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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자기 땅에 세들어 사는 섬

강제윤 시인 - 통영 대매물도 소매물도 기행(2)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3.07.11 09:31
  • 수정 2015.11.11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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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봉 아래에 몇 개의 바위굴이 있다. 일본 제국주의 군대의 포진지. 저와 비슷한 인공 동굴을 제주도 송악산과 우도에서도 본적이 있다. 일제는 태평양 전쟁 말기 제주도 곳곳에 바다의 가미가제인 가이텐 자살 특공대(인간 어뢰)를 숨겨 놓기 위해 바위굴을 팠다. 산하에는 수 천 년이 지나도 치유되지 않을 깊은 상처가 남았다.

1945년 3월, 진해 일본군 통제부에서 대한해협 방어를 위해 이 작은 섬에도 포진지를 구축했다. 포진지 공사에는 충청도에서 끌려온 광부들과 매물도의 당금, 대항, 소매물도 주민들이 강제 동원 됐다. 끌려온 사람들은 바위굴을 뚫고 방카(대피소)를 만들었고 장군봉 정상에 포진지를 구축했다.

하지만 일제의 패망으로 진지는 무용지물이 됐고 후일 한국 해군의 기지로 사용되기도 했다. 지금은 해군도 떠나고 통신회사 기지국이 들어서 있다. 갑자기 안개가 밀려오고 바람이 거세진다. 이제 산을 내려 가야 할 시간이다. 나그네는 대항마을 해변 길을 따라 당금마을로 넘어 간다.

당금 마을은 대부분 민박을 친다. 여름에는 제법 많은 피서객들이 들어오지만 다른 때는 낚시꾼들이 주된 손님이다. 선착장 입구에는 스킨 스쿠버 장비 대여점도 있다. 나그네는 골목길을 돌아가다 깜짝 놀란다. 시멘트 담벼락에 찍힌 빨간색 페인트 글씨. 민박. 무엇일까. 저 익숙한 느낌은. 그렇다. 저 자리에는 본디 반공 방첩, 간첩 신고 따위의 글귀들이 빨갛게 찍혀 있었다. 이 섬도 요즈음은 반공보다는 민박이 소득에 보탬이 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매물도에 하나뿐인 가게. 당금마을 구판장은 수퍼 마켓이고, 약국이고, 분식집이다. 매대 위에는 소화제, 대일 밴드 판매 팻말이 붙어 있다. 구판장 안에는 한 떼의 낚시꾼들이 라면이 끓기를 기다린다. 작은 섬들은 물이 가장 큰 걱정거리다. 그래도 매물도는 소매물도보다 물 사정은 좋은 편이다.


구판장 주인 노파는 "큰 바위 밑 땅에서 물이 폭폭폭 솟아나더라."고 물줄기를 찾던 시절의 소식을 전해준다. 그 물을 탱크에 모아서 각 가정으로 분배한다. 소매물도는 전기가 제한적이지만 매물도는 내연 발전소가 들어서 있어 밤새 전기가 공급 된다. 몇몇 집은 고기잡이배를 부리고 또 몇 집은 소를 키운다. 그러나 매물도 주민들을 먹여 살리는 것은 무엇보다 해초다. 마을 어촌계가 공동 관리하는 어장에서 미역을 채취하는 것이 생계에 가장 큰 도움이 된다.

소매물도는 해안선이 3.8km에 불과하다. 걸어서 돌아도 1시간이 넘지 않는다. 지금은 폐교된 소매물도 분교 운동장, 거기서 공을 차면 바다로 풍덩 떨어지기도 했을 것이다. 이제 소매물도는 더 이상 낙도가 아니다. 관광지다. 머잖아 10여 가구 남짓한 옛 건물들마저 사라지고 나면 소매물도는 또 어떤 모습을 지니게 될까.

오래 전 원주민들이 육지의 한 사업가에게 대부분의 집과 땅을 팔아버렸었다. 그때는 가난하고 척박한 섬의 땅을 사주는 사업가가 고마웠을 것이다. 더구나 죽을 때까지 살도록 해준다는 조건이었으니, 굴러 들어온 '공돈'이 아니었겠는가.

지금 주민들은 땅을 판 것을 땅을 치고 후회하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갑자기 유명 관광지가 된 탓에 관광 수입이 커졌으나 남의 손에 든 떡이다. 자기 땅을 팔고 그 땅에 '세 들어' 사는 주민들. 설상가상으로 땅을 샀던 사업가는 부도가 났고 땅은 새로운 주인에게 넘어 갔다. 주민들은 서둘러 섬을 떠나야 한다.

부두에서 10분 남짓 걸어 오르면 섬의 정상 망태봉이다. 옛집들뿐만 아니라 망태봉으로 오르는 이 돌계단들도 머잖아 사라지고 말 것이다. 문화란 물처럼 흐르는 것이니 새 물결이 헌 물결을 밀어내는 것을 탓할 일은 아니다. 그래도 소멸해 가는 것들은 애틋하다.

우리는 이미 오래된 옛 것들의 소중함을 안다. 옛 건물의 주춧돌이나 수 백 년 된 나무를 보호하고 돌보기도 한다. 그러나 옛날 쓰던 돌이나 고목만 소중히 할 일은 아니다. 옛 돌과 오랜 된 나무가 문화재고 천연 기념물이라면 지금 저 작은 나무나 이 돌계단은 미래의 천연 기념물이고 문화재다.

저녁이 오려는가. 하늘 한쪽이 흐리다. 신화가 되기에는 너무 좁은 땅, 작은 섬일수록 끔찍한 전설들이 떠다닌다. 나그네는 남매 바위를 찾아 간다. 옛날 어미 섬 매물도에 자식 없이 살아가는 부부가 있었다. 뒤늦게 아이를 낳았다. 남매 쌍둥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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