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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전통은 밥벌이를 통해 이어진다!

강제윤 시인 - 통영 사량도 기행(상)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2.03.02 08:35
  • 수정 2015.11.10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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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벌이를 통해 이어지는 전통
여객선 2000 사량호는 아랫섬(하도)를 먼저 들른 뒤 웃섬(상도)의 금평항으로 입항한다. 사량도(蛇梁島)는 통영의 서쪽, 고성의 남쪽에 자리잡고 있다. 사량도는 두개다. 나란한 두개의 섬을 사량도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부른다. 1.5km 거리의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는 엄연히 다른 두 섬, 섬 사람들은 아랫섬, 웃섬으로 두 섬을 구분한다. 행정에서 부르는 이름 따위 소용없다. 세계에는 두 개의 섬밖에 없다는 듯이 그냥, 웃섬, 아랫섬이다. 이 얼마나 자존감 있는 이름인가. 모든 섬들은 다들 스스로가 세계의 중심이다.

육지 사람들은 대게 웃섬의 지리산이나 옥녀봉, 불모산, 고동산과 아랫섬의 칠현봉을 등산하기 위해 사량도를 찾는다. 경남 통영시 사량면은 사량도 웃섬과 아랫섬, 수우도 등 세 개의 유인도와 학섬(鶴島), 누에섬(蠶島), 나무섬(木島) 등 여덟 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다. 3000여명의 사람들이 26.86㎢의 땅과 그보다 넓은 바다에 기대 살아간다. 사량도의 지리산은 육지의 지리산을 바라보다 그 또한 지리산의 일부가 되고 말았다. 지리산이 보이는 산, 지이망산(智異望山)이라 불리다가 마침내는 지리산이 된 것이다.

등산객들의 섬답게 섬의 횟집, 식당, 민박, 수퍼 대부분이 막걸리를 판다는 글자를 큼지막 하게 써 붙였다. 다른 섬에서는 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산에서 내려온 등산객들은 육지에서버릇처럼 막걸리나 동동주를 찾았던 모양이다. 막걸리는 할머니들이 직접 누룩을 띄워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담근다. 전통은 문화재로 지정한다 해서 전승되는 것이 아니다. 밥벌이를 통해서 이어진다. 죽은 문화도 살려내는 명약은 생활의 이익이다.

슈퍼와 민박을 겸하는 집에 여장을 풀었다. 대부분의 섬들처럼 사량도 웃섬에도 공중전화는 한대도 보이지 않는다. 노인들도 대부분 핸드폰을 가지고 있으니 공중전화가 사라져버린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세태다. 그래도 공중전화를 한 대쯤은 놔둬야 하는 것 아닌가. 이 나라는 도대체 소수자에 대한 배려는 눈 씻고 찾아봐도 찾기가 어렵다.

 

 

 

 

 

 

“할머니, 사량도엔 공중전화가 한 대도 없나요?”
“없지 싶어요. 우리도 있었는데 치삐랬어.”
“쓰는 사람이 없어서 치워버리셨어요?”
“것보다 외국 아이들이 이상하게 쓴다고 전화국에서 없애버리라카데. 전화기 놔두는 기 돈버는 게 아니라 돈 잃는 기라고.”

이 섬의 멸치 가공 공장에도 이주 노동자들이 일한다. 더러 이주노동자들이 공중전화를 조작해서 국제전화를 훔쳐 쓴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지만 이 섬에서도 그런 비슷한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아니면 그런 일이 일어날 지도 모른다는 지레 짐작으로 전화국에서 공중전화기를 없애버리라 한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자신들은 자주 고장 나는 공중전화 때문에 수리 나올 일이 줄어들어 좋은 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유야 어떻든 섬에서 전화국의 공중전화를 모두 철거해버린 전화국이 개인 사업자들의 공중전화까지 없애버리도록 독려한 것은 아무래도 야박하다.

민박집은 동강 주야 수퍼 민박. 작은 섬에 웬 강이 있을까 싶어 민박집 노인에게 물으니 상도와 하도 사이의 해협을 동강이라고 부른다 한다. 해협의 폭이 웬만한 강보다 좁다. 대체로 섬들 사이 해협은 강이란 이름을 얻는 경우가 많다. 옹진군의 덕적도와 소야도 사이 해협도 독강이다.

산을 파괴하는 자들
사량도 수협에서 운영하는 유스호스텔 뒷길로 옥녀봉에 오른다. 등산로 길바닥이 닳을 대로 닳아 윤이 반질반질하다. 얼마나 많은 육지의 등산객들이 다녀간 것인지 짐작하고도 남겠다. 왜 아니겠는가. 뭍에서 불과 30분 거리의 섬, 한려수도의 수려한 풍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산길을 누가 마다하겠는가.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고, 분재를 한다고 나무를 캐가고, 난과 야생화를 파내느라 섬의 산을 훼손시키지만 않는다면 산마루가 닳고 등산화 바닥이 닳도록 다닌들,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다닌들 이 섬의 산이 쉽게 없어지거나 바다 속으로 꺼져버리기야 하겠는가. 등산객들 중 일부 철부지들이 산보다 산에서 얻어갈 것을 찾아 산을 헤집고 다니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그저 산을 호흡하고 느끼다 갈 뿐이다.

육지나 섬이나 산을 훼손하는 주범은 등산객들이 아니다. 토목업자들, 지방세수 증대를 핑계로 골재채취와 광산 개발 따위 허가를 쉽게 내주는 자치단체들이야말로 파괴의 주범이고 공범이다. 그들이 산 하나 잘라내고 섬 하나 들어내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렇게 사라진 산과 섬들이 부지기수다. 등산객 만 명이 백 년 걸려도 못할 일을 그들은 단 몇 달이면 해치운다. 그러므로 등산객들이 참으로 산의 소중함을 안다면 단지 쓰레기나 줍는 일에 그칠 것이 아니라 토목업자들에 의해 파괴되는 산을 지키는데도 앞장 서야 마땅한다. 그래야 그들에게 비로소 산에 들 수 있는 입주권이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불행하게도 골프장과 골재채취 도로 건설 따위로 파괴 되는 산을 지키기 위한 운동에 산악인들이 앞장섰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서 권리만 누리는 것은 얌체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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