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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화장터가 있던 섬

강제윤 시인 - 통영 연대도기행(하)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2.11.01 12:53
  • 수정 2015.11.11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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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에는 주민들이 일본인들의 머구리배를 구입해서 조업했다. 머구리배 23척이나 있었고 술집도 7곳이나 됐다. 갈치가 많이 잡히는 갈치어장이었고 바다 속에는 전복, 해삼 등이 지천이었다. 그래서 연대도를 돈섬 이라 했다. 일본말로 카네시마다.

한국전쟁 중에 인근 섬 추봉도와 용초도에 포로수용소가 있었다. 탈출한 포로 6명이 연대도로 왔다가 잡혀가기도 했다. 총살당한 포로 시신이 떠내려 오기도 했었다. 전쟁 때는 '홀치기'하는 징발선이 다녀가곤 했다. 성인 남자들을 강제로 징병해 가는 것을 홀치기라 했다.

불교이 다비식을 제외하면 이 땅에의 장례풍습에서 화장은 극히 드물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연대도에는 화장의 풍습도 있었다. 섬에는 두 개의 화장터가 있었다. 날이 좋을 때는 어둠골에서 화장을 하고 날씨가 궂을 때는 꼬리섬에서 화장을 했다. 화장터는 배를 타야만 갈 수 있다. 마을에서 뒤쪽 어둠골. 화장의 풍습이 생긴 것은 농토의 부족 때문이었다. 이상동 어촌계장도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직접 화장을 했다. 마을 뒷산에는 상여막이 있었다. 초상이 나자 아버지의 시신을 관에 넣고 상여에 태워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다음에는 뗀마(노젓는 배)에 상여를 태워 어둠골까지 싣고 갔다. 거기서 상여는 해체하고 화장을 준비했다. 바닥에 마른 나무를 깔고 그 위에 생나무 놓고 또 그 위에 관을 올린 다음 다시 마른 나무를 올리고 맨 위에는 생솔가지를 덮은 뒤 불을 질렀다. 생나무를 쓴 것은 겉에만 불이 나는 것을 방지하고 안까지 서서히 불이 타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밤새 화장이 끝나고 다음날 아침 아버지의 뼈를 수습해 절구통에 빻아서 바다에 뿌렸다. 부근을 지나가던 배들은 으슥한 섬의 골짜기에서 밤새 불이 타는 것을 보고 도깨비불이라고 오해하기도 했었다.

연대봉 주위를 따라 섬길이 나 있다. 옛날 나무하러 지게지고 다니던 길이라 해서 지갯길이라 이름 했다. 지겟길을 따라 걷다 섬의 뒤 안에서 나그네는 연대봉 산길을 오른다. 그냥 걷기도 쉽지 않은 이런 험한 산길을 예전에는 다들 한 짐 가득 나무를 지고 다녔다. 여자들도 땔나무 한 단씩 머리에 이고 다녔던 고생길. 지금 이 길은 그저 산책길이지만 섬사람들에게는 생존의 길이었다. 고개 넘어 물 길러 가지 않고 높고 깊은 산까지 나무하러 다니지 않는 것만으로도 노인들은 세상이 천국이 됐다고 말씀하신다. 그 뜻이 어찌 이해되지 않으랴.

연대도란 이름은 조선시대 삼도수군 통제영에서 왜적의 동향을 알리기 위해 섬 정상(연대봉 220m)에 봉수대를 설치한 데서 비롯됐다.

연대봉 정사 봉수대는 허물어져 돌들은 뒹굴고 숲은 우거져 바다가 보이지도 않는다. 봉수대는 봉화불만을 피워 올리는 곳이 아니다. 봉은 밤에 불을 피워 올리는 것이고 수는 낮에 연기를 피우는 것을 말한다. 봉화불은 장작이나 화약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많이 사용한 재료는 따로 있다. 승냥이 똥이다. 짐승의 똥이 군수품이었던 셈이다. 승냥이 똥에는 인이 섞여있어 그 불빛이 푸르고 멀리까지 보이기 때문에 봉화불의 재료로 사용됐다.

봉수대 옆에는 섬의 당이 있고 당나무가 있다. 연대도의 신전이다. 신전에서 모시는 신단수는 휘귀하게도 물푸레나무다. 신전은 건물이 없고 돌담을 둘렀다. 신전 입구는 새끼줄로 금줄을 처서 이곳이 신성한 영역임을 표시했다. 금줄에는 솔가지가 꽂아져 있다. 부정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당산나무인 물푸레나무와 제단 돌에는 콩짜개 덩굴이 뒤덮여 신령한 푸른 빛을 더한다. 물푸레나무는 신령스런 숲의 주인이다. 주민들은 해마다 직접 솥을 가지고 와서 밥을 지어 올리며 제를 지냈었다. 당제는 정월 초하루에서 5일 사이, 길일을 택해 지냈다.

물을 푸르게 한다 해서 물푸레나무다. 물푸레나무 가지를 꺾어 물에 담그면 푸른 물이 우러난다. 물푸레나무는 질기고 단단하기로 유명하다. 겨울 물푸레나무는 못도 안 들어간다 할 정도로 단단하다. 그래서 도끼나 망치, 호미, 낮, 괭이 등의 자루로는 최고다. 형벌을 내리던 곤장이나 감옥의 창살로도 이용됐던 나무다.

이 땅에서는 물푸레나무가 당산나무로 모셔지는 경우가 드물지만 북유럽 신화의 이그라드실 물푸레나무는 '하늘과 땅, 지구의 중심까지 삼계를 이어주는 우주목'이다. 북유럽 신화에서는 주신인 오딘까지도 물푸레나무에게 지혜를 얻어가곤 한다. 불과 백 년을 살기 어려운 인간에게도 세월의 경륜이 쌓이면 지혜가 생기고 혜안이 열리는데 하물며 수 천 년을 사는 나무들에게 어찌 신령이 깃들지 않을 까닭이 있겠는가.

연대도의 당은 두 곳이다. 연대봉의 당은 윗당, 마을 뒤편에도 당이 있으니 아랫당, 혹은 중당이라 한다. 당제를 지낼 때면 윗당산에서는 이순신장군의 혼을 달래는 산제를 모시고 아랫 당산에서는 장군 휘하의 장졸들의 원혼을 달래는 당제를 모신다. 마지막으로는 마을 한가운데 별신굿 터에서 별신장군제를 지낸다. 옛날은 무당 불러다 3일간 별신굿을 했지만 지금은 초청된 스님과 마을 주민들이 제를 모신다.

기독교의 탄압으로 서해안과 전라도지역 섬들의 민족신앙은 괴멸적 타격을 입었지만 다행스럽게도 경남지역 섬들은 기독교의 탄압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했다. 불교세가 강한 지역적 특색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민족신앙이 남아있는 섬들일수록 공동체가 살아있다. 배타적이지 않고 관용적이며 융합하려는 우리 고유 신앙의 정신 때문일 것이다. 연대도에서 그 정신의 일단을 보게 된 것은 참으로 소중한 성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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