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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세월아 네월아 가지를 마라"

강제윤 시인 - 통영 지도 기행 (상)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2.01.19 10:17
  • 수정 2015.11.11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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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4400여개의 섬이 있다. 그중 사람이 사는 유인도는 500여개, 나머지는 무인도. 한국은 섬나라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섬은 미지의 세계다. 방송 매체 등을 통해 섬들이 소개되고 몇몇 섬들이 피서지나 관광지로 유명세를 타면서 섬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지만 소수에 불과하다.

여전히 대부분의 섬들은 척박함과 절해고도의 고독과 유배지, 그도 아니면 현실도피적인 낭만의 이미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섬은 여전히 먼 곳으로만 느껴진다. 수만 리 먼 나라들을 자유롭게 오가면서도 바로 우리 곁의 섬들을 멀게만 느끼는 것은 왜일까. 단지 물리적 거리 때문이 아니다. 심리적 거리감이 더 큰 요인이다.

그것은 오랜 세월 이어져온 육지 중심의 사고에 기인한바 크다. 이러한 생각의 뿌리는 조선왕조의 폐쇄적인 해양 정책에 잇닿아 있다. 본래 우리의 인식은 육지 중심의 편협한 틀에 갇혀 있지 않았다. 옛날 이 땅의 사람들은 바다를 이용해 세계와 소통했다. 세계로 향하는 통로로 기능했던 바다가 단절의 바다로 전락한 것은 조선시대에 와서다. 고려와는 달리 조선은 명나라의 해금(海禁)정책을 추종해 적극적인 공도(空島)정책을 폈다.

섬과 바다를 포기한 것이다. 그 이전까지 바다와 섬은 육지보다 더욱 활력 넘치는 삶의 터전인 동시에 문명교류의 중심 공간이었다. 하지만 조선시대 수백 년 동안 섬에 사람이 살지 못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계속되면서 바다와 섬은 점차 잊혀지고 버림받은 공간이 됐다. 사람의 거주가 시작된 이후에도 섬은 유배지로 이용되면서 고립이 심화 됐다. 해상 교통의 발달로 섬이 다시 가까워지고 있다. 이제 다시 섬의 시대가 도래 한 것이다. 우리의 땅은 좁지만 우리의 바다는 한없이 드넓다. 그러므로 섬이야말로 이시대의 정신을 비옥하게 할 소중한 토양이다.

 

 

 

 

 

 

통영 원평 포구, 칼날 같은 추위가 귀를 끊어놓을 듯 매섭다. 건너섬 지도로 가는 배를 기다린다. 통영 시내 나갔던 할머니들이 시내버스에서 우르르 내린다. 바람을 피할 수 있는 대합실은 비좁다. 작은 콘테이너 하나. 그나마 바람 피할 곳이라도 있으니 천만다행이다. 섬주민 다섯 사람이 들어오니 대합실이 꽉 찬다. 할머니 한분 대뜸 나그네에게 말을 건다.

“어디서 왔소.”
“서울서 왔습니다.”
“겉 보니 외국 사람인데 말은 한국 말을 하네.”
턱수염에 배낭을 맨 때문인지 나그네는 섬을 돌다가 자주 외국인으로 오해받는다. 주로 아이들과 노인들이 아주 외국인으로 단정을 하고 말을 건다. 아이들은 “헬로”하며 손을 흔들고 노인들은 대뜸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묻기 일쑤다.
“한국에 온지 오래 됐는가 보네. 한국말을 잘하이.”
“예, 몇 십 년 됐습니다.”
“그라이 그라고 한국말을 잘 하제. 어느 나라서 왔소.”
“하늘나라서 왔습니다.”
“무슨, 하늘나라가 어딨다꼬.”
슬쩍 장난으로 대답했는데 할머니는 나그네를 여전히 외국인으로 생각하시는 눈치다.

할머니가 잠시 대합실 밖으로 나가셨다 온다.
“추운데 어딜 다녀오세요?”
“담배 묵고 옵니다.”
“여기서 드시지요.”
“그람 당신이 좋아 하우까? 누도 담배는 안좋다 하우다. 술 한 병 사서 갈라 묵고, 담배도 묵고.”
“술도 드셨어요?”
“한 병 가 다섯이서 갈라 묵으니 묵을게 없다.”
할머니는 반찬거리도 살겸 통영 시내로 마실을 다녀오시는 중이다.
“천원 가 떡 사면 멫이나 묵나. 술 한 병 천 삼백원이면 다섯이 여섯이 갈라 묵는디.”

추위를 이기기 위해 할머니는 소주 한병을 사서 마을 사람들과 나눠드셨다.
“그래도 한잔 묵었다고 기분이 좋고, 좋데이.”
“통영에 자주 나가세요?”
“늙은 게 할 일 있나. 그라이 통영 가지. 통영 가야 술도 사묵고 담배도 묵고.”
지금이야 날이 추워서 내갈 것이 없지만 할머니는 통영 장날이면 손에 잡히는 것이면 무엇이나 싸들고 장으로 간다. 호박잎도 따가고 진달래꽃도 따가고 굴도 까가고 뭐든 가지고 장으로 간다. 꼭 팔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장에 갈 핑계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장날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술도 한잔 사먹는 것이 즐거움이다. 할머니는 나그네의 얼굴을 물끄러미 처다 보더니 한마디 하신다.

“총각인가, 아저씬가. 내가 관상을 보니 염만 밀면 미남인데 왜 그라고 다니나 영감 멘키로.”
할머니는 나그네의 수염이 영 거슬리는 모양이시다. 그래도 이내 수염을 인정해 준다.
“유행따라 사는 것도 제멋이라.”
지도에서 도선이 건너 왔다. 차도선이 수리를 들어가 임시로 작은 나룻배가 다는데 지도까지는 채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할머니는 거망마을에 사신다. 할머니를 따라 가겠다 하니 어서 가자고 반기신다. 할머니의 집은 마을 회관 바로 옆. 마을 회관 방안에는 동네 할머니들이 모여 놀고 있다. 보일러가 고장 나서 다들 전기장판 위에 이불을 덮고 앉아 두런거리신다. 나그네가 회관으로 들어서니 할머니들이 반기면서 어서 손을 녹이라 이끈다.

“뭘 볼끼 있다고 하필 이 칩운데 왔노.”
배에서 만난 할머니가 뒤따라 들어오니 할머니들이 농을 친다.
“어디서 이런 아저씰를 사겨서 왔노. 재주도 좋다.”
“사길라면 이런 사람 사겨야지”

할머니들의 우스개 소리로 썰렁한 방안 공기가 덥혀 지는 듯 하다. 배에서 만난 분은 김영이(75세) 할머니. 신명이 많은 분이다. 할머니는 내내 나그네의 수염이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염만 안길렀으면 총각이 일등 총각인디 염 길러가 영 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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