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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지가 거북이가 됐건 뭐가 됐건 올 테지라”

강제윤 시인 - 제주 추자도 기행(3)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3.02.27 09:28
  • 수정 2015.11.11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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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자대교를 지나 하추자에서 상추자로 건넌다. 대교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추자대교는 하추자도 묵리와 상추자도 영흥리 사이 바다 길을 이어주는 212m의 작고 아담한 다리다. 1966년 착공되어 1972년에 완공된 다리가 있었으나 10년도 지나지 않아 교각과 슬래브 곳곳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1988년 무렵부터 붕괴 위험에 빠졌다. 부실 공사 탓이었다. 다리는 결국 1993년 4월 새로운 다리 공사를 위해 모래를 싣고 가던 트럭의 하중의 견디지 못하고 아주 붕괴됐다. 그 사고로 두 사람이 죽었다. 토목 공화국의 부실 공사는 외딴 섬이라고 비켜 가지 않았다. 감시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오지 낙도일수록 더욱 심했다. 성수대교는 섬에도 있었다.

하추자가 상추자보다 면적은 세배 이상 크지만 인구는 상추자가 두 배 이상 많다. 상추자가 고깃배들이 정박할 수 있는 항만이 발달하고 상업시설이 많은 까닭이다. 섬이나 뭍이나 사람은 이익을 따라 모이고 흩어진다. 추자섬 주변은 크고 작은 무인도와 여들이 자주 뱃길을 막는다. 섬과 여는 다르기도 하고 같기도 하다. 물 밖으로 나오면 섬이 되고 물속으로 들어가면 암초다. 여는 섬과 섬 아닌 것 사이에서 존재와 부재를 거듭한다.

큰 미역섬, 작은 미역섬, 밖 미역섬은 미역이 많이 자라 붙여진 이름일 터다. 개린여, 납덕이, 두령여, 상섬, 구멍섬, 덜섬, 쇠머리, 검은가리, 노린여, 문여, 오동여, 검등여, 열섬, 예도, 공여, 악생이, 염섬, 수려섬, 직구도, 관탈도, 푸랭이, 병풍도, 수덕도, 쇠코. 추자의 무인도와 여들. 그 무인도와 여들로 인해 추자 섬은 풍족한 어장이 되었다. 사람들은 추자 섬에 살지만 사람들을 먹이고 입히는 것은 모두 무인도와 암초들이다.

영흥리 입구부터 해안가를 따라 상가들이 시작된다. 미원 일반 음식점, 신안 종합건설주식회사, 멸치액젓, 대영듸젤, 여로 소주방, 왕족발, 별천지 단란주점, 대림게임장, 스카이 단란주점, 해피다방, 에덴 헤어샵, 추광약방, 오동여 식당.....어선들이 많이 드나드는 포구답게 섬에는 유흥업소가 많다.

밤 10시, 추자 수협 옆 추자도 여객터미널 공중전화 두 대는 이주노동자들의 소식 창고다. 영흥리와 대서리 버스정류소 공중전화도 같다. 총 4대의 상추자 공중전화는 이주노동자들과 모국 사이를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다. 전화 회사, KT링커스에서는 점차 수익성 없는 공중전화들을 없애버릴 계획이라 한다. 이제 저 몇 대 남지 않은 전화들마저 철거되고 나면 이주노동자들은 더 이상 가족들의 목소리를 듣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안개의 나날들, 섬은 아침이 와도 안개의 포위에서 벗어날 줄을 모른다. 추자면 소재지 부근 영흥리와 대서리의 집들은 다닥다닥 붙어 있어 마치 거대한 성의 일부분 같다. 옆집과 떨어져 있으면 태풍이나 파도에 휩쓸려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한 치의 틈도 없이 양 옆으로 혹은 앞뒤로 밀착되어 있다. 오래된 습속. 땅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사람은, 섬은 군집생활에 길들여져 있다.

섬에서는 모여 살수록 살아남을 확률이 높았다. 과거 바다 일은 협업이었다. 또 왜구나, 해적들의 노략질과 살육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모여 살아야만 했다. 삶을 이어가고 죽음에 맞서기 위해서는 모여 살 수 밖에 없었다. 추자도의 주거 양식은 확실히 생존의 확률을 높이는 구조다.

두 개의 마을은 추자 항을 따라 몰려있다. 마을의 반대편 해안은 비탈지고 옹색하다. 상추자 북서쪽의 무인도 직구도가 안개의 흐름에 따라 시시각각 그 풍경을 달리한다. 안개의 날에는 섬의 본 모습을 찾을 길이 없다. 사물은 객관적이지만 풍경은 주관적이다. 풍경은 속도에 종속된다. 걷는 속도, 탈 것의 속도, 바람과 안개와 구름의 속도, 마음의 속도에 지배된다. 동일한 풍경을 보고 와서도 그려내는 풍경이 사람마다 제 각각인 것은 사물을 관찰 할 때의 속도가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자동차의 속도가 놓치는 풍경을 걷기의 속도는 포획해 낸다.

먼 바다에 풍랑 주의보가 내렸다. 이 바다에도 곧 주의보가 내릴 것이다. 하추자 신양항 대합실은 섬을 빠져나가려는 여객들로 혼잡하다. 난바다의 섬에는 큰 바람이 불지 않아도 배가 다니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바람이 아니라도 바다는 자주 안개의 군단에 포위당한다. 이제 여름이 오고 우기가 시작되면 섬은 더 자주 고립될 것이다.

완도에서 오는 강남풍호는 안개의 포획에 걸려 출항이 두 시간이나 늦어졌다. 도착 시간은 그보다 더 늦어질 것이다. 안개. 바람이나 거센 풍랑을 피해갈 수 있는 노련한 선장도 안개를 피해갈 도리란 없다. 안개에는 틈이 없다. 세상의 어떠한 지식도 안개의 세상에서는 무용하다. 여객선은 그저 안개의 눈치를 봐가며 느릿느릿 나아갈 뿐이다. 대합실의 노인들은 배시간이 늦어져도 느긋하다. 조급해봐야 달리 방법이 없음을 잘 아는 것이다.

"지가 거북이가 됐건 뭐가 됐건 올 테지라."
노인의 말은 제주도보다 전라도 방언에 가깝다. 추자도는 오랜 세월 전라도 문화권이었다. 배는 예정보다 늦었지만 끝내 추자도까지 도달했다. 이제 나그네도 추자 섬을 떠날 때가 왔다. 나그네의 무게를 추자 섬의 땅과 바다가 받아 준 것일까. 추자 섬으로 오기 전에 무거웠던 마음이 섬을 걸으며 가벼워졌다. 사람의 마음이 늘 무겁거나 가볍기만 하겠는가. 무겁기만 하다면 가라앉아 버릴 것이고 가볍기만 하다면 날아가 버릴 것이다. 사람이 세상에 발붙이고 살 수 있는 것은 사람의 마음에 추가 있기 때문이다. 무거움과 가벼움을 오가며 균형을 잡아주는 균형추. 마냥 마음의 오고감에 끄달리며 살 이유가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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