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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남매의 비극적 사랑, 섬이 되었네

강제윤 시인 - 옹진 백아도 기행(상)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2.06.21 09:58
  • 수정 2015.11.11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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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어머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물의 세계이며 대륙은 모든 것을 둘러싸고 있는 바다 수면 위로잠시 솟아 있는 땅덩어리에 불과하다.”(레이첼 카슨 ‘우리를 둘러싼 바다’)

한 여름 섬은 도시의 열기를 피해 찾아온 피서객들로 열병을 앓는다. 뱃시간이면 덕적도 여객선부두는 섬을 들고나는 여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백아도로 건너가기 위해 덕적도 뱃머리에서 해양호를 기다린다. 덕적도의 외곽 섬들만을 순회하는 여객선. 섬에서 다시 외딴 섬으로 건너는 발걸음에는 기대와 불안이 교차한다.

선창머리에서는 건너 섬 소야도 늙은 어부들이 잡아온 광어와 우럭 따위 생선들을 어부의 늙은 아내들이 즉석에서 회를 떠서 판매한다. 섬의 상점이나 민박, 노점들까지도 여름 한철이 큰 대목이다. 피서의 극점을 지난 오늘은 한산한 편이다. 섬이 가장 붐비는 때도 전국의 어느 피서지와 다르지 않다.

7월 말부터 딱 열흘 남짓이다. 모든 휴가가 이때에 몰려 있으니 휴가객들은 덕적도처럼 제법 이름이 알려진 섬에 와서는 한가로운 휴식을 얻지 못한다. 그래도 섬을 찾아온 사람들은 마냥 들떠있다. 바다의 푸른 물빛만 봐도 환희롭다. 무서워서 바닷물에 뛰어들지 못하는 사람마저도 바다의 너른 품안에서 안식을 얻는다.

바다의 무엇이 그토록 사람들을 잡아끄는 것일까. 우리는 모두 바다로부터 왔다. 바다는 어머니다. 그래서 우리의 생명이 시작될 때 우리는 어머니의 자궁이라는 바다에서 아가미로 숨을 쉬며 생명을 시작한다. 짧은 몇 달간의 기간 동안 우리는 수십 억 년 진화의 과정을 모두 경험한다. 생명의 원천인 바다. 바다를 보면 막혔던 숨통이 트이고 평온함이 드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

자연의 찬미자 여객선 선장님
오늘 해양호에 여객은 많지 않다. 문갑도에 들렀던 여객선이 굴업도를 코앞에 두고 우회한다. 직진하지 못하는 것은 바닥에 모래톱이 있기 때문이다. 사태 혹은 풀등이라고 부르는 긴 모래톱. 이 바다에는 이직도 풀등처럼 드러나는 모래톱만이 아니라 썰물에도 드러나지 않는 숨은 모래톱이 곳곳에 암초처럼 깔려 있다. 썰물 때인 지금 저 바다의 깊이가 3미터밖에 안 된다. 그래서 여객선은 가까운 길을 눈앞에 두고 수심이 깊은 곳을 찾아 우회한다. 바닷길에서 진짜 위험한 곳은 깊은 바다가 아니다. 얕은 바다다. 암초와 모래톱은 작은 바람에도 큰 파도를 일으키고 잠시 방

심한 틈을 타 배들을 파멸로 이끈다.
여객선이 굴업도에 잠시 기항한다. 몇 안 되는 피서객들은 대부분 굴업도에서 하선한다. 트럭 두 대가 피서객들의 짐을 날라주기 위해 뱃머리에 나와 있다. 선장실에서는 태풍의 영향으로 내일은 배가 뜨지 못할 거라는 일기예보가 들린다. 몇몇 여행객들은 폭풍이 두려워 하선을 포기한다. 섬을 눈앞에 두고도 내리지 못하는 여행객들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그들은 덕적군도를 순회하는 이 배를 타고 다시 덕적도를 거처 인천으로 돌아갈 것이다. 이 느리고 낡은 여객선의 선장은 바다와 섬과 자연의 찬미자다.

“섬에 내리거든 한번 찬찬히 들여다보세요. 곳곳에 수 만 년 동안 변하고 변한 모습, 바람이 파도가 안개가 소금기가 깎아놓은 조각품들이 즐비해요. 사람들은 자기들이 만든 것은 겨우 백년 된 것도 문화재라고 귀하게 여기면서 수만 수 억 년 동안 자연이 깎아 만든 조각품은 하찮게 여기거든. 개발 한다고 함부로 뭉개버리고.”

여전히 섬으로의 여행은 제약이 많다. 시간과 바닷길 모든 것이 맞아야 가능하다. 조수간만의 차가 큰 서해 바다의 섬으로 가는 뱃길은 기복이 더욱 심하다. 거의 매일 매일 시간이 다르다. 그러므로 서해 섬으로 갈 때는 뱃시간을 정확히 확인해야 한다. 어설프게 알고 떠났다가는 낭패를 보기 일쑤다. 덕적도 외곽의 섬으로 가는 뱃길 또한 다르지 않다. 굴업도 부두를 벗어난 해양호가 백아도를 향한다. 두 섬 사이 바다 한 가운데 우뚝 솟은 세 개의 바위. 선단여다.

선단여, 사랑의 비극
아득한 옛날, 어떤 섬에 노부부와 어린 남매가 살고 있었다. 노부부는 하루 사이에 세상을 떠나고 어린 남매만 남겨졌다. 그 무렵 인근의 작은 섬에는 마귀할멈이 자식도 없이 혼자 살고 있었다. 할멈은 자신의 대를 이을 자식을 원했으나 뜻을 이룰 수 없었다. 노부부의 죽음으로 남매만 남은 것을 안 마귀할멈은 야심한 틈을 타 자신의 섬으로 여동생을 납치해 갔다. 아이는 마귀할멈의 딸로 자랐다. 세월이 흐르고 홀로 남겨진 오라비도 훌쩍 컸다.

청년은 작은 조각배를 타고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이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청년은 풍랑을 만나 어떤 섬으로 들어갔다. 섬에는 아름다운 처녀가 살고 있지 않은가. 처녀에게서는 달큰한 물비린내가 났다. 처녀에게는 늙은 어머니가 있었다. 마침 노모는 이웃 섬으로 나들이를 가고 없었다. 외딴 섬, 청년이나 처녀는 처음으로 이성을 만났다. 알 수 없는 설레임이 두 사람을 흔들었다. 누가 가르쳐 주거나 배운 적 없는데도 둘은 직감적으로 그것이 사랑임을 알았다. 사랑이 찾아오는 것은 순간이지만 사랑에 빠지면 순간도 영원이 된다. 둘은 돌이킬 수 없는 격정에 휘말려 들었다. 풍랑이 걷히고 자신의 섬으로 돌아온 총각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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