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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먹고 남는 백령도, 쓰고 남는 소청도

강제윤 시인 - 백령도 기행(하)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1.12.22 08:35
  • 수정 2015.11.11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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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억 혈세 낭비에도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어
백령도에서 둘째 날, 오늘은 용기포구 민박집에 숙소를 잡고 사곶 해변을 지나 백령호와 간척지, 중화동 교회 전시관까지 걷는다. 후배는 발에 물집이 잡혔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따라 나선다. 사곶 해수욕장은 이탈리아의 나폴리와 함께 세계에 단 두 곳 뿐인 천연 비행장으로 유명하다. 용기포에서 시작된 백사장은 10리길. 이곳의 모래밭은 미세한 규암 가루가 두껍게 쌓여 이루어진 해안이다. 물이 빠지면 콘크리트 바닥처럼 단단해서 한국전쟁 때는 유엔군이 천연 활주로로 활용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썰물 때면 지금도 자동차들이 아스팔트길처럼 달리기도 하지만 이 해변은 더 이상 천연 비행장 역할을 할 수 없게 됐다. 스폰지 현상으로 곳곳이 푸석푸석한 모래밭으로 변해 버렸고 설상가상 갯벌화 되고 있기까지 하다. 두발로 걷다가도 자주 발이 푹푹 빠진다. 바다 가까이 걸으면 그나마 조금 더 단단하다. 해안가를 따라 수 킬로에 이르는 옹벽을 쌓고, 백령호를 만드는 과정에서 제방을 막은 까닭이다. 이 옹벽과 제방이 주변 조류의 흐름을 바꿔 놓은 것이다. 조류가 바뀌면서 점토질의 퇴적물들이 먼 바다로 쓸려 나가지 못하고 해안으로 유입되어 사곶 모래밭에 엉켜 붙어 모래밭을 갯벌화 시키고 있다.

이 지방에 전해 오는 말에 “먹고 남는 백령도, 때고 남는 대청도, 쓰고 남는 소청도”란 이야기가 있다. 예부터 백령도는 농토가 넓어 자급자족이 가능했다. 그럼에도 사곶과 화동 사이 820m 바다 물길을 막아 담수호를 만들고 만 안 쪽의 갯벌 350ha(100만여평)를 논으로 만들었다. 간척 사업에 40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농어촌진흥공사의 작품이다. 간척이 되기 전 갯벌 바다에는 꽃게와 가자미가 넘쳐 났고 김양식과 굴 양식은 어민들에게 큰 소득을 안겨 주었었다. 이제 갯벌은 사라지고 간척 사업이 끝났지만 새로 생긴 100만평의 논 또한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물이 있어야 농사도 지을 수 있다. 하지만 농업용수로 쓰기 위해 129ha(40만평)의 담수호를 만들었으나 염분의 유입으로 담수호는 농업용수로 쓸 수 없는 염호가 되고 말았다.

수문을 막아 가둔 호수에는 망둥어나 숭어, 붕어 따위나 살아간다. 가두어 놓아 썩어가는 물은 여름 장마철에만 방류를 시킨다. 그때 썩은 부유물들이 백령도 해안을 검은 띠처럼 감싸고 돈다. 백령도에서 만난 주민들은 간척지를 논으로 쓰지 못할 바에야 둑을 허물고 갯벌을 되살려 주기를 바라지만 요원한 일이다. 관청의 실패를 자백받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간척 사업의 실패로 막대한 예산이 낭비 됐고 주민들의 삶의 터전인 갯벌이 유실 됐다. 게다가 천연 기념물인 사곶 해수욕장까지 썩어가게 만들었지만 누구하나 책임지는 이가 없다. 이 나라에는 티끌만한 공로에도 표창을 받는 관료들은 부지기수지만 크나큰 정책 실패에도 문책 받는 관료는 드물다. 그것이 이 나라 공기업과 정부 조직의 현실이다. 그러니 정책 실명제가 필요한 것이다. 실패한 사업에 책임을 지게 한다면 누가 함부로 예산을 낭비하겠는가.  

노인과 홍합
두무진 길에 비해 중화동 가는 길은 상대적으로 한적하다. 군부대 수가 적으니 이동하는 차량도 드물다. 중화동 교회는 1884년 황해도 소래에 첫 번째 교회가 세워진 이후 이 땅에서 두 번째로 세워진 장로교회다. 그런 영향인지 섬 주민의 80% 이상이 기독교 신자다. 중화동 해변에서 노인 한분이 깐 홍합을 바닷물에 씻고 있다.

“할아버지 홍합 조금만 파실 수 없으세요?” “가게 하는 사람이 맞춰 놓은 거라.” 노인이 주저한다. “그래도 아주 조금만 파세요. 둘이 저녁에 술 안주나 할려구요.” 마침 손가방에 비닐 팩이 있었다. 노인은 하나 가득 담아 주신다. “얼마를 드리면 될까요?” “뭔 돈을 받갔시오.” “그럼 죄송하지요.” 노인은 한사코 손을 젓는다. 만 원 권 한 장을 드린다. 도시의 시장에서 산다면 몇 만 원어치는 족히 되고도 남을 양이다. “그건 너무 많시다.” 받지 않으려 하신다. “그럼 5천원 드리겠습니다.” 노인은 마지못해 돈을 받으시면서 미안한 기색이 역력하다. “미안하오. 돈을 받아서리.” 미안한 건 우리가 아닌가. 누가 맞춰놓은 것을 억지로 팔라고 하지 않았는가. 노인은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자전거에 홍합 광주리를 싣고 마을로 사라진다. 그새 날이 저문다.

강풍보다 두려운 안개
강풍주의보로 배가 묶였다. 용기포 앞바다는 안개의 군단까지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다. 바다에서 두려운 것은 풍랑보다 안개다. 안개의 군단 앞에서는 백령도의 해병대나 UDT라도 별 수 없다. 포위가 풀리기만을 기다릴 뿐. 배가 뜨는 것처럼 배가 못 뜨는 것 또한 섬에서는 일상이다. 안개에는 영혼을 침식시키고 주저앉게 만드는 어떤 마력이 있다. 나그네야 하루나 이틀쯤 백령도에 더 눌러 있은들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마는 일을 해야 하는 후배는 마음이 급하다. 후배는 섬을 빠져나갈 방도가 없는지 부둣가 구석구석을 누비다 들어온다.

“형, 방법이 있대요.” “무슨 방법?” “오후에 화물선이 한 대 뜨는데, 대리점에 부탁하면 탈 수 있다네요.”
인천까지 열네다섯 시간이 걸리는 화물선이 뜰 모양이다. 오후 세시에 뜬다던 배가 다섯 시가 다 되서야 출항한다. 안개가 서서히 포위망을 풀고 있다. 작전상 후퇴일 것이 분명하다. 오래지 않아 안개군단은 다시 밀려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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