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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날 사랑한다고 말해요”

강제윤 시인 - 군산 어청도 연도 기행(3)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3.01.17 09:24
  • 수정 2015.11.11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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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축복, 기술의 재앙
평상에 앉아 바다를 보던 어청도 어촌계장님은 이제 바다가 아주 망했다고 탄식한다.
"고기 집은 적은데 기계가 발달해서 정확하게 훑어버리니 고기가 씨가 마르지."

옛날 어선들은 눈으로 가늠해 가며 그물을 던졌지만 이제는 어군탐지기로 물고기들이 지나는 길목을 정확히 찾아내 그물질을 하니 치어까지 싹쓸이 되고 만다. 어로 기술의 발달이 단기적으로는 이익을 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바다의 파국을 앞당기는 독이된 것이다. 수 만년, 누대에 걸쳐서 나눠 써야할 자원을 단기간에 고갈 시켜버리는 과학기술. 인간이 이룬 과학기술의 발달을 인간이 통제할 수 없게 될 때 과학 기술은 더 이상 인류에게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다.

어청도에도 낚시꾼들이 많이 찾아오지만 "그들은 어청도의 경제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 어청도 어촌계장님은 "낚시꾼들이 낚시 배를 타고 와서 섬에 내리지도 않고 물고기만 낚아서 돌아간다."고 탄식 한다. "낚시꾼들은 쓰레기만 버리고 간다. 낚시꾼들이 버린 밑밥 때문에 백화현상이 심해 어장이 죽는다."

어청도 주민의 90% 이상이 어업에 목줄을 대고 있으나 바다는 갈수록 흉어다. 새만금 방조제 공사로 갯벌이 죽은 후과가 이 먼 섬까지 미치고 있는 까닭이다. 하지만 고군산 섬들과는 달리 어청도 주민들은 방조제 앞이 아니라는 이유로 보상 한 푼 받지 못했다. 인공어초 사업도 섬들이 몰려 있는 고군산에 비해 투자가 덜 됐다. 한 섬만을 위해 예산을 더 많이 쓸 수 없는 것을 이해하지만 그래도 주민들은 "인공어초를 더 많이 투입해 주길" 바란다. 어선들은 어청도 근해에서는 어획량이 많지 않아 말도나 십이동파도 등의 먼 바다까지 가서 어로를 한다. 그 때문에 비싼 기름 값 빼면 남는 것이 거의 없다.

어촌계장님은 "과거에는 잡히는 물고기도 많았고 단가도 높았지만 지금은 잡히는 양은 대폭 줄었는데 가격마저 떨어졌다."고 한숨을 쉰다. 대량 양식과 중국산의 유입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어촌계장님의 분석이 정확한 것 같지는 않다. 소비자들에게 자연산 물고기는 여전히 비싸기만 한 귀물이 아닌가. 산지에서는 값이 떨어졌지만 소비자들은 오히려 더 비싼 값에 먹어야 한다. 어청도 주민들의 손해는 실상 양식어류나 중국산 때문만이 아니다. 유통업자와 횟집 상인들이 중간에서 이익을 가로채는 것이 더 큰 이유다.


섬 마을의 세레나데
어청도 포구, 어느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반찬이 맛깔스럽다. 식당 안주인이 솜씨가 있다. 50대 후반은 됨직한 동네 남자 하나 문을 열고 들어선다. 남자는 대뜸 무릎이라도 꿇을 태세로 안주인을 향해 팔을 뻗고 노래를 부른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내 사랑 그대여 날 좋아 한다고 말해요
그대 없이 나는 못 살아요.
메마른 내 가슴에 단비를 뿌리는
그대를 너무나 좋아해
날 사랑 한다고 말해요"

섬마을 식당의 세레나데.
안주인은 웃으며 맞장구친다.

"노래는 겁나게 좋구만. 김용임 노래가 어려운디. 시숙님, 노래 잘 하시네"

남자는 한 번 더 목청을 가다듬는다.

"이 세상 영원 영원히
내 곁에 있어 주세요
날 사랑한다고 말해요"

안주인은 웃으며 손을 젓는다.

"시숙님도 참, 내가 그 노래에 어떻게 대답을 하것소."

옆에서 지켜보던 식당 바깥주인은 삐긋이 웃는다. 고독한 섬 살이를 이겨내는 세월의 가락들이다.

왕조의 파수대, 어청도 봉수대
어청도(於靑島) 등대를 돌아보고 서방산 능선을 오른다. 어청도의 주봉인 서방산(198m) 정상에 봉수대가 있다. 원추형의 2층 석축. 봉수대는 고려 의종 3년(1148년)에 처음 축조돼 왜구들의 침략을 감시했다. 봉화는 인근의 외연도, 녹도, 원산도 봉수대를 경유해 보령까지 전해졌다. 조선 숙종 3년(1677년), 외연도, 녹도 봉수대와 함께 폐지 됐다. 봉수대를 운영하던 당시에는 나무가 자라지 못하도록 베어냈을 테지만 오늘 봉수대 앞은 되살아난 원시림으로 울창하다.

왜구들은 한반도 유사 이래 가장 잔혹한 해적 집단이었다. 끊임없는 살육과 노략질로 이 땅의 백성들을 괴롭혔다. 백성에게 가혹한 왕조는 왜구에게는 무능했다. 비록 저 봉수대가 봉화를 올려 왜구들의 침략을 알렸을지라도 어청도 사람들은 결코 왜구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어청도 봉수대는 어청도를 지키는 봉수대가 아니었다. 왜구가 섬을 점령해도 군대를 보내 막아줄 능력이 없던 왕조. 그들에게 섬은 그저 왕국을 지키기 위한 보루였을 뿐 목숨 걸고 지켜야할 왕조의 땅은 아니었다. 관리들의 수탈을 피해 숨어든 섬. 왜구의 침탈을 피할 방도가 없음을 잘 알면서도 섬을 떠날 수 없는 것은 섬사람들의 숙명이었다. 막바지 생들의 막바지 피난처. 그러므로 섬은 섬 사람들 스스로 죽음으로 지켜야할 땅이었고 끝끝내 지켜낸 생의 영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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