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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흑산도 사람들은 삭힌 홍어 안먹어"

강제윤 시인 - 신안 흑산도 기행(상)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2.03.15 09:29
  • 수정 2015.11.11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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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에서 흑산으로 건너 왔다. 섬은 여객선 터미널 입구부터 홍어, 전복를 비롯한 수산물 판매점과 횟집, 건어물 노점 등 관광 어촌의 면목이 여실하다. 저녁이 되자 뱃놀이를 떠났던 유람객들 서둘러 포구로 돌아온다. 비가 오시려는가. 빗방울이 한 방울씩 툭툭 떨어진다. 흑산항 밤거리를 걷는다.

흑산에는 크고 작은 마을이 여럿이지만 상가와 여관 민박 등은 주로 예리마을에 몰려 있다. 해가 넘어가자 더위는 크게 한풀 꺾이고 바람이 서늘하다. 마을 노인들도 바닷가 평상에 나와 앉아 두런거린다. “외국인” 하는 소리에 뒤돌아보니 길 가던 마을 소녀다. 소녀는 “아닌가?” 중얼 거리며 황급히 뛰어 간다. 무안했던 모양이다. 시커멓게 탄 피부와 덥수룩한 수염 때문에 자주 외국사람 대접을 받는다.

관광객들은 횟집 야외 탁자에 앉아 대부분 홍탁과 전복회를 먹는다. 흑산 앞바다에서 대량 양식하는 전복은 흑산의 새로운 특산물이다. 횟집마다 홍어와 전복, 우럭 외에는 이렇다 할 수산물이 눈에 띄지 않는다. 과거에는 주낚으로 홍어를 잡았지만 요즈음 흑산의 홍어 잡이는 걸 낚시다. 이 또한 주낙의 일종이지만 미끼를 기우지 않는 공갈낚시다. 낚시 바늘이 촘촘히 매달린 주낚 줄을 홍어가 다니는 길목에 길게 깔아놓고 거기에 걸리는 홍어들을 잡아 올린다. 일종의 덫이다. 요근래 흑산에서는 홍어 잡이와 함께 전복과 우럭 양식업이 주된 어업이다. 양식업이 발달한 곳에서는 소득이 적은 다른 수산물의 포획이 활발하지 않다.

옛날 어느 해 옹기장수의 배가 흑산도에 입항했다. 옹기 배에는 네 사람의 선원과 얼굴 고운 소년 하나가 타고 있었다. 옹기 배는 진리 처녀당 아래 부둣가에 정박했다. 선원들이 옹기를 지고 마을로 들어가자 소년은 당 앞 소나무에 올라 앉아 피리를 불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소년의 피리 소리에 홀린 듯 넋을 잃었다. 진리 처녀 당에 거처하는 처녀당신도 소년의 피리 소리에 매혹 당하고 말았다.

여러 날이 지난 뒤 옹기를 다 판 선원들이 출항하기 위해 돛을 올리자 잔잔하던 바다에 파도가 거세지고 역풍이 불어 배가 떠날 수 없었다. 선원들이 배에서 내리자 바다는 다시 잠잠해졌다. 그러기를 여러 날 반복했다. 선원들은 이유를 알기 위해 마을의 무녀를 찾았다. 무녀는 진리 처녀당의 처녀신이 소년의 피리에 홀려서 배를 못 뜨게 한다고 알려주었다. 선원들은 소년을 섬에 남겨두고 가기로 했다. 거짓 심부름으로 소년이 배에서 내리자 선원들은 급히 배를 돌려 떠나버렸다. 소년은 슬픔과 외로움에 식음을 전폐하고 매일 처녀 당 앞 소나무에 올라가 피리만 불다가 마침내 숨을 거두었다. 소년은 그 자리에 묻히고 처녀 당신 옆에는 소년의 화상이 봉안 되었다.

 

 

자산 문화 도서 전시관을 둘러보고 나서면 흑산면 보건지소 앞에서 길은 두 갈래 길이다. 왼쪽 길을 따라 걷는다. 영산도가 건너다 보이는 해안 길. 축항리에서부터 오르막이 시작된다. 8월, 한참 휴가철이지만 도로를 지나가는 자동차는 드물다. 거리가 멀어 관광객들이 차를 가지고 들어 올 수 없는 까닭이다. 하지만 도로에는 새 한 마리가 자동차에 깔려 죽어 있다. 자동차들의 과속은 뭍이나 섬 할 것 없이 전국적인 운전 습관인 듯하다. 자동차 전용도로가 아닌 일반 도로, 더구나 인도나 갓길도 없는 지방도로는 자동차만 다니는 길이 아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다니고 자전거와 오토바이와 경운기와 트럭터와 개와 고양이와 온갖 동물들이 함께 다닌다. 하지만 운전자들은 도로를 전세내기라도 한 것처럼 도로에 자기 차 한대 밖에 없는 것처럼 한껏 속력을 낸다. 공중을 나는 새나 재빠른 개와 고양이들까지 차에 깔리는 상황이니 노인이나 어린이들은 어쩌겠는가. 삶을 실어 나르는 도로가 저승으로 가는 통로여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한 고개를 넘으면 또한 고개, 흑산의 고갯길은 구비 구비 첩첩 산길이다.

창촌 마을의 폐가를 기웃거리는데 노인 한분이 다가온다. “옛날에는 집들이 살았는데 다들 나가빌고 쪼금만 살고 있소.” 마을은 주로 멸치잡이에 생업을 의존 한다. 마른 멸치와 멸치액젓. 멸치는 주로 가을부터 초겨울까지 잡고 봄 어장은 5월 한 달 동안이다. 여름에는 자연산 미역을 채취해서 말린다. 멸치 어장 철이면 육지의 직업소개소에서 사람을 사다가 어장을 한다. “옛날에는 일 년 내내 멸치잡이 했는데 이제는 잘 안 잡혀요. 수온이 높아져서 그런지. 해파리 새끼가 많이 들어가서 힘들어.”

흑산의 홍어가 유명하지만 예리항을 제외한 흑산도 대부분의 마을은 홍어잡이와 무관 하다. “배가 30톤 이상은 되야 홍에 잡이를 할 수 있어. 돈이 몇 억 들어요.” 큰돈이 되는 홍어 잡이는 자본이 많은 일부 선주들 이야기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노인은 홍어 이야기가 나오자 흥이 오른다. 옛날 목선으로 잡을 때는 홍어가 지금보다 몇 곱절은 컸었다. “홍어는 잡으면 배에서 바로 숙성을 시켰어요. 육지로 나가면 구더기가 날 정도로 썩었었지.”

실상 흑산도 사람들은 삭힌 것을 즐기는 편은 아니다. “우리는 삭혀서는 잘 안 먹어요. 바로 싱싱한 놈, 그렇게 먹어야 더 맛있고.” 노인은 삭힌 흑산서 살다 나간 사람들이 홍어를 먹고 그것을 주변에 퍼뜨려 지금처럼 홍어문화가 보편화 됐다고 생각한다. “옛 어른들은 홍어가 소화제라 했어요. 껍데기에 낀 미끌미끌한 꼽을 삭힌 뒤 먹으면 소화도 잘 되고 가래도 잘 삭는다 했지.”

팔순의 할머니 한분은 지팡이에 의지해 마실을 나왔다. “아이스크림을 사 묵을라고 기다렸는데 안 오네.” 노인은 농협 차량을 기다리신다. 하나로 마트의 식품 차량이 일주일에 한 번씩 마을들을 순회하며 이동 판매를 한다. 이동이 수월치 않은 노인들을 위해서다. 200여명이 살던 마을에 지금은 18명의 노인들만 산다. 마을에는 구멍가게도 하나 없으니 노인은 500원짜리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먹기 위해 일주일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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