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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미륵 섬 가는 길

강제윤 시인 - 통영 우도, 두미도 기행(1)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3.06.13 09:05
  • 수정 2015.11.11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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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는 연화도와 지척이지만 정기선이 없다. 민박집 배를 빌려 타고 우도로 건너왔다. 자는가 싶던 바람이 다시 거세진다. 파랑이 일고 먼 바다에 나갔던 작은 어선들은 서둘러 포구로 돌아온다. 우도를 둘러보고 두미도로 갈 생각인데 바람 골 터지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배가 뜰 수 있을까. 폭풍주의보는 내리지 않았지만 바람 부는 날 바다는 예측불허다.

바다처럼 섬살이도 늘 예측불허. 우도의 주민들은 대부분 고개 넘어 움푹 파인 분지 안에 둥지를 틀고 산다. 뱃머리 선창가에는 몇 채의 집들만 다닥다닥 붙어 있을 뿐. 초입의 컨테이너 박스는 여름철 상점으로나 사용하는지 문이 잠겨 있다. 공동 우물은 뚜껑이 덮여 있다. 들머리 첫 집은 민박을 하고 낚시 배도 부린다. 뒷집은 대문이 잠겨 있다. 겨울 한철 출타 중인 모양이다. 겨울에 일거리가 없는 노인들은 섬을 떠나 자식들 집에서 겨울을 나고 봄이 돼서야 돌아오기도 한다.

고갯길을 넘으면 우도의 큰 마을이다. 이 섬에서도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은 당산나무들이다. 우도의 당산나무는 생달나무와 후박나무다. 생달나무 세 그루는 외가지로 곧게 뻗어 잔가지를 쳤고 후박나무 한 그루는 네 개의 큰 가지로 갈라져 자랐으나 그중 작은 가지 하나는 바람에 쓰러져 고사했다. 나무는 모두 거목이다. 나무는 네그루이면서 동시에 한그루이기도 하다. 좁은 땅에 뿌리내린 나무들은 이미 오래전에 하나로 뒤엉켜 양분을 공유할 것이다. 당산나무는 5백 년 동안이나 마을을 지켜준 공로를 인정받았다. 천연기념물 344호, 보호수가 됐다.

구멍섬(穴島)을 찾아 간다. 구멍 섬이 있는 해안에는 한 채의 집만 외롭다. 이 집 또한 섬을 떠나 출타 중이신가. 문이 잠겨 있다. 작은 마당은 금잔디가 깔려 정갈하다. 화단에는 굵은 회양목 한 그루. 마루에 놓인 전기밥솥과 냉장고가 사람살이의 흔적이다. 삼 칸 집. 부엌과 툇마루 사이에 작은 문을 뚫어 음식이 드나들게 했다. 안방 출입문 위 상인방에는 두 개의 액자가 걸려 있다. 할머니 초상화에는 스냅 사진이 세장이나 끼워져 있다. 할머니의 독사진은 어느 식물원 앞인 듯하고 두 장은 자녀들과 찍은 사진이다. 왼쪽의 액자는 손자의 돌 사진이다. 현대스튜디오에서 촬영됐다.

벽에 걸린 2002년 월드컵 기념 시계는 오후 1시25분을 지나고 있다. 내려진 전기 차단기는 집 주인이 장기출타중임을 알려준다. 행랑채 출입문은 비닐 창호였으나 지금은 찢겨져 있다. 사랑채 벽에는 그물이 걸렸고 뒤 안 헛간에는 어구며 농기구들이 가득하다. 집은 나무와 돌과 흙과 물, 바람과 햇볕으로 빚어졌다. 바닷가 쪽은 시누대를 심어 바람막이를 했다. 집주인은 봄이 되면 돌아올까.

 

해변의 고구마 밭을 지나 구멍섬으로 간다. 구멍 섬은 작은 무인도다. 섬의 앞뒤로 구멍이 뻥 뚫려 있다. 그래서 구멍섬이다. 섬에 구멍을 뚫은 것은 파도일 것이다. 문득 지난 겨울 태백에서 본 자개문(子開門)이 생각난다. 구문소의 자개문 또한 물이 바위를 뚫어 생긴 구멍이다. 옛날 사람들은 매일 자시에만 열리는 자개문을 지나면 사철 꽃이 피는 오복동(五福洞)이란 유토피아에 이를 수 있다고 믿었다. 물이 큰 바위를 뚫는 일은 희유한 일이니 그 문을 지난다면 이상향엔들 어찌 못 가랴. 저 구멍섬을 지나도 유토피아에 이를 수 있을까. 이어도로 이어지던 문도 저런 문이었을까. 구멍섬 옆에서는 늙은 해녀가 세찬 물결 가르며 물질한다. 문이 열려 있어도 그녀는 이어도에 도달 할 수 없는 것일까.

우도 뱃머리로 바다랑호가 입항한다. 이 항로에서도 우도와 오곡도 같은 작은 섬에는 손님이 없으면 배가 서지 않는다. 이장 집에서 선장에게 미리 연락해 배를 세웠다. 바다랑호는 통영 항에서 출항해 오곡도를 거처 우도까지 왔다. 선실 안은 제법 많은 승객들로 웅성거린다. 우도를 떠난 배가 탄항, 하노대, 상노대, 산등, 두미 남구를 지나 종착지인 두미 북구에 도착한다. 배는 여객을 태우고 통영으로 회항한다. 가는 길은 직항이다. 작고 외진 섬들만을 다니는 보조 항로. 이 외딴 섬들을 다니는 뱃길에는 승객이 많지 않아 선사에서 수지를 맞추기 어렵다. 그래서 국가에서 선원들의 월급과 기름 값을 '보조'해 준다. 낙도 주민들은 이런 '보조 항로' 덕분에 육지와 소통 할 수 있다.

두미도 북구 포구에서 내린 사람은 도합 여섯. 주민 두 사람과 나그네, 사내 아이 하나를 데려온 부모는 낚시 가방을 맸다. 뱃머리 어느 집 앞, 줄에 널려 말라가는 도다리를 구경하는데 노인 한분이 말을 건다.

 "어디서 오셨소?"

"멀리서 왔습니다."

 "혼자서 오셨소?"

 "예."

서해안의 섬들에서는 좀처럼 먼저 말을 걸어오는 주민들을 만나기가 어려웠다. 말을 붙여도 대답을 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관광객들이 많이 드나드는 섬들은 그래도 좀 나은 편이지만 외지인이 드문 낙도일수록 그 정도가 심하다. 경계심 때문일 것이다. 남해안은 외딴 섬이라도 그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더 자유롭고 개방적이다. 아무래도 분단 상황에 기인한 바가 큰 듯하다. 특히나 서해 북단의 섬들은 오랜 세월 극도의 군사적 긴장 상태에 있었으니 그 피해의식이 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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