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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지붕이 날아갈까 무섭소”

강제윤 시인 - 여수 거문도 기행(4)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3.05.09 13:18
  • 수정 2015.11.11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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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이 날아갈까 봐서 무섭소."
해안도로를 따라 유촌에서 죽촌으로 넘어간다. 죽촌 마을 앞길은 물고기 양식장 사료로 쓸 냉동 물고기 하역 작업이 한창이다. 사료 창고에서는 물고기를 자르는 기계소리가 요란하다. 해안가 낡은 오두막 집 마당에서는 할머니 한분이 생선을 손질하고 앉았다.

"말렸다가 반찬 하실려구요."
"아닙니다. 냉동실에 넣어 뒀다가 아이들 오면 먹일라고 그럽니다. 칵칵 씻처갔고 배를 뜹니다. 이거 이리 좋다요. 한데 좀 빈내가 납니다"

할머니는 선한 인상처럼 말씀도 참 곱다. 학꽁치가 맛있기는 한데 날것으로 먹으면 조금 비린내가 난다는 말씀이다. 학꽁치는 할머니가 잡은 것이 아니다. 거문리에 사는 할머니의 조카가 가두리 양식장 바지에서 뜰채로 뜬 것이다. 이 땅의 어머니 누가 아니랴. 할머니도 자식들을 키워서 모두들 세상으로 보내고 혼자 사신다.

"자식들 있어도 다 객지가 사요. 큰 아들은 서울서 살고. 나는 이라고 삽니다. 이게 편합니다. 시골 사람은 시골 사는 게 좋습니다."

몸은 편찮아도 혼자 사는 것이 마음은 편타.
"그렇잖아도 자식들은 집을 폴라고 합니다. 이리 헐었어도 바닷가라 폴라는 사람 많습니다. 그래서 '내가 뭐 하러 집을 폴아야' 그랬습니다. 나가 살았응께, '죽을 때 까정은 여그서 살란다' 그랍니다. 그런데 여기는 뭐하러 오셨소."
"구경 삼아 왔습니다."
"나는 뭐 폴로 다닌 줄 알았습니다."

배낭을 맨 허름한 입성의 나그네가 장돌뱅이처럼 보이셨나 보다.

"저그 방파제 가면 참 좋습니다. 사람이 여름 되면 넘칩니다. 발에 걸립니다. 쪼깐 안즈꺼인디 그라요. 다리 아픈데 서 있고 그라요. 고기 하나는 거문도가 흔하요."

자식들의 부양 능력 여부와 관계없이 자식이 있다는 '죄' 하나로 혼자 사는 많은 극빈층 노인들이 생활보호 대상자가 되지 못한다. 팔순의 할머니도 오랜 세월 자식이나 국가의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살아오셨다.


"자식들 사정도 에럽고. 아들네 있다고 돈 한 닙도 못 타 묵고, 도회지는 똥도 돈 아닙디야. 그래도 달달이 빠딱 8만 4천 원씩, 타먹고 있습니다. 근디 거문리로 가서 타야하니 나룻배 성게만 오고가고 4천 원씩이나 나갑니다."

그나마 기초 노령 연금을 타게 되면서부터는 그것이 생활에 큰 보탬이 된다.

"그래도 살기는 여가 좋습니다. 어지간하면 여기는 살아요. 바닷가 가서 찬거리 해다 묵고. 일해 주고 얻어 묵기도 하고. 내 보지런 하면 삽니다. 께을러서 못하께 그러제라."

거문도에서 나고 자라 거문도로 시집온 할머니. 선원 생활하며 늘 바깥으로만 떠돌던 남편은 이제 집에 정주하는가 싶더니 바로 세상을 떴다. 그때 남편의 나이 쉰다섯.

"아범도 청춘에 가버리고. 혈압이 높아서 그만 밥 잣다가 넘어가 버립디다. 자식들 키우고
입때껏 혼자 사요. 살았을 찍에도 2년마다 한번 옵디다. 고깃배 타고 외국 댕기느라고."

"할머니, 참 고우세요."
"무슨 다 늙어가 여망 꽃까정 핏는 걸요."

할머니는 살풋 웃는다.

"뭐 할라고 여망 꽃은 피능가 모르겄소. 젊어서는 이삐단 소리도 많이 들었습니다만."

나이 팔십에도 예쁘단 소리가 듣기 싫지 않으신 할머니, 천상 여인이다. 할머니의 집은 초가집을 지붕만 스레트로 바꿨다. 그도 세월이 지나니 낡을 대로 낡아 집은 곧 허물어질듯 위태롭다. 할머니는 지금도 해변에 떠밀려온 나무를 주어다 불을 때고 산다.

"바람이 불 때 그중 깝깝하요. 혼자 사께 태풍이 오면 그중 무섭소. 집이 허께, 지붕이 날아갈까 봐서 무섭소."

할머니는 손놀림을 쉬지 않지만 바구니에는 아직도 학꽁치가 가득하다. 나그네는 나룻배 시간에 맞춰 일어선다.

"할머니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세요."
"오래 살아 뭐 하꺼시오. 늙으면 가야제라. 말이라도 고맙소만."

말을 그렇게 하셔도 싫지 않은 표정이다. 나그네가 잠깐 말벗이라도 되어 드렸던 것일까. 할머니는 연신 고맙다 하신다.

"고맙소, 왔다 가니라고 고맙소. 갑시다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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