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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할머니는 나이를 거꾸로 드시고

강제윤 시인 - 통영 우도, 두미도 기행(3)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3.06.27 09:29
  • 수정 2015.11.11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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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뭐 바닷가하고 산이니 구경할 데가 별로 없어요. 밥은 사자셨소?"

 "예, 할머니. 할머니는 여기가 고향이세요?"

 "등 너머. 대판이라고, 여서 멉니다. 산 넘어야지. 옛날에 이 마을로 시집 왔습니다. 전엔 거기도 많이들 살았는데 지금은 안 삽니다. 여도 이젠 빈집이 많아. 좋은 학교도 있었는데 다 뿌사져 빌고."

이 외진 섬에서 할머니는 또 어떤 세월을 살아오셨던 것일까.

"밭 일 하고, 옛날에는 밭 메고, 베 짜고, 삼 삼고, 모시 삼고, 배 짜. 옛날에는 옷을 호빡 길쌈 해가 안 해 입었습니까. 보리 갈아 도구탱이 찍어가 밥 해먹고, 밀 심어서 국시 해먹고 개떡 해먹고. 요새 젊은 사람들은 힘들다고 농사일 안 하재. 바다 배 타고 다니면서 고기나 잡어 폴고.

" 할머니는 섬에서는 큰 아들 며느리랑 함께 산다.

아들 둘, 딸 둘은 부산에 산다."부산에는 자주 가세요?"

 "젊어서는 자주 갔는데 요즈음은 잘 못가요. 거기 가면 돈 많이 들어."

 "할머니 연세는 어찌 되세요?"

 "육십입니다." "에이 할머니도 참."

 "작년에 칠십이었으니께."

 "그럼 재작년에는 팔십이셨겠네요?"

 "예."

 "해마다 나이가 줄어드시는군요?"

 "그래도 서른 될라먼 아직 멀었습니다."

 할머니는 나이를 거꾸로 드신다. 마침내 0살이 되면 할머니는 이승을 하직하고 왔던 곳으로 돌아가려는 것일까.폐교된 초등학교를 지나 두미 남구로 간다. 북구에서 남구로 가는 길은 산길이다. 남쪽 섬의 가을이나 겨울 산길을 갈 때는 도시락이 없어도 좋다. 운이 나쁘지만 않다면 산열매나 과일들을 배불리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어선이나 여객선을 이용하니 굳이 몇 개의 고개를 넘어 산길을 다니는 주민은 없다.

옛 길은 뭍에서 온 여행자들이나 다니는 잊혀진 길이 되었다. 산길의 중간에 있는 마을은 마을 전체가 폐가다. 폐촌이 된 것이다. 섬을 떠나 뭍으로 간 사람들, 이승을 아주 떠나간 사람들. 그들에게 이제 더 이상 고향은 없다.

고향을 잃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감나무에 감이 익어도 더 이상 감을 딸 사람이 없다는 뜻일까. 옛 집터 감나무에는 홍시 감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나그네는 감을 따 점심 공양을 한다. 산에 먹을 것이 풍성한지 새들도 잘 익은 홍시만 더러 파먹었을 뿐 나머지는 입도 대지 않았다.

맛난 것부터 찾는 성정은 사람이나 새가 다르지 않다. 단 열매들이 사라지고 나면 저 감들도 새들의 요긴한 식량이 될 것이다. 옛 마을의 집들은 허물어지고 사람은 떠났어도 오늘도 마을 앞 바다로 배들은 무시로 오고 간다. 세 개의 고개를 지나서야 두미 남구마을이다. 남구 마을도 절벽에 매달린 꿀 벌집처럼 온통 비탈진 언덕에 집들이 들어서 있다. 마을의 초입부터 동백이 지천이다. 보기 드문 백동백도 꽃이 피었다. 변종인 백동백은 씨앗을 심으면 다시 붉은 꽃이 핀다. 꺾꽂이를 해야만 흰꽃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여기서 자생 겹동백을 만난 것은 행운이다.

개량종 겹동백은 꽃이 풍성하긴 하되 동백이라 이름 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격이 떨어진다. 동백 특유의 절조와 단아함이 없다. 그런 까닭에 겹동백이 보이면 서둘러 눈을 돌리고는 했었다. 하지만 오늘 두미도의 자생 겹동백은 겹동백에 대한 편견을 일시에 날려버린다. 홑동백에 뒤지지 않는 기품과 결기가 느껴진다. 마을 사람들이 산에 자생하는 고목 동백나무 가지를 꺾어다 심었다. 나그네는 자생 겹동백의 자태에 반해 쉬이 발길을 돌릴 수가 없다. 두미 남구 마을은 동백나무 고목들이 방풍림을 이루어 마을의 안녕을 지킨다.

방파제 안 부두에서는 어장을 보고 온 내외가 배 위에서 생선을 분류 중이다. 부부는 삼천포에 살면서 어장 철에만 여자의 친정이 있는 두미도에 들어와 고기를 잡는다. 광어나 도다리, 간재미 따위 생선은 배의 바닥에 넣어 살리고 물메기는 배를 따서 손질 한다. 선창가는 온통 줄에 걸려 말라가는 물메기 천지다. 물메기는 말린 것이 더 맛있다고 여자가 알려준다.

광주리에 담긴 물메기 한 마리, 아직 숨이 붙어 있는지 눈을 꿈뻑거린다. 여자는 꿈틀거리는 물메기의 머리에 칼을 꽂아 숨통을 아주 끊어버린다. 등줄기를 따라 칼집을 넣고 내장을 파낸다. 물메기 손질이 끝나자 내외는 활어를 싣고 삼천포로 떠난다. 호위병처럼 갈매기들이 뒤 따른다. 늙은 친정어미는 홀로 남아 할복한 물메기들을 널어 말릴 것이다. 그렇게 또 한 세월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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