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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성도 이름도 없이 '아무것이네' 하고 부르고

강제윤 시인 - 통영 연화도 기행(2)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3.06.05 11:15
  • 수정 2015.11.11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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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섬으로 와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풍경일까. 휴식일까. 싱싱한 해산물들일까. 얻을 수 있다면 무엇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 하지만 이들은 섬에 오는 누구나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는 것들이지 오롯한 자신의 것은 아니다. 누구도 얻지 못하고 나만이 온전하게 얻어갈 수 있는 것은 오직 '한 생각'뿐이다.

새로운 '한 생각'을 얻는 일이야말로 오랫동안 나를 괴롭히던 '한 생각'을 떨칠 수 있는 지름길이다. 섬에서는 걷기가 그것을 가능케 한다. 자동차의 방해 없이 걸음에 몸 맞기고 온전히 걸을 때 생각은 자유를 얻는다. 애쓰지 않아도 자연히 한 생각이 오고 한 생각이 간다. 온전한 걷기란 단지 다리 근육의 운동만을 의미 하지 않는다. 그것은 잠들어 있는 생각을 깨우고 사유의 폭을 확장 시키는 정신의 운동이기도 하다.

아침 일찍 연화사를 둘러보고 내려오는데 길 가 집 마당에서 할머니 한 분이 호박을 말리고 있다. 호박을 잘게 썰어서 말리지 않고 한통의 반을 잘라 속을 파내고 통째로 말리는 모습이 특이하다.

"할머니 어째서 호박을 통으로 말리세요.?"
할머니는 호박을 통으로 건조 시켰다가 꾸득 꾸득 마르면 길게 썰어서 묵나물을 만드실 거란다.

"고향은 어디세요?"
"거제서 나서 열 여덟에 시집 와 이라고 있습니다. 아파트는 못 살겠고 그래서 이라고 있습니다."
할머니는 자식들에게 가서 살아도 봤지만 답답해서 다시 돌아 왔다.

"열, 열하나씩 살았어요. 씨아재, 씨누들 여기서 다 키와서 시집 장가 보냈지. 씨아재는 또 미국 가고, 한 씨아재는 죽고, 영감도 십년 전에 돌아가고."

이 좁은 집에서 열씩, 열 한명씩 북적이며 크고 자라 지금은 다들 멀리 가고, 더러 죽기도 하고 할머니 혼자만 산다. 혼자 살기에도 넓어 보이지 않는 집에서 예전에는 다들 그렇게 살았다.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할머니?
"팔십 둘, 설 쇠면 셋이고. 다리가 아파서 염증 수술 하고 마산까정 맨날 약 타러 다닙니다. 걱정이 태산이요 태산. 돈도 없고."


할머니는 통영까지 배를 타고 나가 손자들 사는 마산의 병원까지 또 버스를 타고 가서 약을 타 오는 일이 고역이다. 할머니는 아직 불을 때고 사는 부엌을 수수빗자루로 청소한다.

"사람 사는 것도 아니지."
누추한 부엌살림을 들킨 것이 민망하신지 할머니가 괜한 말씀을 하신다.

"불을 때서 난방을 하세요?"
"나무도 때고 추운 날은 전기도 꼽고."

"나무는 어디서 구하시는데요?"
"영감이 해놓고 갔어요."

"십년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가요?"
"예, 빈집에 해놓고."

할머니는 10년 전에 할아버지가 해놓고 간 나무를 아끼느라 몸이 성할 때는 손수 해다 땠을 것이다. 몸에 병이 생겨 움직이기 힘든 이즘에야 아껴 둔 나무를 가져다 때는 것이겠지.

"무릎에 물이 고여서 두 번 수술을 했어요. 내일이나 죽을 줄 알면 수술을 안 할 텐데. 90까지 살게 되면 밥도 못해 먹고 자식들 원망 들을 것 같애서 죽으나 사나 수술을 했지요. 입때 까장 병원 모르고 살았는데 병원에 갇혀 있으려니 좀 갑갑했어야 말이지. 죽을 때 까정 병원을 모르고 살어야 하는데. 맘대로 안되는 기고."

마산의 큰 아들은 진작에 세상을 떴고 며느리가 손자들이랑 산다.
"큰 아들은 죽고. 메느리가 손자들 돌보고 사니라 고생이 많제. 내사 농사 이놈 갖고 애들 공부 시키고 한다고 허리도 꼬부라지고."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섭섭하시죠?"
"하나 씩 죽어야 하제. 늙어서 둘이 있으면 어쩔거야.
기둥에는 10년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 명패가 여태 걸려 있다

"할머니 성함은 어떻게 되세요?"
"성도 이름도 없어요. 누구 즈그 어메라고 부르고. 아무 것이네 하고. 성도 이름도 없이 살아요."

할머니는 마당에 널어 말리던 메밀을 까불러 나간다.
"감기 들면 끓여먹고. 열을 내린다 해요. 메밀이."

혼자 살지만 할머니는 아픈 다리 이끌고 종일 움직인다.
"가만있으라 한들 가만 못 있어요. 일해 먹던 사람이 돼 놔서."
'챙이'로 메밀 터는 모습을 지켜보다 인사를 드리고 돌아서는데 할머니의 목소리가 발길을 붙든다.

"나 이름은 윤 필순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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