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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수컷인 아비들을 어찌할 것인가

강제윤 시인 - 통영 사량도 기행(하)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2.03.08 10:52
  • 수정 2015.11.11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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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는 옥녀봉에서 사량도 앞 바다를 본다. 생래적인 섬의 슬픔을 본다. 옛날 사량도에 옥녀라는 처녀가 아비와 둘이 살고 있었다. 어미는 옥녀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죽었다. 옥녀는 자라면서 점차 죽은 어미를 쏙 빼닮아 갔다. 어느 순간 옥녀에게서 여자를 느낀 아비는 욕정을 참지 못하고 딸인 옥녀를 겁탈하려 들었다. 옥녀는 한사코 도망쳤지만 아비는 점점 더 무섭게 변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옥녀는 아비에게 말했다. “아버지가 하려는 행위는 차마 사람으로서 할 도리가 아닙니다. 짐승이라야 가능한 일입니다. 저는 먼저 산에 올라가 있겠습니다. 아버지도 오늘밤 자시까지 산으로 올라오시면서 소울음 소리를 내십시오, 그러면 제 몸을 허락하겠습니다.” 옥녀는 슬픈 마음으로 산에 올라가 아비가 잘못을 깨닫게 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약속한 시간이 되자 산 아래서 “움머 움머~” 하는 소울음 소리가 들렸다. 짐승으로 돌변한 아비의 모습에 절망한 옥녀는 바위에서 뛰어 내렸다. 옥녀가 죽음으로 치욕스런 삶에 저항한 바위가 옥녀봉이다. 이 산하에 옥녀처럼 살다간 처녀들이 어디 한 둘이겠는가. 남매 사이의 비극적인 연애를 전해주는 소매물도의 남매 바위나 덕적도의 선단여 전설은 애틋함이라도 있으나 옥녀의 전설은 그저 치욕스럽고 고통스러울 뿐이다. 대체 ‘숫컷’인 아비들을 어찌할 것인가.

벌써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대항 마을로 하산한다. 이 섬에도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 오랜 세월 동안 섬에는 사람이 살기도 하고 떠나기도 했을 것이다. 오늘 섬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옛 사람들의 후손은 아니다. 섬뿐이겠는가. 육지의 땅 또한 대부분 사람들이 머물러 살다 떠나고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는 유민의 역사였다. 우리는 모두 어딘가로부터 왔다. 토착민이란 없다.

우리는 모두가 이주민들이다. 먼저 들어오거나 나중에 들어온 어느 것도 특권일 수 없다. 땅은 본디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바다처럼 땅은 그저 땅 스스로에게 속할 뿐 사람에게 속하는 것은 아니다. 선주민이든 후주민이든 어느 쪽도 땅에 대한 배타적 권리란 없다. 지금의 우리는 이 땅의 선주민이지만 우리도 한때는 후주민이었다.

이 나라 어딜 가나 이주노동자들이 있다. 서해 먼 바다 섬 외연도, 제주도의 추자도, 여기 사량도 까지 이주 노동자들은 이미 우리와 한 운명이다. 하지만 선주민들은 여전히 후주민인 이주노동자들을 차별하고 멸시한다. 먼저 들어왔다 해서 선주민이 후주민들을 핍박할 권리는 없다. 폭력적이고 약탈적인 방식으로 후주민들이 선주민들의 거처를 빼앗는 것이 죄악인 것처럼 선주민들이 폭력적인 방식으로 후주민들을 배척하는 것 또한 죄악이다.

어두워지는 섬을 느리게 걷는다. 섬을 걷는다는 것은 단지 길가의 풍경을 보며 가는 것이 아니다. 풍경이란 어느 섬이나 엇비슷하다. 그러므로 풍경만을 찾아서 가는 길이라면 그 길이란 지루한 반복의 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나그네가 지치지 않고 길을 가는 것은 생각의 길을 따라 가기 때문이다. 생각의 길은 끝이 없고 막힘이 없다. 관광객이 적은 날 작은 섬의 식당들은 일찍 문을 닫는다.

불이 꺼진 식당 몇 군데를 기웃거렸으나 끼니를 채울 방법이 없다. 저녁은 막걸리로 해야겠구나. 숙소인 주인 할머니가 직접 막걸리를 담아서 판다고 들었다. “할머니 막거릴 걸러놓은 것 있죠?” “있지예” “막걸리 한 병 주십시오.” “저녁은 자셨수?” “아뇨, 그냥 막걸리 마시면 됩니다.” “곡기가 들어가야지. 밥 안 묵으면 안 되는기라요. 내 밥 차려 줄 테니 한술 떠요.” “아닙니다. 할머니. 그냥 막걸리 한 되면 충분 합니다. 김치나 좀 주세요.” “그래도 사람이 쌀이 들어가야지예.” 할머니는 굳이 밥 한 공기와 된장국, 김치 한 보시기를 쟁반에 담아내신다. 사량도의 밤이 포근하고 깊다.

가오치에서 들어온 아침 배를 타고 웃섬에서 아랫섬으로 건너왔다. 아랫섬 덕동포구는 한적하다. 웃섬에 행정관청이나 편의시설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섬의 크기는 아랫섬이 더 크지만 섬의 번영은 크기와는 무관하다. 특별한 관광지가 아닌 한 예나 지금이나 섬의 번영은 관청을 중심으로 구가된다. 이렇다 할 식료품점도 없는 아랫섬에 식자재를 공급하는 것은 행상 트럭이다. 트럭은 이동 식품점이다.

“오이 좀 주라.” “너그 밭엣 거 따먹어라. 오이 값이 올랐다. 세 개 천원이던 게 두개 천원이다.” “그런걸 뭐 돈 주고 사먹나. 말만 잘하면 그냥도 준다. 근데 감자는 있나?” “얼멘치나 돌래고?” “얼맨데?” “키로에 3천원” “너무 비싸다.” “아무리 삼천포 장에 감자 많이 줘도 내 만큼 많이 안줄끼다.” “3천원 안가왔다. 2천원아치만 도.” “한개만 더 주라.” “두부는 없나?” “그거 엄나? 멩태, 멩태” “한 마리?” “한 마리 어쩐데?” “3천원.” “다해 6천원이제.” “바나나 저기는 얼만데?” “4천원.” “방울토마토 이기 억수로 큰 기 있네.” “그게 크나. 그게 억수가?”

물건을 파는 장돌뱅이 남자와 물건을 사러온 동네 여인들로 트럭 주변은 금새 장바닥이다. 트럭이 세워진 길가 담 넘어 집 마당에서는 함중아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내게도 사랑이, 사랑이 있었다면 그것은 오로지 당신뿐이라오...." 마을 여인 하나가 함중아의 노래에 빠져있는 남편인 듯한 사내를 돌아보며 묻는다. “사자구 젓갈 하나 사까?” “사자구를 사든 오자구를 사든 니 맘대로 해라.” 사내는 사자구 젖갈보다 지나간 사랑이 더 그리운 것일까. 사내의 목소리가 퉁명스럽다. 반짝 장이 서고 장돌뱅이 사내는 다시 트럭을 몰고 떠난다. 나그네도 무심히 장돌뱅이의 트럭을 따라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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