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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섬의 수호신이 된 해적

강제윤 시인 - 군산 어청도 연도 기행(4)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3.01.24 11:09
  • 수정 2015.11.11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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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동묘, 어청도의 신당
어청도는 왜구를 비롯한 해적들의 노략질 대상이기도 했지만 더 오랜 옛날에는 섬 자체가 해적의 근거지이기도 했다. 치동묘(淄東廟). 어청도에도 이웃 섬 외연도처럼 치동묘라는 전횡의 사당이 있다. 전횡은 이 섬에서 해적질로 연명했으나 사후에는 신이 되었다.

전횡은 진시황 사후 제나라를 세워 왕이 됐으나 한고조 유방에게 패망한 뒤 500여명의 부하들과 함께 황해의 섬으로 도망 쳤다고 전한다. 외연도의 전설은 전횡이 숨어든 섬을 외연도라 하고 어청도에서는 그 섬이 어청도라 한다. 중국 청도 근해에도 전횡도가 있다.

이처럼 황해 바다에 전횡의 전설이 널리 유포되어 있는 것은 그의 영향력이 컸다는 반증이다. 외연도에서 전횡은 어부들의 수호신이었다. 어청도에서도 그는 여전히 신이지만 어청도의 전설은 외연도에 비해 더 직설적이다. 망명이란 정치적 용어로 포장하지 않고 해적 두목이 된 전횡의 행적을 날 것으로 드러낸다.

대륙에서 쫓겨나 섬으로 들어온 전횡 일행은 어청도를 근거지 삼아 해적 노릇을 한다. 전횡은 서방산 정상에 올라 쇠 부채로 바람을 일으켜 지나가는 배들을 어청도로 유인한 다음 선박을 탈취해 살아간다. 그들이 쇠 부채로 바람을 불러왔다는 것은 해적질이 대체로 바람 부는 날 성공적으로 행해졌다는 뜻이다. 돌풍을 피해 대피한 배들은 독안에 든 쥐가 아니었겠는가.

전횡은 한동안 황해 일부의 제해권을 장악하고 점차 세력을 키웠을 것이다. 하지만 재기의 꿈은 오래 가지 못했다. 한나라 군대의 포로가 된 전횡은 호송 도중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고 부하들 500명도 모두 따라 자결했다. 전횡은 비극적으로 최후를 마쳤지만 그가 점령했던 황해의 일부 섬에서는 오랜 세월 신으로 군림했다. 해적을 바다의 수호신으로 만든 섬사람들의 심리는 무엇일까. 육지의 권력에 저항했던 전횡. 섬 주민들의 육지 권력에 대한 저항과 반감이 전횡에게 의탁 되었던 것은 아닐까.

옛날에는 어청도에 피항 온 중국 배들까지도 치동묘에 제사 지내고 갔다. 또 고래잡이가 한창일 때는 한국 포경 협회에서도 치동묘에 성대한 제사를 지냈다 한다. 포경업이 쇠퇴하면서 사당도 몰락했다. 오늘 치동묘는 전면 개보수 공사 중이다. 하지만 사당이 새 단장을 해도 전횡이 다시 신으로 부활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서남해의 섬들은 이미 서양에서 온 외래 신들에게 점령 당한지 오래인 까닭이다.


연도, 정박을 모르는 닻들의 안식처
닻의 한자어는 정(碇)이다. 오랜 옛날에는 밧줄에 무거운 돌(石)을 매달아 물속에 던져 배가 떠내려가지 못하도록 붙들었다. 정(碇)이란 글자는 거기서 유래했다. 그래서 배가 머무는 것이 정박(碇泊)이다. 연도 해안 곳곳에는 버려진 닻들이 갯벌에 얼굴을 처박고 있다. 정박(碇泊)의 때마다 제 깊은 속살 닻에게 내어주던 갯벌. 연도 갯벌은 이제 닻들의 무덤이 되었다. 바다 한가운데서도 배가 떠내려가지 않도록 붙들어 주던 닻. 이곳에 오기 전까지 닻은 끊임없이 떠돌아야 했다. 정박이 그의 일이었으나 살아서는 결코 정박할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닻. 녹슬어 쓸모없어진 닻은 생명을 거두고 영원한 정박을 얻었다. 끝내 정박에 이르렀으므로 더 이상 닻이 아니게 된 닻. 나그네여! 그대 마침내 안식을 얻었으니 평안하신가.

충남하숙
충남 하숙. 선착장 입구에 몇 개의 하숙집들이 있다. 나무판자나 시멘트 외벽에 페인트로 찍어 쓴 간판. 섬에 웬 하숙집일까. 외지에서 들어온 선원들만을 대상으로 하숙을 치르는 것일까. 주저주저 하다 발길을 돌린다. 민박 간판을 단 집을 찾아 섬의 안쪽으로 들어간다. 나란히 붙어선 민박집, 한 집은 문이 잠겼고 또 한 집은 보수 공사 중이다. 공사 중인 민박집 주인이 하숙집을 찾아가라고 알려준다. 몇 집을 기웃거렸으나 모두 문이 잠겼다. 충남 하숙, 노인이 하룻밤 하숙생을 반긴다. 노숙을 면하게 된 나그네는 안도의 숨을 내쉰다.

'하숙'이란 간판은 폐교되기 전 연도 분교의 어떤 선생님이 달아준 것이다. 그 선생님은 민박 보다는 하숙집이 더 정감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여든 한 살의 '하숙집' 할머니가 따순 밥과 아귀 찌개, 멸치젓을 듬뿍 넣은 김치로 밥상을 차려 내신다. 평생 동안 단물이 다 빠져 나가고서도 아직 진액이 남았던 것일까. 할머니의 손맛이 달다. 여든넷 할아버지는 풍을 맞아 말도 어눌하고 걷기도 불편한 몸으로 손님상에 올릴 생선들을 손질한다. 줄무늬 핀 각시 박대, 아귀, 장대 등의 비늘을 쳐내고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낸다. 손질한 생선을 물에 깨끗이 씻어 빨래 줄연도에서는 생선이 빨래처럼 말라간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느린 손질이 못마땅하다.

"동작 좀 삭삭삭 좀 하지. 갑갑하구만."
할머니의 지청구는 어여쁜 투정이다. 늙은 몸이 서로에게 짐이 되지 않고 의지가 되는 것은 지복이다. 고마워라 생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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