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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화력발전소 때문에 죽어가는 갯벌

강제윤 시인 - 당진 대난지도, 소난지도(상)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2.09.13 14:47
  • 수정 2015.11.11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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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부석이 된 여자
대난지도 부둣가에는 당진 도리도행 카페리호가 서있다. 대난지도(蘭芝島)는 섬이 많지 않은 당진에서 가장 큰 섬이지만 인구 200여명에 면적은 5.08㎢에 불과하다. 이 섬도 오랜 세월 갯벌과 어로, 농경에 의지해 살았지만 요새는 난지도 해수욕장 때문에 관광객들이 제법 많이 찾는 섬이 되었다. 지금도 해수욕장 지역을 관광단지로 개발하기 위한 공사가 한창이다.

난지도 초입 덕금 마을 선착장 앞 갯벌은 바지락 밭이다. 갯벌 끝에 망부석이 하나 서 있다. 안내판에는 본래 선바위라 했으나 근래에 선녀 바위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기잡이 나간 남편을 기다리다 그대로 굳어져 돌이 돼 버린 아내. 사람이 돌이 되었을 리야 만무하지만 생사 모르는 남편을 기다리는 어부 아내의 마음은 돌덩이가 되고도 남았을 테지. 그 생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마침내 그녀는 바다에 가라앉았을 것이다. 아니 가라앉지도 못하고 저처럼 목 빼고 서 있었을 것이다. 저처럼 수천, 수 만년을.

한때는 이 섬에서도 김 양식을 많이 했다. 갯벌에는 아직도 양식장에서 채취해온 김을 씻던 물통이 남아 있다. 물이 빠진 갯벌이지만 직사각의 시멘트 수조에는 여전히 바닷물이 가득 차 있다. 이제는 그 물에서 바지락을 씻는다. 갯벌을 막아 만들었던 소금밭은 폐 염전이 된지 오래고, 염전 자리에 들어섰던 대하 양식장의 수차도 더 이상 돌아가지 않는다. 덕금 마을 선착장의 반대편은 난지도 해수욕장이다. 마을은 그 중간에 자리 잡았다. 섬의 동서는 3킬로미터. 섬은 남북으로도 길지 않아 마을에서는 섬의 어느 끝이라도 30분이면 걸어서 당도 할 수 있다.

"바지락 긁고, 굴 찍어 묵고 살아"
마을의 끝자락 해수욕장 넘어가는 길가에 삼봉초등하교 난지 분교가 있다. 선생님 셋, 아이들 아홉의 아담한 초등학교. 새로 지은 학교 건물이 팬션처럼 산뜻하다. 사택 옆집에는 노부부가 산다. 부부는 바지락 캐러갈 준비 중이다.

 "논이 없으니까 바지락 긁어서 묵고, 굴 찍고 그렇게 사는 거죠. 밥만 먹으면 돼지요."
인근 섬들처럼 이 섬도 5월부터 9월까지는 바지락을 캐고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는 굴을 깬다. 자식들은 대게 인천에 산다. 인천행 여객선 왕경호를 통해 인천으로 보내면 바지락 값을 조금 더 받을 수 있다. 바지락 10키로그램이 섬에서는 2만원, 당진에 가면 2만5천원, 인천으로 가면 3만원까지 오른다. 바지락 수확량은 물때에 따라 다르다. 물이 조금 밖에 안 빠지는 조금 때는 두 노인이 합해서 30킬로 정도를 캔다. 물이 최대로 많이 빠지는 사리 때는 둘이 70킬로까지 캐기도 한다. 육도와는 달리 종패를 뿌리고 어촌계에서 양식장을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조금 때는 많이 못 캐도 밥 먹으면 다른 일거리가 없으니까 해야 해요. 먹고 살자면 그렇죠."
당진 화력발전소가 들어선 뒤 난지도의 갯벌도 서서히 죽어 가고 있다. 특히 굴 밭의 피해가 심하다. 노인들은 화력발전소까지 견학을 다녀왔다. 한전에서는 발전소의 안전성을 홍보하기 위해 섬사람들을 견학시켰지만 노인은 오히려 굴들이 죽은 원인을 더 뚜렷이 알고 왔다.

"거기 가보면 뜨건 물이 무지하게 바다로 나오는데 굴 같은 것 다 죽는 거죠. 물발이 이렇게 뽑아 나와요. 난지도 쪽으로. 난지도가 피해가 심해요.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도 나쁘고."

매일같이 다섯 개의 거대한 관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물 때문에 바다의 수온이 높아져 찬물에서 잘 되는 김양식도 어려워 졌고 굴의 생산량도 많이 줄었다. 뿐만 아니다. 굴뚝에서 나오는 석탄가루 때문에 갯벌도 죽어간다. 노인의 탄식이 이어진다.

"김은 끝났어요. 아주. 저기 때문에 김이 돼야 말이죠. 사실은 땅속에 검정처럼 굳은 데가 많아요. 그런 디는 바지락도 없고. 오염 안됀 디가 바지락도 많죠."

소문은 무성하지만 아직 보상은 없다고 노인은 말한다.
"맨날 나온다는데 안 나와요. 울어야 젓주죠. 여기서는 누가 당당하게 따지고 그럴 사람이 있나요."

갯벌이 죽어가면서 낙지잡이도 사양길이다.
"펄이 좋아야 낙지가 집을 질라고 그러지요. 집을 짓나요. 어디."

예전에는 뻘에 들어가면 낚지를 한번에 2백 마리씩 잡는 것도 예사였다. 그런데 요즈음은 잘해야 15~ 20마리정도다. 김 양식을 하던 사람들 중 일부는 보상을 받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보상도 못 받고 그만둔 사람도 있다.

"피해가 있으면 다 같이 줘야 하는데 안주니까 어쩌. 줄 것 같지도 않고. 그냥 철거했죠. 딴거라도 해야 묵고 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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