물러서 질이 떨어진다. 서너 번째 수확한 김의 품질이 그중 좋다. 겨울에 평균 여섯 번 정도 수확한다. 새만금 방조제를 막고 난 뒤에는 김 양식에도 피해가 크다. 김은 차가운 물에서 잘 자라는 한대성 해초다. 수온이 지나치게 높으면 아주 녹아 없어져 버리기도 한다. 그런데 새만금 방조제가 생기면서 조수의 흐름이 멈추자 수온이 높아져 김의 수확이 많이 줄었다. 그래도 김 양식을 그만둘 수 없는 것은 고기마저 잡히지 않는 바다에서 먹고 살길이 막막한 때문이다.

간척지 들판을 지나 무녀 1구로 간다. 둑을 막기 전에는 여기도 갯벌이었을 것이다. 간척 된 땅은 논이나 밭으로 경작되지 않고 온통 갈대밭이다. 일부는 염전으로 쓰였으나 지금은 염전도 문을 닫았다. 갈대밭이 끝나는 지점에 몽돌 해변이 있고 숲길을 따라 오르니 저수지다. 무녀도, 선유도, 장자도 사람들의 상수원. 정수장 인근에는 민가 한 채 없다. 물은 오염원이 없다. 인기척에 놀란 오리떼가 저수지 위로 날아오른다.

정수장 샛길을 따라가니 무녀봉 오르는 길목이다. 이쯤 어디에 있다고 들었었다. 무녀도에 마지막 남은 초분이. 바람에 죽은 육신을 맡겨 육탈의 날을 기다리는 풍장. 길은 두 갈래 길. 고군산 일대의 초분 풍습이 다 사라진 뒤에도 마지막 초분이 한기 남은 것은 그 집안의 끊이지 않는 우환 때문이었다. 40여 년 전에 매장을 했으나 연달아 일어나는 집안의 우환이 매장에서 비롯된 것이라 여겨 다시 시신을 수습해 초분을 쓴 것이다.

무녀봉 오르는 길은 아닐 것이다. 왼쪽 샛길 어디쯤에 초분이 있을 것이다. 묘를 썼다면 산 중턱까지라도 올랐을 터지만 초분은 멀리 가지 않고 마을 언저리나 산기슭에 있기 마련이다. 샛길의 끝에도 초분이 없다. 길목에 새로 쓴 듯한 묘만 하나 있다. 산길을 나와 근처 가게 주인에게 물으니 올 봄, 초분 있던 자리에 묘를 썼다 한다. 아까 본 새 묘가 그 초분의 주인을 매장한 것이었다. 무녀도의 마지막 초분마저 사라져버렸다. 집안에 일어나던 액운은 모두 물러간 것일까. 모든 것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이제 초분에서 매장으로 이어지는 고군산군도의 2중 장례 풍습도 아주 소멸되고 말았다. 무녀도를 한 바퀴 돌고 다시 선유대교 아래로 나오니 죽어 있던 어선들이 다시 살아나 있다. 썰물 때 저 어선들은 마른 해삼처럼 뻘밭에 처박혀 오도 가도 못했다. 들물이 되자 어선들은 물먹은 해삼처럼 다시 살아나 바다를 유영한다.

바람이 분다. 또 며칠 배가 다니지 못할 것이다. 아침 첫배, 옥도페리호가 오늘 군산 행 마지막 배다. 선유도에 들어오는 관광객은 몇 되지 않는다. 떠나는 관광객들 속에 육지 나들이 가는 섬 주민들도 섞였다.
“저번 날 보단 덜 부네.” “나가 봐야 알지.” “뒤로가?” “뒤가 나서.”

파도가 심하게 치는 날에는 배의 앞 선실보다 뒤쪽 선실이 편안하다. 무거운 기관실이 배의 후미에 있어 그 곳이 덜 흔들리기 때문이다. 멀미가 두려운 여객들은 넓은 앞쪽 선실을 두고 다들 비좁은 뒤쪽 선실로 몰려든다. 배가 출발하기도 전에 각기 자리를 잡고 눕는다. 고단한 뱃길을 예감한 것일까. 삶이란 때로 도무지 알 수 없는 안개 속처럼 혼미하다. 하지만 삶이란 그보다 더 자주 예측 가능한 삶들의 연속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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