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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눈으로 포도씨 까듯이 일했시유”

강제윤 시인 - 서산 웅도 기행(하)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2.12.20 13:36
  • 수정 2015.11.11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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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웅도는 한창 굴 수확 철이다. 가로림만 너른 갯벌은 웅도 사람들이 누대를 일구고 살아온 바다 밭이다. 그 밭에서 섬사람들은 조개와 굴과, 낚지를 잡으며 살아간다. 옹도는 마을 길마다, 집안 귀퉁이마다 줄로 이은 가리비 껍질들이 무더기로 쌓였고 그 옆에는 막 채취해온 굴들이 가득 가득 쌓여있다. 가리비 껍질들은 굴양식에 쓰일 예정이다. 가리비 껍질들을 줄줄이 매달아 바다에 띄우면 굴의 포자가 와서 붙고 거기서 굴들이 자란다.

웅도 갯벌의 굴이나 웅도 어리굴젓의 역사는 길다. 하지만 그것은 자연산 굴이었다. 바지락처럼 양식 굴이 웅도 사람들의 새로운 소득원이 된 것은 불과 6~7년 남짓에 지나지 않는다. 그 전까지 웅도 사람들은 해마다 김양식을 했었다. 하지만 바다의 수온이 높아지면서 더 이상 김양식을 할 수 없게 됐다. 처음에는 김 포자가 잘 자라다가 이내 녹아버리곤 했다. 그래서 웅도 사람들은 김양식을 포기하고 새로 발견해낸 것이 굴 양식이다. 이제 굴은 웅도의 또 다른 특산물이 되었다.

양식 굴은 1년씩 키워서 해마다 수확한다. 늦가을부터 이듬해 음력 2월까지 채취 작업을 한다. 반면에 갯벌의 돌에서 자라는 자연산 석화 굴은 5년은 되어야 채취할 수 있다. 웅도 초입 댕편 마을, 굴을 수확해온 어부는 웅도 굴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여기 굴이 비싸. 맛이 좋거든. 남해안 굴들은 수심이 깊은데서 기르니까 굴이 금방 크긴 해. 근데 햇볕을 잘 못 받아. 햇볕을 못 받으니 맛이 덜해. 나락이나 과일도 햇볕을 잘 못 받으면 맛이 없잖아유."
굴도 과일처럼 햇볕을 충분히 받아야 맛이 좋다는 말씀. 썰물 때가 짧아 햇볕에 드러나는 시간이 적은 남해안 양식굴들은 맛이 덜하다는 주장이다. 반면에 웅도 갯벌은 썰물 시간이 길어 햇볕을 받는 시간도 길다. 그래서 맛도 뛰어나고 값도 비싼데 남해안 굴은 값이 싸다는 뜻이다.

어부는 요새 가로림만 조력 발전소 건설 소식에 걱정이 많다.
"다들 조력발전소 반대해유. 안 맞아. 댐을 막으면 물 순환이 안되잖아유. 물이 잘 드나들지 못하면 뻘이 쌓이니까 해산물이 묻혀버리고 못살아. 사람으로 말하면, 운동 안하면 관절염 생기고 핏줄이 안도는 것 같아유."
정부에서 보상을 해준다 해도 반갑지 않다.

"조개 파면 하루 20만원씩은 벌어요. 보상 해줘봐야 얼마 못 살아. 기껏 몇 년 치나 주겠지. 절대 안맞지. 대대로 후손까지 물려줄 갯벌인데. 한 번에 크게 보상해 주면 다 써버리지. 술이나 묵고 화투나 처서 날려버리지. 놀면 다 그렇게 돼."
목돈 생기면 얼마나 가겠는가. 바다 일 외에는 해본 적 없는 주민들이 뭘 할 수 있겠는가. 그까짓 보상금 금새 사라져버릴 것을 잘 안다. 그러면 돈도 잃고 바다도 잃을 것이 자명하다.

 

 

댕편 마을을 지나 큰 마을을 걷는다. 여기도 곳곳에 가리비 껍질들이 벼 낫가리처럼 쌓였다. 웅도는 이제 아주 굴의 고장이 돼버렸다. 고갯길을 오르면 큰골마을. 고갯마루 외딴 집, 할머니는 텃밭에서 김장용 쪽파를 뽑는다.
"다 뽑아서 너무 쓱쓱 뽑아줘서 딸 주고 며느리 주고 했드니 너무 없어. 조금 남겨둘걸."

쪽파뿐이겠는가 할머니는 평생 자신의 모든 것을 쓱쓱 뽑아 자식들에게 나눠주었을 것이다. 할머니는 스물에 서산 지곡에서 웅도로 시집 왔다. 꽃다운 처녀가 어느새 일흔 다섯 노인이 되었다. 지금은 갯벌 사이로 도로가 났지만 그때는 돌다리가 있었다. 작은 징검다리였으니 물이 조금만 들어와도 못 건너 다녔다. 마을사람들처럼 할머니도 우마차를 끌고 다니며 조개를 파다 젓갈을 담가 젓갈장사에게 팔아서 생활했다.

"너나 없이 고생 많이 했지. 눈으로 포도씨 까듯이 일했시유. 물 빠졌을 때 멫시간 얼른 해야 하니께 정신없이 조갤 팠지유. 그걸 젓 담아 놓으면 돈이라고 얼마나 되나."

할머니는 조개 파서 젓갈 담고 낙지도 잡아 6남매를 키웠다. 3년 전 갯벌에 자동차가 다니는 자갈길이 난 뒤 할머니도 우마차를 없앴다. 할아버지는 10년 전에 돌아가셨다.
"일찍 가시던걸요. 살기 싫다고. 몸이 괴로워서 돌아가셨슈."
폐암이었다. 늦게 발견해서 수술도 할 수 없었다.
"6개월 산다 하더니 10개월 살다 가셨슈. 담배 많이 잡수고 술 많이 잡수고 젊어서는 그랬지유. 그게 좋은 건줄 알고. 미련해유, 아주. 남자들이. 우리 아들들은 담배를 끊어서 이뻐."

지금이야 해산물 값이 좋아 조개나 굴, 낚지가 큰돈이 되지만 예전에는 웅도사람들이 갯벌을 파서 겨우 밥이나 굶지 않을 정도였다. 그 때는 바다 것보다 쌀이 더 가치가 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자식들을 제대로 공부시키지 못한 것이 회한으로 남으셨다.
"애들을 갈치도 못했데유. 돈 없어서 못 갈쳤지유."
지금은 갯벌에서 나는 소득이 아주 크다.
"솔직이 얘기 해서 잘 벌지유."

여전히 할머니도 조개를 캐러 다닌다. 하루 70kg도 하고 80kg도 한다. 젊은 사람들은 120kg까지도 판다. 하루 20만원 벌이가 거뜬하다. 이처럼 가로림만 갯벌은 황금의 갯벌이다. 올해는 낚지가 많이 안 나와서 그렇지, 주민들이 낚지를 잡아 버는 소득 또한 엄청나다.
"낚지 잡아 하루 4,5십 만원씩 벌고, 잘 잡는 사람은 몇 달 동안 멫천만원도 벌어유."
조력발전소가 들어서면 이런 황금 갯벌이 사라져 버릴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할머니도 걱정이다. 대대손손 먹고 살아야할 바다가 정부의 잘못된 결정으로 이제 죽음의 바다로 변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좋을 거 뭐 있겄시유. 물이 쭉 안 빠지니까 절단 나지유."
대체 나라는 누구를 위한 나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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