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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바다 위에 피어난 연화세계의 꿈

강제윤 시인 - 통영 연화도 기행(1)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3.05.30 08:39
  • 수정 2015.11.11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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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도 뱃머리가 기계음으로 요란하다. 절단기에 잘게 토막 난 생선들이 차곡차곡 박스에 쌓인다. 가두리 양식장으로 갈 사료들이다. 냉동 청어, 갈치, 정어리 등은 통영 항으로 수입 돼 각지의 양식장으로 흘러든다. 작업 중인 사내는 2만 마리의 우럭을 키운다. 그의 양식장에는 이십 삼사 킬로들이 생선 사료 박스가 하루에 30개 정도 투입된다. 자연산 물고기들은 자연산 먹거리를 먹지만 양식장의 물고기들은 중국산 냉동물고기를 먹는다. 몸은 먹은 대로 간다. 생선의 맛이 다른 것은 그 때문이다.

연화도와 우도 사이 가두리 양식장에서 길러지는 어종은 대부분이 우럭이다. 도미는 연화도에서 단 두 가구만 키운다. 도시의 횟집에서는 도미의 가격이 비싸지만 산지에서는 우럭보다 더 싸다. 현재 연화도에서 출하되는 우럭은 500g에 6500 원 선이고 도미는 1kg에 8000 원 남짓이다. 쌀 때는 우럭이 500g에 4000 원까지 떨어진 적도 있었다. 그때는 사료 값도 안 나왔다. 값이 올라도 8000 원을 넘어서지 않는다. 요즈음의 가격은 현상유지 수준이다. 횟집에서 큰 것을 선호하지 않는 까닭에 양식 생선은 크다고 가격을 더 받는 것이 아니다. 연화도에서는 36가구가 가두리 양식업에 종사 중이다.

뱃머리에 식품차가 들어왔다. 대파, 숙주나물, 브로콜리, 계란, 해남 배추도 싣고 왔다.
"오늘은 우유도 없네."
"대리점이 문을 안 열었는데 내보고 어찌라고."

대파 값이 비싸다. 한단에 5000원.
"김은 없나?"
"김은 다 나갔어요."

두부는 한모에 1000원.
"오늘 다 시무식 한다고 판장도 문을 여나. 그라이 물건이 없제."

장돌뱅이 사내는 삼천포에 살며 트럭에 물건을 싣고 욕지도와 연화도를 넘나든다. 욕지도는는 일주일에 다섯 번, 연화도에는 한번씩 들른다.
"배추 다섯 단 가 온나."
"모레 아침에 나오소."

섬에 들어오지 않는 날은 주문을 받아 배에 실어 보내주기도 한다.


결핍에 시달리다
연화도(蓮花島). '연화세계를 알고자 하거든 그 처음과 끝을 세존에게 물어보라'(欲知蓮華藏頭尾問世尊). 세존께서 알려준 연화세계가 이 섬이었던가. 옛 사람들이 꿈꾸던 유토피아, 연화세계란 대체 무엇일까? 헐벗고 굶주림이 없는 세계. 그것이 옛사람들이 그토록 바라던 이상향이고 무릉도원이며, 산해경 속의 남류향이며, 지리산의 청학동이고, 태백산의 오복동(五福洞)이고, 비로자나불이 계신다는 연화세계가 아니겠는가.

오늘의 나는 어떤가? 나는 더 이상 밥 굶거나 헐벗지 않고, 추위에 떨지도 않고 살아간다. 그렇다면 나는 이미 연화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또 어디서 연화세계를 찾자고 길 떠나 헤매는 것일까. 옛 사람들이 꿈에도 열망하던 그 세계에 살면서도 어째서 나는, 우리는 늘 결핍에 시달리는가. 진정으로 연화세계에 이르는 길은 무엇일까. 스스로 만족함을 아는 것일까. 하지만 만족이란 또 얼마나 어려운 경지인가. 모자람을 참는 일보다 더 어려운 것이 만족이 아닌가.

연화봉(212m)에 오른다. 산은 가파르지 않고 원만하다. 연화도(蓮花島)의 지명 유래에 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섬의 모양이 연꽃처럼 생긴 데서 유래했다 한다. 또 하나는 연화도사의 전설에서 비롯되었다. 조선시대 연산 임금 시절 연화도사가 세 명의 비구니와 함께 섬에 들어와 암자를 짓고 수도 생활을 했다. 세월이 흐른 뒤 연화도사가 열반에 들자 비구니들은 도사의 유언대로 바다 속에 장사 지냈다. 바다에서는 연꽃이 피어났다. 연화 도사의 전설이야 전설이니 진위를 따질 것은 못 된다.

하지만 연화도사의 수도처에 후일 사명대사가 들어와 수도했다는 전설까지 있고 보면 섬이 불교와 인연이 깊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연화도만이 아니다. 통영 앞바다의 여러 섬들이 불교문화의 자장권에 있었던 듯하다. 유배자의 후손들이나 도망노비, 관의 수탈에서 달아난 사람들이 섬에서 피난처를 찾은 것처럼 지배세력의 탄압을 피해 불교 수행자들이 찾아낸 피난처 중 하나가 이 남해 바다의 섬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뭍에서는 이룰 수 없는 연화세계, 불국토의 꿈을 섬에서 이루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연화도와 욕지도, 두미도와, 세존도, 미륵도 등 불교에서 비롯된 통영 바다 섬들의 이름은 그 꿈이 남긴 흔적이 아닐까.

연화봉에 정상에 올라서 보면 연화도는 결코 연꽃 모양이 아니다. 섬은 동서로 길게 뻗어 있다. 연화도의 이름이 섬의 형상에서 유래하지 않은 것은 자명하다. 그보다는 연화, 욕지, 두미, 상노대, 하노대, 갈도, 국도, 세존도, 미륵도, 연대도 등의 섬들이 둥그렇게 펼쳐져 그리는 모습이 흡사 연꽃 같다. 연화세계는 하나의 섬으로 이룰 수 있는 세계가 아닌 것이다. 넓은 바다에 펼쳐져 있는 크고 작은 섬들이 이루는 동심원(同心圓). 서로 의지하여 살 수 밖에 없는 섬들 간의 연대 속에 연화세계는 연꽃처럼 피어오른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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