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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서울보다 평양이 가까운 섬

강제윤 시인 - 인천 대청도, 소청도 기행(하)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2.04.05 08:24
  • 수정 2015.11.11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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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도의 아침은 한가롭다. 바람은 잠잠하고 안개는 흔적 없다. 끊겼던 뱃길이 다시 열릴 것인가. 아침 8시20분, 백령도에서 나오는 배로 소청도에 건너갈 생각이었다. 부둣가 매표소에 들르니 1시까지 대기 상태다. 인천- 백령도 간 여객선 항로의 중간에 대, 소청도가 있다. 마침 소청도로 가는 행정선이 있어 얻어 탔다.

소청도(면적 2.9㎢)는 느릿느릿 걸어서 돌아봐도 1시간이 안 걸릴 정도로 작다. 예동 마을, 대청면 소청도 출장소에 들른다. 의자는 다섯이나 되는데 사람은 하나도 없다. 다들 출장을 나간 것일까. 주인 없는 사무실에 배낭을 맡겨두고 마을 안길을 어슬렁거린다. 작은 섬에 교회와 성당이 나란히 서 있다.

이 섬 또한 기독교 신자들이 대부분이다. 보건소, 파출소, 해경 파출소 분소들도 한가롭다. 마을의 떡 방앗간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대청 초등학교 소청 분교는 아직 폐교 되지 않았으나 학생이 한명도 없다. 폐교는 시간문제다. 이 절해고도의 섬도 여름 피서철이면 관광객들로 북적일 것이다. 섬은 늙어 가고 섬은 뭍사람들의 휴양지로 명맥을 이어간다.

마을의 끝자락쯤 예사롭지 않은 폐가 한 채가 나그네의 시선을 붙든다. 지붕에 올린 것이 무엇이지. 얼핏 너와 같기도 한데 그냥 판자조각 같지는 않다. 가까이 다가가니 판석이다. 지붕은 온통 넓적한 돌들로 덮혔다. 저런 지붕을 덕적도 진리 마을에서도 한번 본적이 있다. 초가의 볏짚은 잘 썩고 바람에도 약하지만 저 돌 너와는 기와보다 오히려 견고하고 바람에도 강할 것이다.

너와지붕은 기와지붕보다도 더 멋스럽다. 20세기 들기 전까지만 해도 소청도의 집들은 대부분 볏짚이나 띠(새)로 엮은 이엉을 얹었었다. 그런데 1900년 초에 노순국이란 이가 섬에서 넓적하고 반듯한 돌 너와 광맥을 발견했다. 이때부터 소청도 사람들은 지붕 걱정이 없어졌다. 모두들 돌 너와로 지붕을 덮었다.

‘기와 천년 너와 만년’ 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돌 너와는 견고하다. 너와의 발견이 섬사람들에게는 축복이었다. 하지만 1970년대 중반 새마을 운동 바람으로 너와가 벗겨지고 슬레이트가 지붕을 차지했다. 초가지붕이야 해마다 해 올리기 번거롭기 때문에 바꾸는 것도 이해가 되지만 슬레이트나 기와보다 더 견고한 너와를 버리고 슬레이트를 덮게 한 것은 분명 우스꽝스런 일이다.

 

 

소청도 마을 전체에 너와 지붕이 남아 있다면 얼마나 멋스러울까. 저 성냥곽처럼 네모난 시멘트지붕이나 슬레이트보다 천만번 낫지 않을까. 오랫동안 방치된 저 집도 머잖아 쓰러지고 나면 소청도에 마지막 남은 너와집도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렇게 한 시대 섬의 문화가 흔적도 없이 소멸해 버릴 것이다.

섬의 남동쪽 해안으로 간다. 이곳에는 주민들이 분 바위라 부르는 암벽이 있다. 분 바위는 대리암 덩어리다. 대리암은 석회암이 변성작용을 받아 생긴 암석이다. 표면이 풍화돼 분칠한 것처럼 보여 분바위란 이름을 얻었다. 분바위 곁을 지나면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이 있다.

원생대 후기인 10억 년 전에 형성된 남조세균(시아노박테리아)의 화석이다. 남조세균은 지구에서 최초로 광합성을 시작한 원시미생물이다. 북한지역에서는 20억 년 전 생성된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이 보고 된 적이 있지만 남한에서 발견된 화석 중에서는 소청도 것이 가장 오랜 된 것이다. 지질학적으로 소중한 자연유산이다.

하지만 이들 자연유산은 일제 때부터 훼손되어 왔다. 소연평도의 자석 철광산과 함께 일제는 소청도의 대리암도 대량 체굴 해 갔다. 해방 후에도 1980년대 초까지 소청도에 스트로마톨라이트의 무늬를 이용한 문양석 가공 공장이 가동돼 많은 화석들이 사라졌다. 이제라도 그 가치를 발견하고 보존하게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2009년 문화재청이 천연기념물로 지정고시했다. 주민들은 천연기념물 지정으로 생업에 지장이 올까 걱정이다. 그렇다고 주민들을 탓할 일은 아니다. 이 해안은 천연기념물인 동시에 누대를 이어온 주민들 삶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천연기념물지정이 불편을 주고 불이익을 준다면 반가워할 주민은 누구도 없다.

천연기념물이 제대로 보존되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협조가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천연기념물 지정보다 중요한 것은 이 자연 유산의 보존이 곧 주민들에게 이익이 되도록 만드는 정부의 기획이다. 외부에서 온 감시자가 천연기념물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지질공원 등을 만들어 주민들에게 관리를 맡기고 생태체험학습장 등을 운영해 수익을 얻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부둣가에는 인천으로 보낼 해삼 작업이 한창이다. 백령도와 달리 대청도와 소청도는 농지가 많지 않아 주민들 80% 이상이 수산업에 종사한다. 바다에 기대지 않고는 살아 갈 수 없는 전형적인 섬이다. 물질을 해서 잡아들인 해삼은 모아 두었다가 배가 뜨는 날 인천으로 보낸다. 일제하에서는 대마도의 잠수부들이 대거 몰려와 전복, 해삼 등을 마구잡이로 채취해 갔다.

그 후에도 제주도 해녀들까지 와서 작업을 할 정도로 소청도 근해는 옛부터 해삼으로 유명했다. 백령도처럼 대, 소청도는 또한 한때 홍어 잡이로 돈을 쓸어 담은 적도 있었다. 대청도 홍어는 흑산 홍어만큼이나 유명했었다. 이제 홍어는 사라졌고 어선들은 놀래미 잡이로 돌아 섰으나 놀래미 또한 씨가 말라가고 있다. 외지에서 온 대형 선단까지 마구잡이로 잡아가는 남획의 결과다. 놀래미 뿐이랴. 지금 채취하는 우럭이나 꽃게, 해삼, 성게, 가리비 따위라고 영원하겠는가. 이 나라 어딜 가나 문제는 인간의 탐욕이다. 배를 부리는 선주들뿐이겠는가. 우리는 모두가 공범이다. 물신에 대한 숭배는 바다나 육지의 구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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