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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귀걸이를 한 칠순의 농부

강제윤 시인 - 옹진 문갑도 기행(상)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1.12.29 10:33
  • 수정 2015.11.11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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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진군 덕적면 문갑도, 노인은 말린 고추를 손질하고 있다. "어디 안 아픈 디 없지. 너무 나이도 많고. 그래서 아무 것도 못해요. 올해 여든넷이요. 그냥 방에서 밥이나 먹고 들어앉아 있지." 노인은 덕적도 도우 마을에서 문갑도로 시집 왔다. 열일곱에 낯선 섬으로 왔으니 문갑도에서만 67년을 살았다. "애기가 시집 왔으니께 맨 날 울었지요. 저 덕적 섬만 보고 맨날 운거에요. 가는 배나 있시야 가지. 우리 시아버지가 조그만 이런 배를 부려요. 돛단배. 시아버지가 날 덕적에 실어다 줬어요. 시아버지가 날 그렇게 이뻐 했어요. 조선에 없는 며느리라고 귀여워했어요. 시집은 아들만 하나고 아무도 없어요. 친척도 없고 일가도 없고. 친정만 가면 내가 안 오니까. 안올라고 울어 싸면 시아버지가 델꼬 오고."

노인은 열일곱 그 어린 나이에 시집을 왔으니 날마다 울면서 고향 덕적도만 그리워했다. 더러 친정으로 달아나기도 했지만 이내 친정 부모 손에 등 떠밀리고 시아버지 손에 이끌려 다시 돌아와야 했다. 여든이 넘었지만 노인은 여전히 곱다. 외아들에 어린 외며느리 얼마나 귀염을 많이 받았을까. 노인은 당최 아무 일도 할 줄 아는 게 없다고 겸사를 하시지만 그 징하고 신산한 섬 살이를 다 헤쳐 오셨다. "내가 근분 뭘 못해요. 그저 그냥 밥이나 해 묵고. 나무 해다 때고, 밭에서 보리 갈아서 거두고, 겨울 되면 갯 바탕에 굴 따고. 그것 밖에 암 것도 못해요." 외동아들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동갑이었다. 할아버지는 돛단배를 타고 연평도까지 조기잡이를 다녔고 문갑도 뒤쪽 바다에서 새우 잡이를 했다. 그 때만 해도 새우 잡아 젓을 담갔고 섬은 풍요로웠다. 그렇게 건강히 일하던 할아버지는 갑자기 아프다고 하더니 손써볼 틈도 없이 명을 다했다. 막 환갑이 됐을 때였다. "지금으로 치면 암 병인가 봐요. 없이 사니께 병원을 갔나요 뭘. 아프니께 들어앉았다 돌아가셨제."

할아버지는 암에 걸려 아무런 치료도 못 받아 보고 숨을 거두었다. 할머니는 없이 살아 자식들 공부 못 시킨 것이 평생의 한으로 남았다. 섬에서 같이 사는 큰 딸은 예순넷. 아들은 오십도 못 되서 이승을 떴다. 노인은 그래도 지금은 사는 것이 평안하다. "옛날에 이거 사람 살 동넨가요. 아무 것도 해먹고 살 수 없는 동넨 걸요." 같은 덕적군도의 섬이지만 문갑도는 덕적도나 소야도와는 달리 갯벌이 거의 없다. 뻘바탕에서 나오는 것이 적으니 섬살이가 더 팍팍하다. 새우잡이 어장으로 유명했던 문갑도. 어장에서 새우가 사라지자 어선들도 모두 떠나갔다. 다른 섬들과 달리 젊은 사람이 들어와 먹고 살 길이 없으니 섬에는 아이가 하나도 없다. 노인들만 40여 가구. 하지만 작은 섬에 교회는 셋이나 된다.

마을 안길로 들어서니 섬은 전형적인 농촌이다. 메밀은 이제 막 꽃이 피었으나 고구마는 캘 때가 다 됐고 수수도 여물었다. 마을은 병풍처럼 둘러선 산자락 아래 포근히 안겨 있다. 마을의 맨 끝 언덕에 교회 하나가 서 있다. 낡은 교회 뒤 수수 밭에서 노인 둘이 밭일을 하고 있다. 부부일까. 할아버지는 수수를 베고 할머니는 수숫대에서 알곡이 달린 마디를 잘라낸다. "수수를 많이 심으셨네요." "많이 심었어도 소용없어요. 비둘기, 까치가 다 먹어 버리고." 할아버지가 밭주인이고 할머니는 일을 거들러 온 동네 사람이다. 노인은 식량도 하고 팔기도 하려고 수수를 심었다. 올해 수수는 작황이 좋지 않다. 수수를 베던 노인은 잠시 일손을 멈추고 쉬신다. 간만에 섬을 찾아온 나그네를 반기는 눈치다. 노인은 올해 칠십이지만 허리가 꼿꼿하고 활력이 넘친다. 언뜻 봐서는 오십대처럼 보인다. "작년만 해도 예순이 안 된 걸로 보더니 신경을 많이 쓰니까 갑자기 늙어 버리더라구요. 올해 팍싹 늙었어요." 노인의 아내는 몸이 마비 되서 2년째 병원에 입원해 있다. 노인의 외모가 범상치 않다. 양쪽 귀에는 귀걸이를 했다. "멋쟁이시네요. 귀걸이도 하시고." "이쁘라고 뚫은 거 아니야. 골이 하도 아퍼서 귀를 뚫었지. 펜잘을 삼시 세 때 먹어댔는데 귀 뚫고는 안 아파요." 노인은 두통 때문에 약을 달고 살다가 치료를 위해 귀를 뚫었다지만 귀걸이가 썩 잘 어울린다. "챙피할 때는 챙피해도 내가 안 아프면 그만이지. 다른 사람들은 부작용 생길까봐 금이나 은으로만 한다는데 나는 아무거나 해도 부작용이 없어요. 노인은 수수만큼이나 메밀도 많이 심었다. 메밀밭이 소금 뿌려 놓은 듯 하얗다. 잡곡은 노인의 식량이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서울, 인천 사람들이 사간다. "당뇨 있는 사람이 잡곡 부탁하면 안 줄 수 없잖아. 사는 게 다 그렇시다."

노인은 밭 옆의 작은 샘에서 물을 떠 마신다. 아무리 작은 섬이라도 아직껏 살아 있는 샘을 만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섬은 옛날부터 물 사정이 좋았다. "섬 치고는 물이 최고로 맛있어. 물이 흔해. 옛날부터 식수 곤란은 안 봐. 딴 섬은 가물면 물을 실어다 배급도 주고 그랬거든. 여기는 암만 가물어도 물이 고정적으로 나와." 노인은 섬에서 살았어도 뱃일을 모르고 살았다. 평생 농사만 지었다. "배는 암 것도 몰라. 수영도 못해. 어려서부터 밭에서 일만 해놔서 수영을 못해. 옛날에는 여게도 배가 많았더랬는데. 지금은 없어." 노인은 새우젓배로 성시를 이루던 섬을 기억한다. 새우젓배가 사라진지 벌써 30여년. "새우젓 날 때는 여가 부자 동네였어. 오죽하면 바닷가에 갔다가 대변 보고 닦을 것 없으면 종이돈으로 휴지 했을라고. 그 때는 인심도 좋아서 장사꾼들이 들어오면 공으로 먹여주고 재워주고 그랬어. 지금은 인심이 나빠졌어. 교회들이 여럿 생기면서 인심이 바뀌었어."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서로 자기 교회로 마을 사람들을 끌어들이려고 다투면서 작은 마을이 분열 됐다. 개신 교회 둘, 천주교 공소 하나 그리고 종교가 없는 사람들. 40가구 사는 작은 마을이 네 패로 나누어지면서 마을 공동체는 와해돼 버렸다. 서로 같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끼리만 어울린다. "앞에 줄 것 있으면 교회 갔다주기 때문에 옆 사람 안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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