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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욕지도 총각한테 발목 잡힌 제주 해녀

강제윤 시인 - 통영 욕지도기행(3)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3.04.11 11:45
  • 수정 2015.11.11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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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물 양식이 큰 소득을 가져다주면서 섬에도 젊은 사람들이 다시 들어와 살고는 있지만 섬은, 농촌처럼 지속적으로 빈집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교통의 불편보다 더 큰 이유는 아이들 교육이다. 욕지도에도 빈집들이 많다. 아주 사람이 살지 않거나 어장철이나 피서철에만 돈벌이를 위해 가끔씩 들어와 사는 집, 그 또한 빈집이다. 이 나라는 집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빈집에 사람이 들어가 살게 할 정책이 부족하다.

4차선 국도 옆으로 고속도로를 만드는 나라. 도로가 늘어도 막힐 때는 늘 막힌다. 휴가철이나 명절, 일 년에 몇 차례를 제외하고는 늘 텅 비어 있는 도로. 그래도 이 땅은 언제나 도로 공사 중이다. 아파트를 짓는 것이 집 없는 자들을 위한 일이 아니라 건축업자와 부동산 투기꾼들을 위한 일인 것처럼, 터널을 뚫고 도로를 만드는 일 또한 국민들을 위한 일은 아니다. 그런 정책을 만드는 정치인들과 건축, 토목 관련 공무원들은 나라의 공복이 아니다. 건축, 토목 업체의 파견 직원들이다.

섬이라고 토목 마피아들로부터 무사한 것은 아니다. 골재 채취 명목으로 사라진 섬이 한 둘이겠는가. 섬이 망가지는 것은 태풍이나 풍랑 때문이 아니다. 탐욕 때문이다. 수 억 년 온갖 풍파를 견딘 섬을 인간은 하루아침에 파괴한다. 인간의 탐욕이 허리케인이나 쓰나미 보다 무섭다. 어떠한 태풍이나 해일도 섬 전부를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인간은 작은 포크레인 한대로도 섬 하나쯤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든다. 나는 토목공화국이 두렵다. 벌써 200년도 전에 소로우는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의 무분별한 탐욕을 향해 경고 한 바 있다.

"돈 몇 푼을 벌기 위해 강을 훼손 하려는 사람은 돈을 받고 천국을 파는 사람과 다를 바 없다."

관청 마을을 지나 비탈진 언덕길을 오른다. 대체로 섬에서 사람 사는 마을의 뒤편은 공동묘지다. 볕이 잘 드는 봉분 근처에 자리 잡고 앉는다. 사람은 죽음의 뒷마당에서도 삶의 앞뜰을 생각한다. 죽음 곁에서도 삶은 따스하다. 그렇구나. 어떠한 삶도 양면이다. 슬픔의 뒷면은 기쁨이고, 상처의 뒷면은 치유다. 실연의 뒷면은 사랑이고, 절망의 뒷면은 희망이다. 어둠의 뒷면은 빛이다. 주저앉아 우는 길손들아! 일어나 또 가자.  

욕지도에는 과거 제주에서 물질을 왔다가 욕지도 총각에게 발목이 잡혀 몇 십 년째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사는 해녀들이 여럿이다. 그래서 욕지도 뱃머리에는 해녀가 직접 물질해 온 전복, 해삼, 소라, 합자(조선홍합)들을 맛볼 수 있다. 해녀의 남편인 어부가 낚아온 싱싱한 횟감들은 덤이다. 섬에서는 갓 잡아온 이런 해산물을 먹는 것이야말로 섬 여행 최고의 즐거움이다. 조리 하지 않고 그저 날것을 내어줄 뿐이지만 그래도 식탁은 더없이 풍성하다. 제주에서 물질 왔다가 정착한 어떤 해녀의 좌판. 해녀는 스무살 처녀시절 욕지도에 물질을 왔다가 어부인 사내를 만났다. 벌써 30년도 전이다. 해녀는 한사코 자신이 발목을 잡혔다하는데 어부는 늘 해녀가 발목을 잡았다고 한단다.

해녀는 자신이 잡아온 성게와 돌멍게, 굴을 까주고 남편인 어부가 잡아온 활 고등어를 회로 떠준다. 성게알의 맛은 달디 달아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다. 돌멍게도 바로 잡아온 것이라 고소하다. 고등어는 너무 작아서 맛이 덜 들었지만 이 또한 달다. 해질녘 욕지도 선창가의 해산물 부페. 서울 어느 특급호텔에서도 결코 맛볼 수 없는 최고의 성찬이다. 술 한잔을 마시자 온몸에 취기가 오른다. 하지만 이런 성찬 앞에서라면 몇 병의 술을 더 마셔도 취기는 처음 그대로일 것이다.

출어를 나갔던 어부가 돌아왔다. 어부는 횟감을 또 잡아왔다. 어부에게 묻는다. 누가 발목을 잡았나요. 어부는 겸연쩍게 웃는다.
"제가 잡았죠."
해녀는 어이가 없는지 푸하핫 웃는다.
"별일이네 낼은 해가 서쪽에서 뜰 모양이네. 늘 내가 발목을 잡았다더니."
해녀는 마침내 어부의 자백을 받아냈다. 기분이 좋은 걸까 처녀 적 그 시절로 잠시 돌아간 걸까. 목소리에 설레임이 묻어난다. 어부가 볼락 한 마리를 회 떠서 서비스로 가져다준다. 해녀는 큼직한 전복 하나를 통째로 잘라다 준다. "양식이 아니라 자연산이에요. 자연산." 자백을 받아내 준 보답이이라. 아, 이 정겨운 맛을 평생 어찌 잊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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