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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풍도가 제 2번 고향이예요”

강제윤 시인 - 안산 풍도 기행(하)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2.04.19 10:28
  • 수정 2015.11.10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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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둣가에서 만난 여자 아이 다예는 대남초등학교 풍도 분교 1학년이다. 학교에서는 두 분의 선생님이 세 명의 학생을 가르친다. 3,4학년 언니들은 다예의 좋은 친구들이다. 언니 둘은 2층에서 공부하고 아이는 1층에서 공부 한다. 마을의 여섯 살짜리 꼬마 현민이가 누나들 공부하는 교실에 놀러와 함께 공부하기도 한다. 다예는 언니, 동생들이랑 에버랜드 놀이도 하고 달리기도 하고 자전거 시합도 하고, 갯벌에서 게도 잡고 물고기도 잡고, 조개껍질도 줍고 논다. 또 얼음땡도 하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도 하고 엄마놀이도 한다.

다예는 안산에서 태어나 경찰공무원인 아빠를 따라 섬으로 온지 3년째다. 처음에는 섬에 오기 싫다고 울고불고 했지만 이제는 안산보다 섬이 더 좋다. “풍도가 제2번 고향이예요.” 다예는 풍도가 마냥 좋기만 하다. “맑은 공기도 마실 수 있고, 꽃게 잡을 때면 언제든지 잡을 수 있어요. 봄이면 꽃들이 많이 피어요. 가을에는 달래도 많이 따먹어요. 컸을 때도 여기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다예의 소망이 이루어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학생이 한 두 명만 남으면 학교가 없어진대요.” 다예는 고구마 순의 껍질을 벗기는 엄마 곁에 앉아 저도 껍질을 벗긴다. “애가 풍도를 너무 좋아 해요. 커서도 여기 살겠대요. 그래서 여기 살려면 여기 사람하고 결혼해서 살아야 한다 했더니 발전소 사람하고 결혼해서 살겠대요. 글쎄.”

섬에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소에는 젊은 사람들이 근무한다. 그것을 눈치 챈 것이다. 그런데 다예가 클 때쯤이면 발전소 사람들도 다들 나이가 들어 늙어질 텐데, 걱정이군! 어쩌지!

지금도 다에는 방학 때 친구가 다녀가면 서럽게 운다. 친구가 많은 육지의 학교에 다니면 좋지 않겠느냐 했더니 친구가 한 두 명은 좋은 데 많은 건 싫단다. 이제 언니들이 졸업하거나 전학을 가버리면 학교는 폐교 되고 말 것이다. 한번 사라진 학교가 다시 생기기는 어렵다. 섬의 아이들은 대게 4학년쯤이면 인천으로 나간다. 언니들도 내년이면 육지로 전학을 갈 것이다. 그러면 다예도 사랑하는 섬을 떠나야할 것이다. 한 둘 남은 아이들마저 자꾸 떠나고 섬은 나날이 늙어간다.  

해안 길을 따라 섬의 뒤 안으로 간다. 길가에는 고로쇠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섬의 앞쪽에서는 눈치조차 챌 수 없지만 섬의 뒤편으로 오니 산 하나가 절반쯤 잘려나가고 없다. 지금도 여전히 산이 깎여나가는 중이다. 풍도의 토석은 인천 송도 매립지로 실려 간다. 토석을 실은 대형덤프트럭이 바지선에 오른다. 멀쩡한 섬을 반 토막 내고 없애가면서 새 땅을 만드는 심사는 대체 무엇일까. 육지의 개발업자들은 풍도 부근 무인도 중육도를 뭉텅이로 잘라가고, 풀등의 모래를 쓸어 담아 가고, 풍도의 산을 깎아 간다. 그들은 할 수만 있다면 섬들을 다 없애서라도 인천 앞바다를 매워 빌딩을 올리고 아파트를 짓고 싶을 것이다.

풍도는 야생화의 천국으로 알려져 있다. 봄이면 탐방객과 사진가들로 붐빈다. 산에 약초도 많다. 마을의 한 민박집 마당에 산초와 더덕 씨앗이 말라 간다. 산초는 제피와 비슷하지만 잎이 크고 잎의 배열이 마주보기다. 제피는 잎이 작고 잎의 배열은 어긋나기다. 제피나무에 가시가 더 많지만 향도 제피가 더 진하다. 향이 짙을수록 가시가 많은 것은 사람도 다르지 않다. 산초나 제피 씨앗이 민물고기 요리나 참게장 담그는데 많이 쓰이는 것은 디스토마균을 죽이기 위해서라고 민박집 주인 노인이 알려준다.

노인은 예전에는 약초만 캐다 인천에 내다팔아 생활했었다. “풍도에는 눈 속에 피는 꽃들도 많고 전호가 젤로 많아. 오가피, 헛개나무, 느릅나무, 다른 데 없는 게 많아요. 전에는 창출, 백출, 시호도 많았는데 나무를 하지 않으면서 다 죽었어.” 노인은 원주에서 한약방을 하던 큰 고무부의 일을 도우며 약재에 대한 지식을 어깨너머로 배웠다. 노인은 당귀, 천궁 등의 씨앗도 사다 심어 키운다. 이제는 중국산에 밀려 약재 수입이 예전만 못하다. 그저 소일거리로 약재를 말린다.

산길을 오른다. 마을은 산자락을 따라 동향하여 앉아 있다. 산자락의 중간까지 집들이 들어섰고 산의 윗부분은 밭들이다. 밭은 요즘 고구마 수확철이다. 밭에는 고추와 콩과 녹두, 호박과 쪽파와 김장 배추와 무를 빼곡하게 심었다. 어느 한자락 놀리는 땅이 없다. 고구마 밭을 기웃거리자 할머니들이 드시던 으름을 나눠 주신다. 바나나처럼 길죽한 으름. 과즙은 달지만 씨앗은 쓰고 떫다. 할머니 한분은 걷는 것도 힘겨워 보이지만 밭일을 그만둘 수 없다.

“소처럼 일 하던 사람인데 신경통이 생겨 수술하고는 잘 걷지를 못해. 여그는 암 것도 없고 늙은네만 살아요. 도리도 댕겨서 병신 되고. 여그는 아주 막막하고 죽을 일만 있어요.”

섬에는 보건진료소도 없다. 큰 병이면 육지로 가겠지만 고질병은 아파도 기댈 곳이 없다. 병원선이 한 달에 한 번씩 들어오면 그때 배에 가서 약을 타오는 것이 전부다. 산자락의 끝 즈음에 은행나무 고목 한분이 서 계시다. 당산나무는 아니지만 물경 500년 동안 마을을 굽어보고 살아왔다.

섬의 흥망성쇠를 은행나무는 놓치지 않고 나이테에 새겼을 것이다. 나무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보다 더 먼 세월의 저편에서 온 시간의 전령이자 섬의 장로다. 나무는 타임머신의 유일한 증거다. 시간의 결을 타고 500년 전의 과거로부터 날아온 나무. 하지만 나무는 과거의 나무인 동시에 현재의 나무이며 미래의 나무이기도 하다. 삼세를 아우르는 우주목. 은행나무는 삼세의 법음을 전하는 진정한 삼세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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