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기획취재> 화석에너지 제로의 섬, 에코아일랜드 연대도

강제윤 시인 - 통영 연대도 기행(상)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2.10.25 13:20
  • 수정 2015.11.11 10:46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윷놀이 최고의 고수 서재목, 손재희의 집. 목소리 크고 음식 솜씨 좋은 아내 손재희. 연대도 개그맨 서재목씨가 달리기를 잘하는 김동희 할머니와 함께 사는 집"
"전통 어가를 그대로 간직한 백옥수 할머니 집. 영화 백프로에 나온 집입니다."

연대도의 집 담벼락에는 아주 특별한 문패가 하나씩 걸려 있다. 집에 사는 주인의 내력이 적힌 나무판자. 모르가 지나가면 그저 그 집이 그 집일 뿐인 섬 집들. 담벼락에 적힌 설명으로 인해 그 집들이 살아났다. 어느 한집 예사로운 집이 없다.

"노총각 어부가 혼자 사는 집, 화초를 좋아해서 목부작을 잘 만드는 이상동 어촌계장의 집입니다. 말이 없어서 답답할 정도지만 사람 좋은 집."
"산양 읍내에서 가장 낚시를 잘하는 어부네 집, 음식솜씨 좋고 동작이 빠른 아내 김혜원과 임중호가 금슬 좋게 사는 집"

"허우두리 할머니댁, 연대도에서 태어나 연대도로 시집 오셨습니다. 시금치, 마늘, 밭 농사를 지으십니다. 젊었을 때 한 미모 하셨답니다."
"꽃이 있는 풍경, 허정자 할머니 작은 집 안팎에도 담장과 골목 길에도 사시사철 꽃을 키우는 마음 착한 할머니댁"
"연대도 유일한 담배집, 가장 오랜된 밀감나무와 시원한 우물이 있습니다. 백또성아 할머니댁"

경남 통영시 산양읍 연곡리 연대도. 통영시는 2009년 시민단체 지방의제 21의 제안을 받아들여 연대도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한 연대도를 생태 섬, 무공해 섬, 화석에너지와 쓰레기 제로의 섬, 에코 아일랜드로 만드는 사업을 진행해 2012년 5월 18일 준공식을 가졌다. 외부 자본을 배제하고 섬 개발의 이익이 주민들에게 돌아가는 지속가능한 개발의 모범을 이루었다.

1단계로 연대도 주민들은 농사를 짓지 않고 벼려둔 33층의 다랭이 밭을 야생화 밭으로 조성하고 폐교를 리모델링해 숙박을 겸한 에코체험 센터를 가동 중이다. 이들 사업에서 나오는 이익은 주민들에게 균등하게 분배된다. 태양광, 풍력발전 설비가 도입되었고 생태 탐방로 조성되었다. 2011년 완공된 150kw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에서 공급되는 전기를 사용한다. 가구당 1천원 남짓으로 전기세가 낮아졌다.  


오래된 마을 회관 건물을 헐고 마을 회관과 경로당, 비지터센터를 지었다. 외부전력을 사용치 않고 지열만을 이용해 냉난방을 하는 공공건물 최초의 페시브 하우스다. 화석에너지제로의 섬, 조만간 연대도는 외부 전력 공급 없이 태양광, 지열 등 재생가능에너지만으로 온 섬의 전력이 가능해진다. 그래서 지금은 대안에너지 체험 교육의 메카로 부상했다.

2011년 여름에는 전국각지에서 온 100여명이 참가한 지역에너지 학교도 열렷다. 지속가능한 개발의 모범 사례다. 향후 대안 에너지 체험 시설, 전통 어가 복원, 연대도 폐총 복원, 허브단지 조성, 대표 브랜드 농수산물 개발 등 다양하고 친환경적인 개발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들 모두 자연을 훼손시키지 않고 주민이 주체가 되는 사업들이다.

과거 연대도 바다에는 전복, 소라, 해삼 등이 지천으로 깔렸었다. 해마다 30명이 넘는 제주도 해녀들이 들어와 물질을 하고 갔다. 그래서 한 때는 돈이 넘친다 해서 '돈섬'으로 까지 불렸었다. 하지만 어느 때 부턴가 해산물들은 종적을 감추고 섬은 노인들만 남아 늙어가고 있었다. 가난하고 소외된 섬, 그 덕분에 섬은 개발의 광풍을 피할 수 있었다. 섬은 난개발이 이루어지지 않고 원형이 거의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연대도 에코 아일랜드 사업이 진행되면서 섬은 다시 활력이 생기기 시작했다.

48세대 82명이 등록되어 있지만 실제는 32세대 59명(2009년)이 거주하는 작은 섬이다. 석기시대 조개무더기에서 어류, 조류, 포유류의 뼈가 출토된 유서 깊은 섬이다. 숙종 44년(1718년) 군창(軍倉)에 속해 있던 연대도의 둔전 30여마지기 땅이 충무공 사당인 충렬사의 사패지(賜牌地)로 지정되었다. 사패지란 임금이 왕족이나 공신 등 국가에 공로가 있는 사람에게 공신전 등을 내리고 그 토지에 대한 지배권을 문서로 보증해준 땅이다.

사패지인 연대도에서 나오는 곡식으로 제사비용을 충당하게 했으니 주민들은 모두가 충렬사의 소작인이었다. 300석 보리농사를 지으면 150석을 공출해 갔다. 무려 5할의 소작료였다. 조선왕조시대에 국왕에 의해 하사된 땅의 지배권이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에 와서도 이어졌다.

1970년대 초 마을에서 돈 20만원을 모아 충렬사에 주고 소작을 영구히 면제해 달라고 청했다. 당시 20만원이면 충렬사 부근 통영시내 토지 1천 평을 살 수 있는 거액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1989년에 와서야 주민들은 공지시가대로 땅값을 물고 제 땅을 만들 수 있었다. 자기 땅에 살면서 식민지를 살았던 서러운 삶이 비소로 청산된 것이다.

연대도 주민들은 어류양식과 낚시어업을 하기도 농사를 짓기도 한다. 옛날에는 쌀, 보리, 고구마, 옥수수 농사를 많이 지었으나 현재는 논농사는 짓지 않고 밭에 마늘, 시금치, 쪽파, 취나물, 방풍나물, 두릅 등을 재배한다. 방풍과 두릅이 많이 난다.

옛날에는 연대도에 주조장도 있었다. 일제 때 사라라는 일본 사람이 연대도에서 오오시키(정치망)어업을 했고 연대도 사람들은 일본으로 가서 머구리(잠수) 배를 많이들 탔다. 시모노세키로 굴을 까는 품팔이를 다니기도 했다. 근래까지도 다니러 가곤 했다. 마을에서 만난 한 할머니는 10여 년 전에도 노인회장의 인솔을 받아 시모노세키로 1주일 동안 굴을 까러 다녀왔다. 아들에게는 여행을 다니러 간다고 거짓으로 일러두고 굴을 까러 갔었다. 일제 때 배워 일본말을 조금 할 수 있었다. 

 

저작권자 © 완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