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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경상도 일대에서는 용초도 미역을 알아줬지"

강제윤 시인 - 통영 용초도 기행(상)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2.07.26 10:53
  • 수정 2015.11.11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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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여객선터미널, 배를 타기 전에 충무 김밥으로 허기를 채운다. 전국적인 명성 덕분에 지금은 어느 지방을 가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됐지만 아무래도 충무김밥은 충무에서 먹어야 제 맛이다. 소를 넣지 않고 흰 쌀밥만을 말아서 내는 김밥과 오뎅을 곁들인 오징어무침과 큼직한 나박김치 몇 조각. 시락국 한 그릇. 어느 지방이나 유명한 음식들은 저마다 원조임을 내세우는 탓에 어떤 집이 진짜 원조인지 분간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통영의 충무김밥 집들도 저마다 원조라는 간판을 달고 있다. 하지만 원조집을 찾아가는 일은 부질없다. 원조는 없다. 많은 것은 없는 것이다. 맨 김에 밥을 싸 장에 찍어먹는 식습관은 바닷가 어느 집에서나 먹던 음식문화다. 어릴 적 내 고향 보길도에서도 그렇게들 먹었다. 충무 김밥 집들 또한 자신의 집에서 먹던 것을 손님상에 내게 된 것일 터니 모두가 각자의 원조다.

처음 충무김밥은 여객선 승객들을 상대로 판매됐다. 소를 넣지 않고 맨밥만 말아서 가져가면 오랜 항해 시간에도 상하지 않는 까닭이었다. 간편하고 안전한 도시락. 반찬은 당시에 많이 나던 꼴뚜기나 쭈구미 등을 무쳐서 냈다. 시간이 지나면서 흔하고 값싼 오징어나 오뎅 무침으로 바뀐 것이다.

오후 2시, 섬누리호가 통영항을 출항한다. 30여명 남짓한 여객 중 여행자는 나그네 혼자다. 가운데 선실 의자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 한분이 간식을 드시려는지 머핀 빵을 꺼낸다. 할머니는 빵을 들고 뒷칸 선실로 건너오신다. 뒷칸 마루에 앉아 있는 할머니 두 분에게 빵을 나눠주시고 다시 자리로 돌아간다. 일행은 아닌 듯하고 서로 다른 섬에 살지만 뱃길에서 더러 안면이 있으셨던 것일까. 도무지 미안스러워 혼자서는 빵 한 조각도 먹지 못하고 꼭 나눠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그 마음. 길가는 나그네도 선뜻 먹이고 재워주던 우리 선인들의 풍습이 이렇게 남았다.

여객선 후미에서 어떤 사내가 환하게 웃으며 먼저 인사한다. 한국말이 서투른 사내는 몽골이 고향이다. 섬미야 바자르(summiyabazar). 울란바투르가 고향인 그는 한산도 여차리 황복 양식장에서 아내와 함께 일한다. 그는 바다 일은 월급이 너무 적다고, 월급이 좀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의 소원은 어서 돈을 벌어 8살짜리 아들을 한국으로 데려오는 것이다. 이제 어떤 섬을 가나 어부도, 양식장 일꾼도 대부분이 이주 노동자들이다. 그들의 노동 덕에 우리는 싼 값의 생선회와 수산물들을 먹을 수 있다. 그들이 아니라면 지금의 가격에 수산물이 출하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저 그들을 값싼 노동력으로만 생각할 뿐 고마움은 잊고 살아간다.

이 일대는 가두리 양식장이 많다. 어종은 대부분 우럭과 광어, 참돔, 볼락, 농어 등이다. 가두리 양식장에는 바지선이 떠있고 그 위에는 콘테이너로 만든 수상 가옥들이 즐비하다. 물 밑으로 고압 전기가 양식장까지 들어가 불을 밝히고 냉장고와 텔레비전 등 전자제품의 사용이 가능하니 수상이지만 지상의 살림과 다를 바 없다. 고립된 수상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노래방까지 설치한 양식장도 있다. 여객선이 좌도 앞바다를 지난다. 하얀 부표가 떠 있는 바다는 굴과 홍합, 우렁쉥이(멍게) 양식장이다.

 

오후의 섬누리호는 화도, 여차, 비산, 서좌, 동좌, 진두, 예곡, 곡용포, 죽도, 호두, 용초 등의 순으로 섬마을을 돈다. 하루 두 차례 운항하는 여객선은 아침에는 오후와 역방향으로 섬들을 회항한다. 평등한 안배이지만 그 덕에 오전 배라면 30분 거리였을 용초도가 오후에는 두 시간이 걸린다. 여객선은 좌도의 서좌 마을에 들렀다 다시 항해를 시작한다. 그런데 조타기를 잡고 있던 선장이 갑자기 망원경을 꺼내든다. 좌도의 동좌 마을을 건너다보던 선장은 "깃발이 올라와 있으니 들어가야 겠다"며 기수를 돌린다.

동좌마을은 항로 가까이에 있지 않은 탓에 한번 들어갔다 나오려면 제법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배를 탈 여객이 있을 때는 붉은 깃발을 올리기로 주민들과 선장이 약속을 했다. 오늘은 깃발이 올랐다. 동좌에 잠시 들렀던 여객선이 한산도 진두마을은 그냥 지나친다. 망원경으로 확인하니 부두에 나와 있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추봉도의 예곡을 지나던 선장이 무전기를 집어 든다. " 화도 승선 제로 하선 둘, 진두 승선 제로 하선 제로, 예곡 승선 제로 하선 제로..." 선장은 위치 통과시마다 운항 관리실에 승하선 상황을 보고 한다. 나그네는 용초도 호두 마을에 하선한다.

여객선은 종착지 용초마을에 잠시 들렀다 통영으로 직항할 것이다. 통영시 한산면 용초도에는 호두와 용초 1, 2리 세 개의 마을이 있다. 호두마을 해안가 볕이 잘 드는 담벼락에는 노인들이 나와 햇볕을 쬐고 앉았다. 노인 한분은 미역 양식에 쓸 로프를 손 보고 있다. 용초도는 미역 섬이다. 한산도와 비진도등의 섬을 사이에 둔 용초도 바다는 조류의 흐름이 좋아 미역 양식장으로 최적의 조건이다. 그래서 "경상도 일대에서는 용초도 미역을 알아줬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처럼 미역양식을 많이 하지 못한다. 고된 미역 일을 감당하기에는 주민들이 너무 늙어버렸다. 새벽두시에 일어나 미역을 따러가서 아침 10시가 돼야 들어온다. 그 중노동을 이겨낼 수 없으니 노인들은 모두 은퇴해서 햇볕이나 쬐고 있다.


'우리같이 나가(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죽어야 짐이 안 될낀데. 어째야 빨리 죽소?"
한 노인이 나그네에게 불쑥 화두 하나를 던진다. 앗 뜨거라! 말씀과는 달리 노인들의 속마음은 생의 의지로 가득한 것을 나그네가 눈치 못챌 까닭이 없다.
"옛날에는 육십이면 죽었는데 인자는 80되도 안된단 말입니다. 수명이 이십년도 넘게 연장됐다 아입니까. 지금 나가 일흔 여섯인데 옛날 같으면 고려장 갔겠지만 쌩쌩합니다."

노인들은 미역양식같이 힘든 일을 할 노동력은 없지만 그래도 그저 날마다 놀면서 햇볕이나 쬐기에는 기운이 넘친다.
"여 미역이 최곤데 차가 못 들어오니 어렵다 아입니까. 한산도랑 다리만 놔지면 미역 팔기도 수월할낀데. 4대강이다 뭐다 돈 쓰지 말고 우리 다리나 놔주면 좋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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