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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바람은 꽁꽁 불어쌓고 내 집은 어찌가노.”

강제윤 시인 - 통영 지도기행(하)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2.02.02 08:40
  • 수정 2015.11.07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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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들이 점심상을 차리셨다. 생선부침, 돼지고기 볶음, 된장찌개, 김치와 젓갈, 고추 절임. 극구 사양해도 함께 점심을 먹자고 밥을 떠밀어 주신다. 통영에서 충무 김밥을 먹고 왔던지라 배가 부르지만 그래도 한 술 뜨자. 할머니들은 각자 밥그릇에 밥을 푸지 않고 큰 양푼 하나에 밥을 담아 놓고 함께 드신다. 같은 밥을 먹는 그야말로 식구다. 고추 장아찌가 새콤해서 자꾸만 손이 간다. 식초와 젓국을 넣고 담은 거라 감칠맛이 있다.

“고추가 너무 맛있네요.”
김영이 할머니가 바로 받아친다.
“꼬추가 언제나 맛나고 개운커든.”
옆의 할머니는 농을 치는 김 할머니가 살짝 못마땅하시다.
“고추니 붕알이니 엔간이 씨부리라.”
할머니들 농담이 걸쭉하다.

통영시 용남면 지도리. 지도(紙島)는 이름이 종이 섬이지만 종이와는 무관하다. 종이 섬이란 이름은 와전된 것이다. 지도는 본래 종해도(終海島)였다. 고성의 가장 동쪽 섬이라 종해도였다. 이후 종이섬, 종섬 등 한글 이름으로 불리다 다시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종이지(紙)자 지도가 됐다. 지도에서는 굴과 미더덕 오만디 등을 키우는 사람들이 많다. 오만디는 뭘까?

“그기 미더덕 아재비라. 맛있어요.”
해물탕 등에 들어가면 국물이 시원하고 톡톡 씹히는 미더덕. 우리가 흔히 미더덕이라고 알고 먹는 그것이 사실은 미더덕이 아니다. 미더덕 사촌 오만디다. 미더덕은 회로 먹는데 향이 그만이다. 지도에는 동리 서리, 거망 까지 세 개의 자연부락이 있는데 그중 거망 마을이 가장 작다. 20여 가구 대부분이 노인들이다. 할아버지는 다들 일찍 돌아가시고 할머니들만 남았다.
 

 

“여 있는 사람은 할아버지 한 개도 없다. 전수 홀어멈들이다.”
김영이 할머니는 노인당의 분위기 메이커다. 머리에 옥비녀를 하신 할머니. 아직도 비녀를 꽂고 사는 할머니는 드물다. 할머니는 고성군 동해면 감서리 하감마을이 고향이다. 스무살에 지도로 시집을 와 55년을 살았다. 옆의 할머니 말씀.

“그때는 스므살이면 노처녀지. 다들 열다서 여섯에 시집갔으니. 내는 열아 홉에 오니까 환갑 먹은 처녀 왔다고 난리더구마. 어찌 그 시절에 스므살 묵도록 있었노.”
할머니는 젊어서는 고향에도 더러 다니기도 했지만 나이 들어서는 통 가본 적이 없다.

“부친, 모친 가시고 나니 갈 일이 있나.”
이제는 할머니가 스스로 고향이 되셨다. 타향 사는 자식들의 고향. 자신의 고향은 잊어버리고 자식들의 고향이 되신 어머니. 세상의 어머니들은 누구나 자식들의 고향이다. 할머니의 남편은 서른일곱 젊은 나이에 이승을 하직했다. 남겨진 아내는 서른 셋 청상이었다. 남편은 군대에 있을 때 구타를 당해 늑막염을 앓았다. 한국 전쟁 직후였다. 가족들이 제대를 할 수 있도록 힘을 썼다.

당시 돈으로 "600원을 주고 빼왔다." 집에 돌아온 남편은 끝내 병이 낫지 않아 15년 동안이나 앓으며 아무 일도 못하고 집에서만 지내다 저승으로 갔다. 청상은 "아들 두 개 딸 다섯 개 키운다고 쌔가 다 빠져 뿌리고" 어느새 노인이 됐다. 농토도 없고 여자 혼자 몸으로는 바다 일도 할 수 없어서 내내 "넘의 집 일만 해주고" 살았다. "밭도 매주고, 오줌도 져주고" 곡식을 얻어다 먹고 살았다. 밤새워 배틀을 밟아가며 배도 짜고 그것으로 자식들을 키웠다. 할머니는 이내 그 시절 부르던 배틀 노래 한 자락을 뽑으신다.

"세상살이 막심하여 옥난간에 배틀을 치랬더니
배틀 다리 4형제는 동서남북 갈라놓고
잉엣대는 3형제라 양쪽 어깨 총을 매고 섰구나.'

그 시절 시름을 잊기 위해 불렀던 서글픈 노래가 이제는 경쾌한 가락이 되었다. 세월을 이겨내고 얻은 소리다.

"세월아 네월아 오고 가지를 말아라.
아까운 청춘들 다 늙어 간다."

할머니는 그저 툭툭 내뱉는 말씀에도 가락이 실려 있다. 흥을 내는 것이 아니라 할머니 자체가 흥 덩어리다. 노래를 잘해서 "노래자랑 나가 대상도 타고" 그랬던 솜씨다.

"갈맹이는 어디로 가고
물드는 줄 모르는가
사공은 어딜 가고
배 뜨는 줄 모르는가
우리 님은 어딜 가고
날 찾을 줄 모르는가
술러덩 술러덩 배띄워라"

먼저 간 남편을 그리는 할머니의 눈시울이 붉다. 혼자 몸이 되고서 "날이 날마다 앉아 울고/ 나는 나는 어디가고/ 나 혼자서 고생하냐." 할머니의 사설에 가락이 실린다. 그렇게 한 세월 시름을 달래 왔던 터다. 김영이 할머니만이 아니라 경로당에 나와 계신 할머니들은 모두가 남편들을 먼저 보냈다. 할머니들에게는 그것이 천만 다행이다.

"할아버지는 먼저 가야해. 우리 앞에 보내고 지가 있으면 을매나 고생했겠노."
어느새 날이 저문다. 종일 회관에 모여 놀다가도 노인들은 밤이면 모두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짧은 거리지만 이 맹렬한 추위에 늙은 몸으로 문 밖을 나서는 것이 걱정이다. 여든 다섯 할머니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바람은 꽁꽁 불어쌓고 내 집은 어찌가노." 거망마을 마을 회관에 지붕 위로 어둠이 깃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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