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기획취재> 남매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가 전해지는 섬

강제윤 시인 - 통영 대매물도, 소매물도 기행(3)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3.07.18 11:29
  • 수정 2015.11.11 10:35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남매 쌍둥이는 명이 짧아 일찍 죽게 된다는 말들이 있었다. 부부는 딸을 소매물도에 버렸다. 세월 따라 아들은 불쑥 자랐다. 어느 날 아들은 나무 하러 산에 갔다가 소매물도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았다. 부모는 아들에게 '소매물도는 무서운 용이 사는 곳이니 절대 가서는 안 된다'고 신신 당부했었다. 여느 아들들처럼 아들은 부모 말을 가볍게 여겼다.

금단의 과실일수록 유혹은 달콤하다. 마침내 아들은 소매물도에 건너가 물비린내 달큰한 처녀를 만났다. 첫눈에 반한 두 남녀는 정념을 못 이겨 서로 끌어안고 사랑을 나누었다. 그때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들고 비바람 천둥번개가 치면서 두 남녀는 바위로 변해 벼랑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그것이 저 전설 속의 남매 바위다.

전설이란 그저 전설일 리가 없다. 어떠한 전설도 현실의 반영이다. 남매의 이야기도 괜히 지어낸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뭍에서 흔한 달래 고개 전설 같은 일이 섬에서는 더 자주 일어났을 것이다. 덕적도의 선단여 전설도 남매간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다.

섬이란 공간은 지금도 폐쇄적이다. 그러니 옛날에는 어떠했겠는가. 평생 섬을 떠나 보지도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그 좁은 땅, 몇 안 되는 사람들 사이에서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눈보라 쳤다. 봄이 오고 가을이 갔다. 연분도 늘 맞대면 하는 사이에서 난다. 근친간의 사랑이 어디 한 두 번이었을까.

옛날의 섬에서는 남매로 나서 부부로 연을 맺고 살다간 이들에 대한 풍문도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근자에 와서도 섬에서는 형수와 시동생이 눈 맞아 야반도주 했다느니 하는 따위 풍문이 드물지 않았다. 남매 바위에 대한 전설은 그에 대한 경책으로 생겨난 것이겠지.

많은 섬들은 요즘 어느 시대보다 풍요를 구가하고 있다. 고기잡이나 수산물 채취, 양식업 등으로 바다 일을 하는 주민들의 수입은 도시 노동자들의 소득을 뛰어 넘는다. 그럼에도 일의 양은 줄지 않는다. 남들이 더 많이 잡기 전에 내가 더 잡고 남들이 기르는 것보다 내가 더 길러야 직성이 풀린다. 그러나 돈을 더 많이 번다고 해서 삶에 대한 불안이 줄지는 않는다. 가득 채우고도 늘 모자랄까 두려워한다. 만족을 모르는 삶은 도시와 농어촌이 다르지 않다.


본디 일이란 삶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수단을 목적으로 만드는 사회는 사악하다. 하지만 이 사회는, 국가는, 자본은 개인들이 필요보다 더 많이 일하도록 끊임없이 선동한다. 개인에게는 온갖 사회적 의무와 책임을 강요하면서도 개인의 삶은 책임져 주지 않는다. 교육, 의료, 노후까지도 철저하게 개인에게 책임 지우는 사회. 그러니 소득이 늘어도 개인의 불안이 줄어들 수가 없다. 개인의 불안은 사회의 불안을 잉태한다. 그러므로 이 나라에서 국가 안보와 체제 불안을 조장하는 가장 큰 반국가 세력은 국가 자신과 자본이다!

섬에서도 어김없이 세월이 간다. 아침에서 저녁으로 시간은 흐르고 밤은 다가온다. 바람이 아주 자는 걸까. 수면은 파도 하나 없이 잔잔하다. 그러나 저 평화로운 바다 속은 여지없이 피비린내 진동하는 생존의 바다다. 큰 물고기와 작은 물고기들이 서로 먹고 먹히는 생사의 바다. 사람이 던지는 가짜 미끼에도 물고기들은 줄줄이 걸려들고, 평화로운 수면 아래 놓인 덧들, 그물들. 물속은 온통 지뢰밭이다.

일 년만의 방문, 그 사이 소매물도에도 횟집이 생겼다. 나그네는 내내 수족관 속 물고기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어부에게 잡혀온 물고기들을 기다려 주는 것은 죽음뿐이다. 죽음이 코앞에 있어도 물고기들은 눈치도 못 챈다. 수족관 안의 시간이 영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리다툼하고, 쫓고 쫓긴다. 때때로 횟집 주인의 뜰채가 다가오면 서둘러 달아나지만 그래 봐야 수족관을 벗어날 수 없다. 발버둥 친다 해서 죽음을 피할 길은 없다.

횟집 주인은 부지런히 수족관 안의 물고기를 건져 낸다. 불과 두어 시간 사이 수족관은 텅 빈다. 이제 주인은 바다로 가 다시 물고기들을 잡아 올리고 수족관은 가득 채워질 것이다. 죽음이 있어 삶이 있다. 죽음을 피할 길 없으니 삶 또한 피할 길이 없다.

수족관 안의 생. 건너 섬 욕지도와 연화도 사이로 해가 진다. 삶 밖에 다른 무엇이 있을까. 도달 할 수 없다면 있어도 있는 것은 아닌 것. 하늘은 잠시 수족관 너머로 노을 빛 연화세계를 보여주지만 건널 수 없는 자들은 그저 애달픔에 유리벽만 치다 돌아간다.

저작권자 © 완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