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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영국군 수병 묘지에서 쓰는 편지

강제윤 시인 - 여수 거문도 기행(1)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3.04.18 11:30
  • 수정 2015.11.11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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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자신이 아는 만큼 존재한다. 세 시간의 항해 끝에 '거문도 사랑'호가 거문도 내해로 진입한다. 여수항을 출항한 여객선은 나로도와 손죽도, 초도 등의 섬을 경유해 거문도로 왔다. 거문도에 오기 전까지 나는 이 항로의 중간에 손죽도와 초도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두 섬은 나의 세계에는 없는 섬이었다. 거문도 여정을 통해 나의 지도에는 두 개의 섬이 더 생겼다. 내 세계는 그만큼 넓어 졌다.

여수에서 114 킬로, 먼 바다로 나왔지만 거문도 내항 바다는 잔잔하다. 서도와 동도, 고도 세 섬이 팔을 벌리고 서로를 품어 내해를 이루었다. 여객선은 고도에서 닻을 내린다. 고도 거문리 포구는 천연 방파제의 보호를 받는 천혜의 항구다. 거문도는 하나의 섬이 아니다. 동도와 서도, 고도 세 섬이 모여 거문도를 이룬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세 섬은 어깨 걸어 바람과 파도를 막아낸다. 세 섬은 오로지 서로에게 의지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한 섬이다. 거문도는 하나이면서 셋이고 셋이면서 하나다.

거문도처럼 두세 개의 섬을 같은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가 더러 있다. 제주의 추자도는 상추자, 하추자, 통영의 사량도는 상도, 하도 두 개의 섬이 하나의 이름을 가졌다. 거문도는 서도가 그 중 크고 동도, 고도 순이다. 고도와 서도는 다리로 이어졌다. 거문도의 행정과 상업 중심지는 가장 작은 섬, 고도다. 고도의 거문리에 대부분의 민박, 횟집, 식당을 비롯해 면사무소와 파출소, 농 수협 등의 관공서가 몰려 있다.

여객선도 서도와 동도를 경유 하지만 최종 목적지는 고도의 거문리다. 작은 섬 고도가 거문도의 중심지가 된 것은 외세의 영향이 크다. 1885년부터 2년간 영국 군대의 거문도 무단 점령 때 영국군은 군대의 주둔을 위해 고도에 항만을 개발했다.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도 행정의 중심이었던 고도는 일본인들의 주요 거주지이자 물류 중심지가 됐고 그것이 오늘까지 이어졌다.

거문도 항에 내린 단체 관광객들은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서둘러 유람선으로 이동한다. 백도 유람을 목적으로 거문도를 찾은 관광객들. 이들 대부분이 노인이다. 여행사를 통해 온 단체 관광객들은 유람선을 타고 두 시간 남짓 39개의 바위섬, 백도를 구경한 뒤 거문리 포구로 돌아온다. 관광객들은 민박집에서 일박을 하고 아침이면 거문도산 갈치와 학꽁치, 돌미역 등을 사들고 떠난다. 백도 관광은 전형적인 효도관광 코스다. 거문도는 백도 관광의 중간 기항지로 성업 중이다.


거문도는 손죽도, 초도 등과 함께 여수시 삼산면에 속한 섬이다. 삼산면의 인구 대부분이 거문도에 산다. 한때는 거문도에만 1만 3천의 사람이 살았으나 현재는 삼산면 전체에 2300여 명만 남았다. 거문도를 찾는 관광객들은 사철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관광업의 은덕이 거문도 전체에 미치지는 못한다. 이 땅 어디나 그렇다. 관광객이 몰려도 혜택은 일부 상업 지역에 국한 된다. 거문도 관광 산업의 이익은 고스란히 여객선과 유람선 업자, 거문리 상인들 몫이다. 섬뿐이랴. 온 나라가 개발의 광풍에 휩싸여 일확천금을 꿈꾸지만 개발 이익은 결코 우리 것이 아니다.

3월 말의 거문도 어판장은 아직 활기가 없다. 4월 중순은 돼야 갈치 배들이 출항을 시작한다. 6월이면 갈치들이 본격적으로 몰려와 선창가에서도 갈치를 낚을 수 있다. 갈치 잡이는 11월이면 파장이다. 겨울부터 초봄까지는 삼치가 더러 잡히지만 많지는 않다. 수협 위판장에는 갓 잡아온 굵은 삼치들만 몇 상자 놓여있다. 관광객들이 사가는 갈치는 지난 가을 잡아다 냉동 저장 했던 것들이다. 생 갈치 외에도 선창가에서 잘 팔리는 상품은 뼈를 발라 말린 갈치와 학꽁치포다.

거문도 내해에는 가두리 양식장이 많다. 서도와 동도가 바람과 파도를 막아주는 덕분에 양식이 가능하다. 가두리에서는 돔과 우럭, 문어, 전복 등이 길러진다. 횟집마다 자연산 회를 판매 한다고 붙여 놓았지만 양식 물고기와 구별은 쉽지 않다. 거문리 포구 작은 슈퍼 앞 평상에 노인 두 분이 앉아 있다.

요즈음은 주민들도 낚시를 해서 물고기를 잡기가 쉽지 않다 한다.
"고기가 옛날 하고 틀려갖고. 옛날에는 더러 낚아다 묵기도 하고 그랬는데 요즘은 어장배들이 싹쓸이 해빙께 낚어 묵도 못하요."

그렇다면 자연산만 판다는 거문리 횟집의 물고기들은 어디서 오는 걸까.
"도미나 우럭 같은 것은 거의 다 양식이지. 자연산도 있지만 많진 않고. 그래도 여그 물이 워낙 깨끗하니까 싱싱하고 괜찮아요. 양식이라도."

노인은 양식과 자연산의 구별법을 알려준다.
"도미도 양식장에서 나온 건 깜장 색이 많고, 자연산은 암만해도 빨간색이 많이 돌지. 멍게 같은 건 양식은 쓰디 써. 자연산은 달디단디."

노인은 공무원으로 일하다 10여 년 전에 퇴직 했다. 며느리가 국수를 삶아놨다고 노인을 부른다. 노인은 배가 안 고프다며 나중에 먹겠다 한다. 며느리는 국수가 퍼질 것이 걱정이지만 더 이상 권하지 않는다.

"그물로는 일체 고기를 못 잡게 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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