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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섬은 능구렁이 울면 비가 왔다

강제윤 시인 - 옹진 덕적도 기행(하)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2.05.10 09:42
  • 수정 2015.11.11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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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쑥개, 폐가가 된 옛 선주 집 마당으로 들어선다. 문짝은 떨어져 나가고 쓰다 버린 가구들이 나뒹구는 빈집은 쓸쓸하다. ㄷ자 한옥은 선주 가족이 살던 본채였을 것이다. 북리 선주 집을 상징하는 2층 집은 문간채 옆에 서 있다. 2층 집 아래층과 옆 건물은 어구를 보관하는 창고다. 2층 선주 집은 덕적도 북리에만 있던 부의 상지이다. 지금도 몇몇 2층 집은 사람이 살고 있다.

좁은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간다. 무너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발을 디뎌 보지만 계단은 아직 성성하다. 2층은 전체가 하나의 넓은 방이다. 바닥은 널마루를 깔았다. 난방 시설이 없는 방은 여름용이다. 건물은 방이라기보다 누각에 가깝다. 사방에 유리창을 달았고 각 방향마다 두 개씩의 창문을 넣어 어느 방향이나 전망이 툭 트였다. 선주는 이곳 마루에 앉아 북리 항으로 들어오는 자신의 배를 기다렸다. 만선의 북소리가 울리면 고 선원들을 위한 잔치 준비를 서둘렀다.

먼지에 찌든 마루 한 켠에는 그물이 쌓여 있다. 면사(綿絲)그물. 나이론 그물이 나오기 전 사용되던 면사 그물이 남아 있다니! 4~5십년은 족히 됐을 면 그물. 2층집의 지붕과 유리창이 상하지 않아 그물은 원형대로 보존이 잘 되어 있다. 손으로 한 땀 한 땀 짜서 만든 면사 그물, 저 그물은 이미 문화재다. 경기만 연안의 섬들 어디에도 없고 오직 덕적도 북리에만 있는 이런 형태의 2층 선주 집 또한 어업문화재로서의 가치가 크다. 2층집도, 면사 그물도 서둘러 보존해야 한다. 이 집은 그 자체로 덕적도 어업 박물관이다. 아주 망가지고 폐허가 되기 전에 서둘러 이 집을 문화재로 지정해 보호해야 하지 않을까.

북리 마을 구석구석에는 과거 영화롭던 시절의 흔적이 남았다. 작은 섬 마을에 다닥다닥 붙여 지은 집과 골목길이 있는 것은 번영했던 과거의 증거다. 건물은 허물어지고 터만 남았지만 산중턱까지도 온통 집터들이다. 작은 포구에 하나의 해상 도시가 세워졌다가 사라져 버렸다. 폐허는 상처가 아니라 영화롭던 시대의 기록이다. 파시 때 외지에서 온 선원들을 먹이고 재우던 여관들도 모두 문을 닫았고 주점들은 폐업한 지 오래다. 유정여관은 나무 간판이라도 남았으나 다방과 술집들은 흔적도 없다. 공중화장실은 아직도 사용 중이지만 공중목욕탕의 물은 식은 지 오래다.

과거 덕적도에는 어업과 관련된 금기가 많았다. 어느 지방이나 그랬듯이 여자들은 어선에 타지 못했다. 심지어 출어하는 날 아침에 여자를 만나면 ‘재수 없다’하여 출어를 포기하기도 했다. 또 배에는 소, 돼지, 개를 제외한 다른 동물은 일절 싣지 못했다. 애기를 낳은 집의 선원은 ‘부정 간다’ 했다. 그래서 3일 동안은 배를 탈 수 없었다. 아이를 낳고 3일 전에 어선이 출어할 경우에는 복숭아나무 가지를 잘라서 들고 배를 탔다. 그러면 부정이 방지 된다고 믿었다. 배를 타고 나갔다 돌아온 선원이 초상집을 다녀오면 자기 집 방 안으로 바로 들어가지 못했다. 부정을 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부정을 피하기 위해서는 아궁이 속에 고개를 집어넣었다가 나와서 방으로 들어가야 했다.

어민들에게 금기는 기독교의 십계명이나 불교의 계율과 다르지 않았다. 어로 활동에는 날씨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래서 어부들은 자연의 징후를 보고 다음날 날씨를 미리 짐작했다. 봄에 서남풍이 불면 반드시 비가 온다 했다. 안개 낀 날 멀리서 기계 소리는 나지만 배 모양이 보이지 않으면 반드시 비가 온다고 했다. 또 먼 산이 가깝게 보이면 비가 온다고 했다. 낙조 때 서쪽 바다가 붉게 물들면 비가 오고 능구렁이가 울어도 비가 오고 쌍무지개가 떠도 비가 온다고 했다. 머리가 가려워도 비가 온다 했다.

비가 오려는가? 머리가 가렵다. 북리 작은 쑥개를 지나 큰 쑥개 고개를 넘는다. 높은 산을 깎아 도로를 냈다. 시멘트 포장일망정 자동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숲길을 걷는 일은 행복하다. 게다가 여기는 섬이 아닌가. 뭍의 땅을 걷는 일과 섬의 땅을 걷는 일은 본질이 다르다. 뭍을 걷는 일이 몸을 견디는 일이라면 섬을 걷는 일은 시간을 견디는 일이다. 뱃길이 끊기면 육지로 흐르는 시간은 정지된다. 시간이 정지했는데 몸과 마음이 바쁘다 해서 섬의 공간을 벗어날 수는 없다. 섬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여객선을 기다리고, 출어할 물때를 기다리고, 폭풍이 멈추길 기다린다.

그래서 섬사람들은 기다림의 자손이다. 기다림을 견딜 수 없는 사람은 섬 왕국의 시민권자가 될 수 없다. 육지의 시간과 섬의 시간도 다르다. 지상 어디에도 절대적인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공간마다 각기 다른 시간이 흐른다. 그리스 아토스 반도의 그리스 정교회 수도원들은 속세와 다른 시간대를 살아간다. 그들의 시간은 밤 12가 아니라 일몰부터 시작된다. 그 시간은 ‘비잔틴 타임’이다. 사람은 시간을 계량해서 시계를 만들고, 시간을 시계 안에 가두어 두기도 하나 그것은 그저 사람들끼리의 약속일뿐 우주의 시간을 가늠할 수 있는 계측기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정지된 시간을 다시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사람이 아니다. 섬의 주재자는 오로지 자연이다. 저 바다와 바람과 구름과 태양. 사람은 다만 섬의 시간이 이끄는 대로 따를 뿐, 시간의 지배를 거역할 수는 없다. 바람이 거세진다. 저 바람이 섬의 시간을 흐르게 할 것인지 멈추게 할 것인지 사람은 알 수가 없다. 지금 바람 앞에서 사람은 그저 처분을 기다리는 죄수에 불과하다. 사람이 과학기술의 힘을 빌려 세계의 지배자라도 되는 양 오만을 떨지만 섬에 와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사람은 여전히 바람 앞의 등불에 지나지 않음을. 수 만 톤의 배도 대양을 가르는 태풍 앞에서는 가랑잎에 불과 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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