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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어디에도 기적 아닌 삶은 없다

강제윤 시인 - 강화 민통선 섬기행 (중)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2.11.15 15:43
  • 수정 2015.11.11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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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은 작고 농토는 비좁지만 이곳에서도 벼농사를 짓고, 고추와 참깨, 옥수수와 콩, 마늘 등의 밭농사를 지어 끼니 거르는 사람 없이 살아간다. 그렇게 사람들은 물이 있고, 부처 먹을 땅 한 조각만 있으면 아무리 먼 바다 깊은 산속이라도 찾아와 살았다. 그렇게 수 천 년의 삶을 이어왔다. 외부의 침략자들, 왜구와 해적들의 노략질과 탐욕스런 관리들의 수탈을 견디며 끝끝내 살아남았다.

우리는 모두가 슬픔의 후예다. 우리는 모두가 고난의 후예다. 슬픔과 고난을 견디고 살아남은 자들의 후예다. 그 모진 세월을 견디고 살아남기란 진실로 희귀한 일이다. 살아남은 자들의 후예로 살아 있다는 것은 마침내 기적 같은 일이다. 살아 있는 것이 기적인 삶이여! 기적 아닌 삶이란 세상 어디에도 없다.

바닷가 오막살이, 할머니 집 마당에는 옥수수가 말라가고 있다. 곡식들은 햇볕 받아 마를수록 여물어 간다. 사람 또한 그렇다. 할아버지는 3년 전에 이승을 하직 하셨다. 바다가,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딸 둘, 아들 둘을 키워냈지만 할머니는 혼자다. 혼자 남은 할머니는 차돌처럼 단단해 지셨다. 혼자 남은 할머니의 유일한 의지처는 교회다. 할머니가 교회에 다니면서도 제사를 모시는 것은 양다리가 아니다.

할아버지가 떠나신 뒤 할머니는 배 부리던 어구들 태워 없애느라 고생이 많으셨다. 할머니에게는 더 이상 쓸모없게 된 어구들이었을 테지만 아쉬운 일이다. 어업의 한 역사가 허망하게 불태워져 버렸다. 처마 밑에는 할아버지가 쓰셨을 대나무 낚시 대들이 끼워져 있고, 옛날 쓰던 물지게도 벽에 걸렸다. 부엌 아궁이에는 가마솥이 놓여있다.

“할머니 겨울에는 불 때고 사세요?”
“보일러를 못 했시다.”
“오히려 잘되셨네요. 기름 값도 비싼데.”
할머니는 손을 젓는다.
“매워서, 연기 땜에 맵고, 비 많이 오면 물 나고 말도 못해.”

왜 아닐까. 오래 동안 구들을 손보지 않아 고래가 막혔을 것이다. 그런 아궁이에 환풍기 없이 불을 때면 부엌은 순식간에 연기로 가득 찬다. 집이 바다 바람을 피해 저지대에 지어졌으니 큰 비라도 오면 아궁이에는 물이 고이기도 하겠지. 부엌 뒤 안에는 장독대가 있다. 장독 마다 간장, 된장 등이 한 가득이다. 변소도 재래식 변소. 불을 때고 난 재로 변을 묻어 두었다가 거름으로 내니 냄새가 나지 않는다.

 

“올핸 배추도 쪼끔 심어야 싱깐. 배추 많이 심어서 머해요. 작년에도 다 담아 놓곤 가질러 와야 하는데 안 오니깐 다 내다 버리느라 혼낫시다. 봄에 다 버렸지, 시어져서 못 먹어. 다들 회사 다니고 바쁘니깐 못 왔지.”

할머니는 가지러 온다는 보장도 없는 자식들을 위해 김장 김치와 된장을 담는다. 김치는 시어져서 버렸고, 장은 몇 년째 장독대에서 묵어간다. 김장 배추를 적게 심겠다고 말은 하지만 할머니는 올 가을에도 김장을 하고 메주를 띄울 것이다. 할머니는 어미인 것이다. 어미는 여든 셋, 얼굴엔 여망 꽃이 피었다. 고양이 한 마리가 그늘을 찾아가 늘어진다.

“쥐가 하도 들끓어 싸서 어젯저녁에 다른 집서 잠깐 데려다 놨는데 안가고 있시다. 밥 달라기에 밥 줬더니 밥 먹고.”

고양이는 할머니 집이 편하고 좋은 것이다.

“할머니는 고향이 어디세요?”
“고향? 없시다.”
“강화세요?”
“그랫시다.”
“강화 어디신데요?”
“잊어버려서 모르갓시다.”

할머니는 섬으로 시집와서 60년 넘는 세월 동안 친정에는 가보지도 못했다. 옛날 섬에서는 다들 그렇게 살았다. 이제 할머니도 남은 날이 많지 않다. 할머니마저 떠나고 나면 이 집은 폐허가 되고 할머니의 삶을 지탱시켜준 물건들은 모두 불태워지고 말 것이다. 삶의 흔적들이 아주 사라지고 나면 삶을 ‘증거’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한 때 삶이 깃들었던 물질들, 죽은 육신과 함께 아주 사라지고 나면 삶은 또 어디로 가서 머물게 되는 것일까 .

말도, 생의 마지막 풍경들
말도는 서도면의 최북단 섬이다. 상주하는 주민은 5가구. 교회가 하나 있지만 신자는 한 사람도 없다. 전도사는 월요일에 들어왔다 목요일에 나간다. 섬은 민간인보다 군인이 더 많 다. 정기 연객선이 다니지 않는 섬에는 일주일에 두 차례 강화군의 행정선이 떠서 사람들과 생활 용품을 실어 나른다. 민통선의 섬이라지만 밤바다에 나가지 못하는 것 외에는 큰 제약이 없다. 세월이 좋아진 탓이다. 하지만 민통선 부근의 섬이나 강화 갯벌에는 홍수가 나거나 큰물이 질 때면 대인지뢰가 떠내려 오기도 한다. 그 때문에 더러 인명 사고가 나기도 한다. 휴전선 갯벌의 평화는 늘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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