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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성적 판타지가 만들어낸 인어

강제윤 시인 - 인천 장봉도 기행(상)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2.10.11 13:25
  • 수정 2015.11.11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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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봉도 옹암 선착장 입구에서 할머니 한분이 낚지를 팔고 있다. 장봉도 갯벌에서 파온 뻘 낙지다. 뭍에서는 돈이 있어도 사기 어려운 귀물이지만 섬에서는 한 마리, 4천 원에 팔린다. 가을 낙지가 살이 올랐다. 노인은 서울이 집이다. 물때만 좋으면 매일 버스를 타고, 배를 갈아타고 장봉도나 신도, 시도 갯벌로 건너와 낚지를 잡는다. 오늘은 열한 마리를 잡았다. 내일은 물이 가장 많이 빠지는 사리 때라 섬에 하루 더 있을 생각이다. 할머니는 낚지 잡아 판돈으로 잠잘 방을 얻고 밥을 사먹고 교통비를 벌고 용돈도 벌어간다.

인어. 반인 반어의 생명체. 내가 인어의 이미지에 깊이 매혹 당했던 것은 누구나처럼 동화 인어 공주를 통해서 였을테지만 현실에서 인어의 환상을 마주한 최초의 경험은 이십여 년 전 양수리 부근이었다. 그날 나는 홍천에서 버스를 타고 양수리를 지나고 있었다. 북한강과 남한 강의 물이 하나로 합해지는 두물머리. 매서운 비바람이 불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양수리의 강물은 폭풍우에 휩싸인 큰 바다 같았다. 잠시 비가 멈추고 폭풍 속으로 쏟아지던 한 줄기 빛. 그 빛 속에서 나는 인어를 보았다. 아마도 그날 만난 양수리의 인어는 내가 읽은 인어 동화의 현신이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의 기억이 어찌나 강렬했던지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나는 종종 그 풍경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오늘 장봉도에 와서 나는 다시 인어를 만난다. 선착장 부근에 인어 동상이 있다. 인어상이 세워진 것은 장봉도에 내려오는 전설 때문이다. 옛날 오랫동안 흉어가 계속되던 장봉도 근해 날가지 어장에서 어느 날 최씨 성을 가진 어부가 그물을 올렸다. 그런데 그물에 기이한 물고기가 잡혔다. 허리 윗부분은 사람형상이고 아랫부분은 물고기 모양. 어부는 인어를 측은히 여겨 바다로 돌려보냈다. 그 후부터 어부는 그 어장에서 많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었다. 지금에 와서 우리는 어부가 잡은 반인 반어의 기이한 물고기가 진짜 인어였는지는 알 길이 없다.

우리에게 알려진 인어 이야기는 덴마크의 동화작가 안데르센의 인어 공주 이야기나 독일 라인강의 로렐라이 전설처럼 서양의 인어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지만 동양에도 인어의 전설은 많다. 그러나 동양 전설의 인어는 매혹적인 여성형 인어들이 아니라 괴물 물고기들이 대부분이다. <산해경>에는 수차례 인어 이야기가 언급된다. ‘북산경’ 편에 전하는 인어는 식용이다
“용후산 결결수에는 인어가 많은데 생김새는 제어 같으나 네 개의 발이 있고 소리는 어린애 같다. 이것을 먹으면 어리석음 증이 없어진다.”

산해경에서 인어는 다양한 이름으로 변주된다. 용어, 능어, 제어 등이 모두 인어의 변종들이다. ‘해내북경’에도 ‘능어’라는 인어이야기가 전한다.
“능어는 사람의 얼굴에 팔 다리가 있고 몸뚱이는 물고기인데 바다 한가운데 산다.”  


<태평어람>에 전해지는 '교인'이란 인어 이야기는 더욱 기이하다.
“교인(鮫人)은 물에서 나와 인가(人家)에 머물면서 여러 날 동안 비단을 판다. 떠나려 할 즈음에 주인에게 그릇 한 개를 달래서 눈물을 흘리면 구슬이 그릇에 가득 찬다.” 

한국의 인어는 <자산어보>에 ‘옥붕어’란 이름으로 등장한다. 사람 형상을 닮은 옥붕어를 인어라 불렀으나 “뱃사람들은 이것을 몹시 꺼려 어망에 들면 불길하다 하여 버린다.”고 전해진다. 동양에도 서양의 인어처럼 미녀 인어의 전설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태평광기>에 전하는 이야기가 그렇다.
“바다의 인어는 사람같이 생겼는데 눈썹, 눈, 코, 입, 손톱이 모두 아름다운 여인이다. 살결은 옥같이 희고 머리털은 말꼬리처럼 치렁치렁하며 길이가 5~6척이다.”

인어이야기는 세계 각 곳의 섬과 바다에 산재해 있다. 유럽 민담이나 전설에서 인어는 요정처럼 마술적이고 초자연적인 존재로 그려지지만 영혼이 없는 존재로 묘사된다. 미녀 인어를 봤다는 목격자나 목격담은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미녀인어를 직접 잡아온 이는 단 한사람도 없었다. 인어 이야기는 환상이지만 환상은 일정한 현실을 기반으로 잉태된다. 인어 전설은 듀공(dugon)이라는 바다 포유류에 대한 착시에서 비롯됐을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듀공은 사람보다 키가 크고 가슴지느러미로 새끼를 안고 해면에 나타나 젖을 물리는 습관이 있다. 거센 파도에 시달려 혼미한 뱃사람들이 듀공의 그런 모습을 인어로 착각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바빌로니아의 수신 ‘에어’처럼 남성형 인어 전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전설 속의 인어들이 아름다운 여인의 형상을 가진 것은 왜일까. 그것은 아마도 뱃사람들이 남자들인데서 비롯됐을 것이다. 오랜 시간 바다를 항해하며 욕정을 참아내야 했던 남자들의 성적 판타지가 인어를 만들어 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금단의 환상 이었다. 성적 욕망의 대상이기는 하되 결합할 수 없는 대상, 그래서 그 환상은 쉽게 소멸하지 않고 끝도 없이 확대 재생산돼 왔다.

구전으로 미루어 장봉도의 인어는 <태평광기> 속의 미녀라기보다는 <자산어보>의 ‘옥붕어’나 <산해경>의 괴물 인어들의 범주에 속하는 듯이 보인다. 그도 아니면 듀공이나 물범 같은 바다 포유류 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선착장의 인어상은 로렐라이 언덕의 인어상과 다름없이 매끈한 서양 미녀상이다. 전설이란 전설의 소비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윤색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전설에 시비 걸거나 진위 여부를 따지는 것은 부질없다. 전설에 살이 붙고 뼈가 굵어지는 것은 전설의 생명력이 살아 있다는 증거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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