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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학교를 세워 국가에 헌납하다

강제윤 시인 - 통영 대매물도, 소매물도 기행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3.07.04 08:15
  • 수정 2015.11.11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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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모자랄까 두려워 함이란 무엇인가? 두려워 함, 그것이 이미 모자람 일뿐. 그대들은 샘이 가득 찼을 때에도 목마름을 채울 길 없어 목마름을 두려워하진 않는가?"
(칼릴 지브란) 나누지 못하는 것의 근원은 소유욕이 아니다. 불안이다. 모자랄지 모른다는 두려움. 그래서 다 쓰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나누지 않고 자꾸 쌓아두려 한다. 나 또한 그러하다. 배낭 하나 메고 떠도는 삶이지만 나날이 배낭은 무거워진다. 밤늦게 진주에 도착했다. 타고난 길치인 까닭에 나는 몇 번씩 갔던 길도 헤매기 일쑤다. 진주라고 다를까. 택시를 탔다.

"남성당 한약방 아시죠?"
"알다마다요. 진주사람 그 집 모르는 사람 누가 있나요?"

나는 짐짓 초면인 척 기사에게 너스레를 떤다.
"어째서 그 집이 유명하죠. 약을 잘 지어서 명의로 소문났나요?"
"아니, 그보다도 그 어른이 워낙 훌륭한 일을 하신 분이라서요. 고등학교를 설립해 국가에다 기부체납 하셨거든요. 그게 어디 쉬운 일입니까. 다들 학교 만들어 돈벌이 하려고 혈안이 된 세상인데."
"아 그렇군요."

연락도 없이 불쑥 들른 길이지만 선생은 반갑게 맞아주신다. 남성 김장하. 그의 한약방은 누추하다. 오래된 상가 건물, 나무 마루는 너무 낡아서 삐걱거린다. 김장하 선생은 1983년 자신의 사재를 털어 설립한 명신고등학교 이사장에 취임했다가 91년 8월 17일 퇴임했다. 그때 선생은 명신고등학교 전 재산을 국가에 헌납했다. 학교는 사립에서 공립으로 바뀌었다.

선생이 학교를 국가에 헌납한 이유는 학교 재산이 개인의 것이 될 수 없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재산이 세상의 병든 이들에게 약을 팔아서 생긴 것이니 자기 개인이나 가족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본질적으로 이 학교는 제 개인의 것일 수 없는 것입니다. 본교 설립의 모든 재원이 세상의 아픈 이들에게서 나온 이상, 이것은 당연히 공공의 것이 되어야 함이 마땅합니다." (김장하 이사장 퇴임사 중)


진정한 나눔이란 무엇일까. 자신이 쓰고 남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소중한 것을 아낌없이 나누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나눔이 아닐까. 선생은 학교 헌납 이후에도 재산을 남김없이 사회로 돌려보내고 있다. 남성문화재단을 설립해 장학사업을 하고, 형평운동 기념사업, 진주신문, '진주 문화문고' 발간 등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여전히 허름한 상가 건물 2층 남루한 방에 산다. 선생을 만나고 돌아서는 발길은 늘 유쾌하다. 사람의 본성에 대한 회의가 들 때마다 나는 선생을 찾는다. 그 기운으로 다시 먼 길을 간다.

진주에서 통영으로 왔다. 매물도행 페리를 탄다. 여객선은 한산도의 문어포, 비진도, 매물도의 당금, 대항마을을 들른 뒤 소매물도에서 다시 통영으로 회항한다. 소매물도에 비해 매물도가 면적이 크고 인구도 많지만 관광객의 대부분은 소매물도에서 내린다. 소매물도에는 등대섬이라는 화려한 '관광'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유동인구나 유명세로 따지면 매물도는 더 이상 큰 섬이 아니다. 매물도에는 두 개의 마을, 두개의 포구가 있다. 섬 전체에 평지가 드물지만 대항마을은 더욱 가파르다. 절벽에 붙어선 집들이 위태로워 보인다.

매물도의 주산은 장군봉(210m)이다. 장군봉에 오르는 길은 당금보다 대항마을이 가깝다. 지형이 가파르니 등산은 이미 대항 포구의 선착장부터 시작된다. 마을 뒤편에 제법 규모가 큰 2층 건물이 서 있다. 붉은 벽돌 건물은 공동주택이었던 것처럼 보이지만 빈집이 된 지 오래다. 내가 빈집이라 했던가? 아니다. 저 집은 더 이상 빈집이 아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이라고 표현하지만 그것은 틀린 말이다. 빈집은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 아니다.

사람이 살지만 어떤 이유로 일정기간 비워 둔 집이 빈집이다. 사람의 집이란 무엇인가. 사람이 사는 건물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집이 아니다. 사람은 집의 영혼이다. 영혼이 떠나 간 저 건물은 더 이상 집도, 빈집도 아닌 것이다. 사람도 그렇지 않은가. '죽은 사람'이란 없다. 영혼이 떠난 몸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닌 물질일 뿐. 슬픔도 더 이상 너의 것은 아니구나. 영혼이 떠나간 '육체'여! 사람이 떠나간 '집'이여!

산의 고개 마루까지도 전에는 온통 밭이었다. 돌담은 밭의 흔적이다. 더 이상 일구지 않는 밭은 풀밭이다. 고갯길에서 나그네는 배낭을 벗어놓고 산에 오른다. 비박을 하고 올 것도 아닌데 굳이 무거운 배낭을 메고 오를 까닭이 무엇일까. 누가 훔쳐갈 일도 없겠지만 설령 배낭이 없어진들 생사가 위급해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언젠가는 다 벗어 버리고 가야 할 짐들. 무거운 짐 내려놓으니 산에 오르는 몸이 한결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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