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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영혼을 빨아들이는 주문도 갯벌

강제윤 시인 - 민통선 섬 기행(하)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2.11.22 10:34
  • 수정 2015.11.11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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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선착장은 큰 파도에 파손되어 위태롭다. 면 직원이 실태 조사를 해간다. 보수 공사를 하겠지만 큰 파도가 치면 선착장은 다시 파손되고 말 것이다. 연례행사다. 말도는 주변 섬들에 비해 기온이 차다. 논에는 농약 한번 치지 않았지만 고온에서 번성하는 멸구와 나방 등의 해충 피해가 적다. 말도 감나무에 달린 감은 씨가 없다. 씨가 있던 감나무도 몇 해가 지나면 씨가 없어진다고 말도의 주민 한 사람이 알려준다. 기후 탓일까. 청도 반시라 부르는 경북 청도의 감나무 열매 또한 씨가 없다. 꽃피는 철에 안개가 많아 수분이 되지 않는 까닭이라 한다.

나그네는 섬으로만 다니지만 나그네가 다시 말도를 찾을 날은 기약이 없다. 오늘 이 풍경이 말도의 마지막 풍경이다. 말도뿐이랴. 길가에서 마주치는 풍경, 어느 하나 생의 마지막 풍경 아닌 풍경이란 없다. 모두가 우주에서 단 한번 뿐인 풍경이다. 결코 되돌아 갈 수 없는 풍경들. 말도의 논과 밭, 감나무와 소나무들, 여물어 가는 벼들까지도 다 현생의 마지막 풍경들이다.

다시 주문도로 건너왔다. 예비군 훈련장 지나 고갯길을 넘으니 피마자 나무가 줄지어 섰다. 아직도 피마자를 키우는 곳이 있었다. 예전에 피마자는 기름을 짰다. 여자들은 동백기름을 바르고 남자들은 피마자유로 만든 포마드 기름을 머리에 발랐다. 길을 가던 나그네는 옥수수 밭에서 잠시 멈칫한다. 환시일까. 옥수수 대 위, 옥수수를 끌어 앉고 쥐 한 마리가 졸고 있다. 환시가 아니다. 정말 쥐 맞다. 화들짝 놀라 카메라를 꺼내려는데 녀석이 눈치 채고 줄행랑을 친다. 옥수수를 파먹던 쥐가 더위와 졸음을 못 이기고 옥수수 알갱이에 코를 박고 잠들어 버린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 밭의 옥수수는 죄다 쥐가 파먹었다.

주문도는 볼음도, 아차도, 말도, 네 섬을 아우르는 서도면의 중심 섬이다. 면의 행정 기관이 모두 주문도에 있다. 서도면은 네 섬을 다 합쳐도 인구 650명에 지나지 않는 작은 면이다. 주문도에만 그중 절반인 300여명이 산다. 작은 섬에 초, 중, 고 세 개의 학교가 다 있다. 다행이다. 학교가 있는 한 섬은 희망이 있다. 섬은 주민들 80%가 개신교 신자다. 섬에는 두 개의 교회가 있다. 어느 한 종교가 다수를 점하면 섬은 그 종교의 왕국이 된다. 종교의 자유는 있어도 있는 것이 아니다. 헌법은 정교일치를 허용하지 않고 있지만 법은 멀고 삶은 가깝다. 섬의 모든 일상이 교회를 중심으로 돌아가는데 누구든 교회와 등지고 살기란 쉽지 않다. 그 순간 그는 외톨이가 될 것을 각오해야 한다.


누군가는 교회가, 종교가 너무 세속적이지 않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천만에! 종교가 세속화 됐다는 비난은 부당하고 근거 없다. 어떤 종교가 세속을 떠나 존재할 수 있겠는가. 종교란 신들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세속적 인간을 위해 있지 않은가. 종교란 본디 초세속적 권력의 세속적 통치기구다. 세속에 초세속적 기구가 존재할 수 없다. 모든 종교는 본질적으로 세속적이다. 그러므로 종교가 초세속적이라고 믿는 것이야말로 환상이다.

이 섬의 중심은 서도 중앙 교회다. 교회는 1923년에 건립된 건물을 가지고 있다. 한옥에 서양식 건축 양식을 접목 시킨 교회 건물은 세련되고 기품 있다. 예배당 실내는 절의 법당 같다. 처음 기독교를 받아들인 섬 주민들의 마음은 절과 교회를 분별하지 않았을 것이다. 고통스런 현실을 벗어나 피안에 이르게 해준다면 그것이 절이든 교회든 무슨 상관이랴.

주문도 대빈창 해변 갯벌 바다에 저녁이 온다. 밀물의 시간이다. 저 넓은 갯벌은 순식간에 다시 바다가 될 것이다. 갯벌은 바다 생물들의 중요한 서식지인 동시에 오염물질을 정화해 주는 지구의 콩팥이다. 갯벌은 펄 갯벌과 모래갯벌, 펄과 모래가 뒤섞인 갯벌 등으로 다양하다. 황해는 밀물과 썰물의 차가 매우 크다. 해안가에는 펄이 다수를 점하고 있지만 먼 바다로 가면 모래가 많다. 강화 주변의 바다 속은 펄 갯벌이 대부분이지만 덕적도나 연평도, 대청도, 백령도로 가면 대부분 모래 갯벌이다. 육지 가까운 해안은 펄이 많고 먼 바다로 갈수록 모래가 많은 데는 이유가 있다.

황해에는 오랜 세월 중국과 한국의 강에서 쓸려 내려온 모래와 펄 흙으로 채워져 왔다. 황해는 조수 간만의 차이가 매우 큰 바다다. 해안 가로 밀물이 들어올 때 가벼운 모래와 펄들이 떠서 밀려든다. 해안 가까이 갈수록 밀물의 미는 힘이 약해진다. 보다 무거운 모래알은 일찍 가라앉고 더 가벼운 펄들은 해안 가까이 밀려온다. 밀물과 썰물이 교차되는 순간 바다는 잠시 정지 상태에 들어간다. 그때 펄들이 가라앉는다. 그래서 서해안 가까이에는 펄 갯벌이 많은 것이다. 이 대빈창 갯벌은 수천 수 만 년, 밀물과 썰물의 들고 남으로 형성된 펄 갯벌이다. 바다가 수 만 년 동안 만들어낸 갯벌을 사람은 한순간에 황무지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나그네는 섬에서 나고 자랐지만 바닷물에 들어가거나 모래밭을 맨발로 걷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펄에는 기꺼이 맨발에 맨 몸으로 들어간다. 펄은 어미의 품처럼 부드럽고 따뜻하다. 펄은 사물을 빨아들이는 힘이 있다. 그래서 농발게와 고둥과 조개와 개불과 낙지와 꼬막이 모두 펄의 속살 깊이 틀어 박혀 산다. 펄은 몸만이 아니라 영혼까지 빨아들인다. 밀물은 순식간에 대빈창 갯벌을 다시 바다 물로 덮어버린다. 밀물 드는 갯벌에 와서야 우리는 비로소 바다가 하나의 생명체임을 실감한다. 이 황혼녘에도 바다는 저렇게 일렁이며 살아 움직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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