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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이 땅의 가장 절실한 종교는 평화!

강제윤 시인 - 연평도 기행(하)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2.02.22 22:43
  • 수정 2015.11.11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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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이 원하는 것은 복수가 아니라 평화
지금 연평도 주민들은 별로 큰 욕심이 없다. 폭격을 계기로 무슨 큰 지원 같은 거 바라지도 않는다. "큰 욕심 없어요. 옛날처럼 평화롭게 살수만 있게 해주면 좋겠어요." 그래서 주민들은 보복하자고 들어와 목청 높이는 사람들이 안 반갑다. 주민들이 원하는 것은 복수가 아니라 평화다. "여기가 없는 사람들 살기 좋아요. 자기만 노력하면 먹고 사는 데 지장 없어요. 남북이 서로 대화도 많이 하고 포 떨어지기 전처럼 평화롭게 살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어요."

하지만 여전히 평화는 안개 속이다. 그래서 마음이 불안하니 의욕이 안 생긴다. 그도 집수리를 하려고 자재를 사다 놨지만 일손을 놓고 있다. 평생 살 수 있다는 보장이 없으니 어떻게 집을 고칠 엄두가 나겠는가. 주민들이 예전에는 뉴스 같은 거 잘 안 봤다.

하지만 이제는 늘 뉴스에 귀를 기울인다. 요즈음은 자꾸 연평도에 더 큰 무기를 들여온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때마다 불안하다. "무기 많이 들어오면 들어온 만큼 더 위험해 질 수 있어요. 여기서 대응 사격 많이 하면 저쪽에서도 포를 더 많이 쏠 거 아네요. 그럼 죽어나는 것은 주민들이지." 주민들은 정부에서 공짜 돈 주는 거 바라지 않는다. "내가 노력해서 먹고 살 수 있는데 뭘 바래. 그저 평화롭게 살게만 해주면 돼지."

주민들이 돌아오면서 다시 연평도를 찾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아직은 정부에서 동원하는 '안보 관광객'들이 다수다. 하지만 이들의 방문이 주민들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들은 연평도에서 자고 가지 않는다. 하루쯤 먹고 자고 놀다 가야 그나마 주민들에게 경제적 이득을 남길 텐데 몇 시간 돌아보다 그냥 떠나 버린다. "선박 회사만 좋은 일 시키고 있다." 관광객들이 그날 돌아보고 나가기 좋게 배시간도 조정됐다. 그게 주민들은 오히려 불편하고 손해다. 전에는 아침에 들어온 배가 바로 인천으로 되돌아갔다가 오후에 돌아왔다.

주민들은 당일로 인천에서 일을 보고 들어올 수 있었다. 지금은 아침에 들어온 배가 관광객들을 기다렸다가 그들을 싣고 오후에 나간다. 주민들은 인천에 나가면 어쩔 수없이 하루를 묵어야만 일을 보고 들어올 수 있다. 시간과 비용이 더 든다. 이것은 주민들을 위한 관광이 아니다. '안보'의 와중에 주민들은 없다.

 

 

 

 

 

 

식당주인은 또 하나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연평도에 폭탄이 떨어지고 전쟁의 위기가 고조되고 주민들이 피난을 떠날 때 섬에 갑자기 유인물이 뿌려졌다. 북에서 날아온 삐라였을까. 아니다. 육지에서 들어온 부동산 투기꾼이 뿌린 전단지였다. 섬에 남은 주민들은 집이나 부동산 팔 사람 연락 달라는 전단지를 보고 기가 막혔다. 심지어 주민들을 통해 땅을 팔 생각이 없는지 직접 의사를 타진해 오기도 했다. 그 와중에도 부동산을 사들이려는 투기꾼들. 남의 불행을 내 이익의 기회로 삼으려는 자들이 전쟁터라고 왜 없겠는가마는 그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이 인간계가 참으로 그악스런 세상이구나 싶다.

인천 아트플랫폼의 주선으로 들어온 우리 또한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관광객'이 되고 말았다. 하루 묵지도 않고 몇 시간 둘러보고 훌쩍 떠나는 일정이다. 그래도 식당에서 꽃게탕으로 점심을 먹었으니 조금은 보탬을 준 것인가. 선착장에는 인천으로 떠날 여객선이 벌써 시동을 걸어놓고 우릴 기다린다. 선착장 주변에는 호전적인 프랑카드들이 어지럽게 걸려 있다. 다들 주민들과는 무관한 외부인들이 걸어놓은 현수막들이다. "무자비한 응징..." 따위. 주민들이 원하는 것은 전쟁이 아니라 평화인 것을. 참으로 안타까운 풍경이다. 분노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장 직접적인 피해 당사자인 연평도 주민이라고 어찌 분노가 없겠는가. 어찌 응징의 마음이 없겠는가. 하지만 주민들은 참고 견딘다. 분노로는 해결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 섬을 떠나서는 살 수 없으니 참는 것이다. 이 섬에 살기위해서는 전쟁이 아니라 평화가 절실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견디는 것이다.

분노는 장작불 같아 남을 태우기 전에 나를 먼저 태운다!
우리가 이 불안한 전시상황을 끝내지 않는 한 연평도에 떨어진 폭탄이 내일은 내 머리위에 떨어질 수도 있다. 생각하기도 끔찍한 일이다. 그런데도 언제까지 보복과 응징만 주장할 셈인가. 우리는 늘 늦게 깨닫는다. 평화가 깨진 다음에야 새삼 평화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평화는 공기와 같아서 그것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그 가치를 알게 되는 까닭이다.

오랫동안 평화가 지속되다보니 우리는 그 소중함을 잊고 살았다. 평화가 없다면 우리의 생명, 가족, 재산, 무엇 하나 온전할 수 없다. 한반도에 다시 전쟁이 일어나면 남과 북 모두가 공멸하리란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연평도와 이 땅과 우리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전쟁이 아니라 평화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보다 이성적이 되어야 한다. 절대 분노로 싸워서는 안 된다. 차가운 철이 달군 철을 자른다 했다. 분노는 장작불 같아 남을 태우기 전에 자신을 먼저 태우고 만다. 그러므로 진정 평화를 원한다면 우리 자신이 먼저 평화가 돼야 한다. 평화는 평화로운 방법으로만 지켜질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는 모두 평화운동가가 돼야 한다. 평화 운동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평화를 염원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평화운동가다. 하루 한 번 평화를 위해 기도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평화운동을 하는 것이다. 종교인은 자신의 신에게, 종교가 없는 이들은 그저 간절한 마음으로 평화라는 신에게 기도하자. 이 시대, 이 땅의 가장 절실한 종교는 평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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